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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

화이트크리스마스의 편지 2011년 최고의 드라마를 만났다. 정작 본방은 보지 못했고, 집에서 VOD로 야금야금 보는 중이다. 야금야금이 아니라 아껴서 꼭꼭 씹어 본다는 게 더 맞는 이야기인 듯 싶다. 처음에는 졸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지면서, 이거 물건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을 꺼내놓고, 미친 듯이 이야기들과 느낌들을 적어가면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시작은 편지다. 누군가가 보낸 자살편지. 이 편지를 받은 여덟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남았다. 일주일 후, 누군가는 죽으려했고, 누군가는 죽이려했고, 그리고 누군가는 죽었다. 이 편지 한 번 볼래? 얼마나 섬뜩한지, 얼마나 묵직한지, 얼마나 너와 나의 관계 같은지... 쉿~ 조심해~ 계속해서 생각해봤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째서 나는 나.. 더보기
오늘을 가볍게 넘어서기 -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이 니체전집입니다.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유고,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등. 물론 제대로 읽은 것은 한 권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를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장 제일 위쪽 오른편에 꽂아 놓은 것은, 언젠가는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를 만난다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고개 끄덕이며 배우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겁이 나죠. 니체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단절하겠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나와 나의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적어도 여기 저기서 들은 니체의 이야기를 조합하면 그렇다는 겁니.. 더보기
맑스가 Mediation을 이야기 한다면? - Livingstone (2009) On the Mediation of everything.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굳이 블로그에 옮길 이유는 없지만, 뭐~ 여기에 기록해두면 숙제로 내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지는 않아서, 앞으로는 조금씩 흔적을 남겨야겠다. “There is no pure experience prior to mediation' 리빙스톤의 ‘On the Mediation of Everything’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 그러나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지게 만들었던 문장.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문장을 보면서 요즘 읽고 있는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2004)’이 오버랩되었다는... 이 책은 맑스의 대표 저작 자본에 대한 이야기다. 맑스가 서술한 ‘자본’이 아니라, 이진경이 공부한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만약 리빙스톤의 저 .. 더보기
신정아와 우리 사회가 고개를 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 - 4001을 본 소회 1. 4001. 정아씨가 1년 6개월간 가슴에 달고 있었던 수인번호. 4001을 달고, 여론의 뭇매를 마지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억울함, 배신감, 분노, 절망, 좌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픈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 겪었을 듯 싶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온 지난 시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언론이 과도하게 그녀를 상품화시켜 융단 폭격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아라는 이름이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빗겨가면서, 그녀는 작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토해내지 않으면 화병이 날 것 같은 마음,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 공적인 영역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섞여 4001은 탄생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과 의지, 그리고 욕망을 존중한다. 그것은 언젠가 시간이 한.. 더보기
테크노폴리에 길담서원 짓기 - 포스트만 [테크노폴리] 1. 경복궁 근처에 길담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테크노폴리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문득 이곳이 떠올랐다. 길담서원이 위치한 동네엔 ‘길’과 ‘담’이 어울어져 있다. ‘길’과 ‘담’은 떠남과 머무름, 열림과 닫힘, 비움과 채움이라는 은유가 담겨 있다. 우리는 길을 떠나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길 위에서만 살 수 없다. 담으로 둘러쳐진 안식의 공간이 배면에 깔릴 때, 그곳이 내 정신이 상승하는 근거지가 될 때, 떠남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담이 없다면 길은 정처없이 헤메고, 방랑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길담서원은 이름 그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옛 서원의 계승을 표방한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며,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각 지역의 정신적 중춧돌로서의 역할을 했던 .. 더보기
나는 가수다를 응원한다 1. 나는 가수다. 바야흐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예능의 대세가 된 시점에,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추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장점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세상의 1인자라 불리는 아티스트들이 모인다. 100점. 이들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경쟁한다. 50점. 그 중에 누가 떨어진다. 이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200점.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젊은이들의 꿈을 겨냥했다면, 그래서 때론 어설프고, 때론 둔탁하기도 했다만, 이 프로그램은 꿈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하는 아티스트들의 자존심과 아우라를 겨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텔레비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미학을 최고의 긴장감과 호기심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로 김영희 PD의 .. 더보기
3월 2일. 올레길을 걷던 나의 모습.. 그대로.. 가는거다. 내가 참 매력적이라고 느낄 때, 누군가 참 멋지다고 느낄 때, 그 느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장인 것 같다. 성장과 성공은 확실히 다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성장은 느릿느릿, 식빵을 베어물고, 생수 한 병을 베낭에 넣은 채, 우와~ 감탄사를 지르면서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다시 돌아나오는 과정, 예기치 않은 길 위의 인연에 들떠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올레길 여행과 맞다아 있다면, 성공은 렌트카를 몰고 해변도로를 일주하며, 추천 명소로 알려진 공간을 찍고 또 찍는 나 홀로 관광 여행과 비슷한 것 같다. 지난주 제주도를 다녀왔다. 4일 동안 올레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10년 동안 IT기업을 경영하다, 제주도가 좋아 서울 생활을 접고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아저씨. 어린이집을 운영.. 더보기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 일대기 나는 1966년 평범한 가정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원적은 현재의 포항시인 경북 영일군 구룡포지만,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부친의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어린 시절 전국 곳곳으로 이사다니면서 자랐다. 맏이인 누나와 둘째인 형이 학생운동을 했지만, 소년 김기식은 서울 경성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의 삶에 ‘동요’가 온 것은 고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83년이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살던 나는 누나가 다니던 연세대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가 많았다.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5월 광주’의 진실은 소년 김기식에게 적잖은 변화를 가져다 준다. 캠퍼스에 뿌려진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보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더보기
박완서 # 일대기 나는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여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숙부와 오빠를 잃는 등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40대에 접어든 1970년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裸木)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공모전에 당선될 때 나는 다섯 아이를 둔 40세의 전업주부였다. 이 소설은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초상화부에서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이다. 을 비롯해 내 작품들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파헤치거나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 더보기
전북 임실 운암마을 (다큐멘터리 3일) 전북 임실의 운암마을. 그 흔한 2층 건물 하나 없이 낡고 오래된 옛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65년 섬진강 댐이 건설되면서 고향을 물 속에 내준 이들이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자연과 마을의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그 그대로가 어색한 마을, 거기가 운암마을이다. 이 마을이 다시 수몰 예정 지역에 포함됐다. 7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곳 주민들은 정든 삶터를 정리하고 또 다시 고향을 떠나가고 있다. 항상 있던 자리에, 농기구 같은 것도 항상 있던 자리에 있잖아요. 근데 다 없어지고, 지금도 벌써 조금씩 사람들도 나가기 시작하고, 옮겨가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분이 분명히 저기 사셨던 분인데 시내에서 가끔 타서 들어가시면 아, 이사 가셨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