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이 니체전집입니다.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유고,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등. 물론 제대로 읽은 것은 한 권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를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장 제일 위쪽 오른편에 꽂아 놓은 것은, 언젠가는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를 만난다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고개 끄덕이며 배우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겁이 나죠. 니체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단절하겠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나와 나의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적어도 여기 저기서 들은 니체의 이야기를 조합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니체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 지금의 무장부터 해제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용기 하나다. 그것을 방패가 아닌 창으로 써야 한다. 부디 너를 지키려 하지 말고, 당신과 니체를 동시에 바꿀 수 있는 훌륭한 전투를 벌여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모든 가치의 전환’ 그 뿐이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니체를 열망하면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수 X를 변수 Y로 만드는 것, 전체집한 U를 미지수 X로 바꾸는 것, 니체는 기존의 모든 이념과 습속을 부수고, 기존의 인간적인 것들을 허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생이 아스팔트에서 진흙탕으로 바뀌고, 정해졌던 답이 흐물흐물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의 나로부터 결별할... 어제의 나를 규정하는 모든 관계들, 구조들로부터 이별할 용기! 용기. 용기. 용기. 그런데 이거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과거로부터 이별할 용기란... 이에 대해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잊는 자는 건강하다. 망각은 건강을 위한 첫걸음이다. 망각은 하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수만 개를 만드는 일이다.”
뭔가 멋진 말입니다. 잊지 못하기 때문에 아프고 집착하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 인생이니깐요. 부모에 대한 기억, 사랑에 대한 기억, 친구에 대한 기억, 좋은 기억은 쉽게 손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쁜 기억은 잊으려해도 쉽게 잊어지지 않죠.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과거를 털어내는 것, 쉽지도 않고, 그럴수 있을까 의심도 들지만.. 니체는 지워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수 만개의 새로운 자아,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 과거의 자신을 지움으로서 자아를 규정하는 힘들의 배치가 변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는 바다 속 동물처럼 많은 정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정신들은 자아라는 정신을 얻으려고 싸운다. 그들은 자아를 사랑하며, 자아가 자신들의 등 위에 앉기를 원한다. ... .중요한 것은 어떤 힘이 어떤 방식으로 지배력을 획득하냐이다. 힘들의 배치가 바뀌면 자아도 달라진다.”
기존의 기억, 습관은 동일한 배치가 반복되길 원합니다. 니체는 이를 힘들의 과소 상태라고 말합니다. 당연하게도 힘들의 과소상태는 변화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변신의 잠재력을 감퇴시킵니다. 기존의 습관, 제도, 권력은 늘 힘들의 과소상태를 원하지만, 니체는 이것을 깨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이 시공을 초월해 동일하게 가져야 하는 상수는 단 하나, 힘의 과잉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의 변신이라고 말하면서요.
“그때의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작품의 위대함은 완결된 멜로디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멜로디를 구사하는 데 있다.“
“풋과일만이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모든 익은 것들은 집착을 버리고 떨어진다. 그것이 더 많은 생명들의 탄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무수히 많아야 한다.”
캬~ 멋지지 않나요?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어제 출근한 곳으로 오늘도 출근해야 하고, 어제 사랑하는 그녀와 오늘도 사랑해야 하니깐요. 인생은 어쩌면 반복되는 주사위 놀이, 영원토록 제 자리를 멤도는 놀이와 비슷한지도 모르니깐요. 이에 대해 니체의 이야기.. 계속됩니다.
“영원회귀, 그것은 언제나 돌아오는 주사위다. 그것은 반복을 나타내지만 반복되는 것은 어떤 대상이나 눈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던지고 땅을 행해 떨어지는 과정, 바로 주사위 놀이 그 자체다.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사위를 던지는 것, 던지는 것은 타자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생산이다. 그리고 그것의 동력은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이 지속되야 한다.”
니체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반복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반복될 수 없는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고로 즐겁게 오늘도 땅에 떨어진 주사위를 하늘로 던지는 그 행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입니다. 습관적으로 던지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무제한적인 긍정과 아멘과 설렘을 바탕으로 던지는 주사위 놀이! 그것이 내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니체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신은 죽었다”일 것입니다. 니체에게 신의 죽음은 인간적 형태의 온갖 우상 숭배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항상 자기 바깥에 가치의 기준을 두고 그것에 복종해 온 인간이 드디어 노예적인 생활을 끝내고 자기 가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신은 비단 기독교에서의 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우상들, 돈, 권력, 종교,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주, 그게 ‘신은 죽었다’에 담긴 의미라고 합니다.
"이들 잽싼 원숭이들이 어떻게 기어오르는가를 보라. 그들은 앞을 다투어 남을 타고 넘어 기어오르다가 모두 진흙과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들은 모두 왕좌에 오르려고 한다. 마치 행복이 왕좌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이들 모두는 미치광이들이요, 기어오르는 원숭이들이자, 너무도 격렬한 자들이다. 여기에서는 악취가 난다.“
“시장은 화폐가 풍기는 악취를 따라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꼬이는 곳이다. ... 그들은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지도 못하며,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남들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남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자신들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새로운 가치의 발명자들은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떨어져 살았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생겨난다”
니체는 신의 죽음 앞에 인간 스스로 강자가 되자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영원토록 저 하늘로 주사위를 던지면서 새로운 수천 개의 가치를 창조해내자고 말합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모든 형태의 예속적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다만 타인들이 평가하는 대로 존재하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들은 주인이 자신들에게 부여해 준 가치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자신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많은 짐과 추억이 그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잇다. 많은 고약한 난쟁이들이 그대들의 몸 구석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대들 안에도 천민이 숨어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발로 서야 한다.”
"세계는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주위로 돈다.“
"대지에 충실하라. 아직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길을 천 개나 가지고 있다. 천 개의 건강법, 천 개의 생명의 섬들이 있다. 그것은 무궁무진하여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있다.“
니체가 말하는 천 개의 길,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길만 고집하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수많은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됩니다. 기막히게 멋지고 설레지 않나요? 그 길 속에 새로운 가치가 숨어 있고, 우린 주사위를 하늘 높이 던지면서 그 가치를 쏙쏙 빼먹고, 만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재밌잖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마지막으로 니체가 이야기하는 강자로 사는 법, 새로운 천 개의 길을 창조하는 법, 오늘을 넘어서는 방법론을 기로으로 남기면서 리뷰를 마칩니다. 다음 문장만 챙겨가도, 삶이 좀 더 현명해질 듯!
“정 싫으면 그냥 지나쳐 가면 될 것을 그곳에 머물면서 계속 꽥꽥거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혹시 험담하고 비난하면서 너 역시 그 도시를 닮아간 것 아닌가?”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맞서 이기는 게 아니라 가볍게 넘어서는 것 중요하다.”
가볍게 넘어섭시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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