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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태양, 포도밭, 그리고 호수가 있었네. 라보지구 마을 로잔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도시 한 자락의 아침은 조용했다. 호텔의 조용함은 로잔에서는 예외적이다. 호텔 밖을 조금만 나서면 도시는 시끄럽고 분주하다. 들떠있고 생기 넘친다. 이곳은 즐길 것, 볼 것, 먹을 것은 많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우리는 이 도시를 떠난다. 1박 2일의 로잔 여행. 아마 다시 이곳을 방문할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이 시간과 장소는 내 마음 속에 새로운 감정과 무게를 더해간다. 이 무게를 굳이 하나의 개념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자유로움의 기운인 듯싶다. 로잔은 산만하고 분주하다. 무언가 무질서해 보이고 남녀노소 모두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고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혼착되어 있다. 그런데 묘하게.. 더보기
문제는 마음이야! 다섯 개의 호수길 (체르마트) 수네가행 열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파른 산악터널을 지나면 해발 2,280미터의 수네가에 도착하게 된다.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어제 아침 고르너그라트에서 바라본 풍경과 조금은 다르다. 어제의 마테호른이 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가깝다. 파란 하늘, 흰 눈, 그리고 녹음으로 이어진 풍경이 따사로운 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레킹을 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 아래 띄엄띄엄 새겨진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조금 걸어가면 바위투성이의 넓은 대지를 마주하게 되고 조금만 고개를 들면 심도 깊게 펼쳐진 알프스 산맥의 위엄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재잘거림은 줄어든다. 단지 햇님처럼 평화로운 미소와 바람처럼 시원한 느낌만 공유할.. 더보기
체르마트에서의 아침 극도로 지쳤던 마음은 깊은 잠을 초대한다. 새 몇 마디가 침대 위를 붕붕 날아다닌다.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나는 침대에 누워 몇 분째 새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다. 푹 삶은 콩나물처럼 완전히 골아 떨어진 어제 밤의 피로를 뒤로한 채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가만히 누워 조용히 하루를 시작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줄곧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욕망한다. 과도하게 음주한 다음 날 아침이면 또는 밤새 불면의 고민으로 잠을 설친 아침이면 나는 커피 한 잔으로 과도하게 달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신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과도하게 몸을 움직인 어제의 기운을 충전하는 매듭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 몸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지던스를 .. 더보기
저 마을에 언제쯤 도착할까? 리펠알프에서 체르마트로 얼마나 걸었을까? 이정표에 쓰여져 있던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우리는 리펠알프(Riffelalp)에 도착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리펠알프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조트 앞 카페 바스코(Basco)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이 보는 책은 왠지 세상과 두뼘쯤 떨어진 이야기일 듯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파란 하늘, 흰 설산을 향해 넓게 펼쳐진 노란 우산에 앉아 퐁듀를 시킨다. 부글부글 끓는 노란 치즈탕에 식빵을 데쳐 먹는 퐁듀는 예상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던 것처럼 짜기만 했다. 그래도 지나온 길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짠 퐁듀야 참을만 했다. 너무 짜 표정이 일그러질 때면 맥주 한 잔으로 위안을 삼는다. 짠 치즈와 시원한 맥주가 들어가면서 그녀의 공.. 더보기
체르마트로 가는 길 베른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중간에 비스프라는 곳에 한 번 갈아타야 하고 총 이동 시간은 2시간 30분.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오는 기차 위에서도 느꼈지만 확실히 스위스의 시골은 아름답다. 같은 시골이라 해도 느낌은 매번 달라진다. 베른에서 비스프로 가는 기차 위에서 마주한 풍경, 비스프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기차 위에서 마주한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을 내포한다.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라고 하면 지금 이 순간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확실히 다른 것이다. 베른에서 비스프로 가는 길 위에는 스피츠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사실 기차를 탈 때만 하더라도 이 마을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러나 기차 뒤편으로 사라지는 옥빛 색깔의 호수와 하얀 요트와 때론 가.. 더보기
언덕 위의 도시, 베른의 어느 여름날 풍경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과 함께 베른에 내린다. 그들은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가만히 주변을 관찰한다. 베른. 한 국가의 수도답게 기차역은 수많은 플랫폼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우선 코인라커를 찾아 트렁크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역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고, 사람은 많지만 마땅히 물어볼 사람은 찾지 못한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는 한 켠에 핫도그를 파는 매대가 서 있고, 거기에는 왠지 찰리라 불릴 것 같은 그런 친구가 서 있다. “Excuse me, Do you know where coin locker is?” 왠지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정확히 발음한 것은 코인라커 정도였고, 내가 바디랭귀지로 그가 봐주기를 원했던 것은 내 뒤편에.. 더보기
취리히의 아침 풍경 시차의 문제일까? 기나긴 금요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생각처럼 깊은 잠에 빠지지는 못했다. 게다가 너무도 일찍 잠을 깨버렸다. 새벽 5시 30분. 옆을 보니 그녀 역시 커다란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조식 먹으러 갈래?”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벌떡 일어나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아침식사를 마치고 떠난 흔적이 한두 군데 테이블에 남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잠자리에 들어있을 시간이었다. 인도 어디 즈음에서 온 듯한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식당 가운데에 아침 조식이라고 하기에는 푸짐한 식단이 차려져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어질러진 일상을 정리하는 사람은 예상했던 것에도 조금도 비껴나지 않는 제 3세계 여성이군,하는 생각이 청소기를 돌리는 아주머니에게 “굿모닝”이라는 인.. 더보기
모스크바를 지나면서 비행기를 탈 때 늘 손에 작은 노트 하나와 책 한 권을 놓아둡니다. 막상 비행기가 비상하면 거의 아무 것도 보지도, 쓰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왜 그럴까, 잠깐 생각해봅니다.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없다면 비행기타기 놀이가 매우 지루할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행, 책, 수첩 이것은 저를 설레게 하는 3종 세트인거죠. 모스크바를 경유해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에서 제 손에 쥐어진 책은 무라카미하루키의 였습니다. 는 제가 하루키 소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책을 가지고 갈까, 생각하다 이 책을 결정했던 것은 당시 마지막으로 수정 중이었던 원고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정말 출간할 수 있는 걸까, 출간한다면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