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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마트

예상치 않았던 여정, 로잔으로 가는 길 아침이 밝았다. 새벽 6시 눈을 떠 테라스에 앉아 홀로 책을 본다.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체르마트의 아침,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원한 공기, 청명한 하늘, 지저귀는 새소리, 이를 풍경으로 나는 금년에 출판하게 될 원고의 초안을 읽는다. 넓은 베란다, 시원한 테라스, 그리고 아침의 마테호른. 조용하고 굉장히 멋지다. 어제 새벽 한 무리의 청년 여행객들이 새벽 늦게까지 이 조용한 공간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고함을 지르며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자아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새벽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일당의 무리들이 잠의 세계로 퇴장하자 새벽 6시 체르마트에 남아 있는 것은 침묵과 고요,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바람 소리, 새 소리뿐이다. 이 고요함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눈을 뜨자 창문을.. 더보기
문제는 마음이야! 다섯 개의 호수길 (체르마트) 수네가행 열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파른 산악터널을 지나면 해발 2,280미터의 수네가에 도착하게 된다.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어제 아침 고르너그라트에서 바라본 풍경과 조금은 다르다. 어제의 마테호른이 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가깝다. 파란 하늘, 흰 눈, 그리고 녹음으로 이어진 풍경이 따사로운 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레킹을 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 아래 띄엄띄엄 새겨진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조금 걸어가면 바위투성이의 넓은 대지를 마주하게 되고 조금만 고개를 들면 심도 깊게 펼쳐진 알프스 산맥의 위엄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재잘거림은 줄어든다. 단지 햇님처럼 평화로운 미소와 바람처럼 시원한 느낌만 공유할.. 더보기
체르마트에서의 아침 극도로 지쳤던 마음은 깊은 잠을 초대한다. 새 몇 마디가 침대 위를 붕붕 날아다닌다.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나는 침대에 누워 몇 분째 새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다. 푹 삶은 콩나물처럼 완전히 골아 떨어진 어제 밤의 피로를 뒤로한 채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가만히 누워 조용히 하루를 시작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줄곧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욕망한다. 과도하게 음주한 다음 날 아침이면 또는 밤새 불면의 고민으로 잠을 설친 아침이면 나는 커피 한 잔으로 과도하게 달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신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과도하게 몸을 움직인 어제의 기운을 충전하는 매듭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 몸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지던스를 .. 더보기
저 마을에 언제쯤 도착할까? 리펠알프에서 체르마트로 얼마나 걸었을까? 이정표에 쓰여져 있던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우리는 리펠알프(Riffelalp)에 도착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리펠알프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조트 앞 카페 바스코(Basco)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이 보는 책은 왠지 세상과 두뼘쯤 떨어진 이야기일 듯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파란 하늘, 흰 설산을 향해 넓게 펼쳐진 노란 우산에 앉아 퐁듀를 시킨다. 부글부글 끓는 노란 치즈탕에 식빵을 데쳐 먹는 퐁듀는 예상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던 것처럼 짜기만 했다. 그래도 지나온 길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짠 퐁듀야 참을만 했다. 너무 짜 표정이 일그러질 때면 맥주 한 잔으로 위안을 삼는다. 짠 치즈와 시원한 맥주가 들어가면서 그녀의 공.. 더보기
두려움과 놀라움 사이,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Bahn) 눈을 떴다. 새 소리가 들린다. 주변은 고요하다. 창문 밖으로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산야와 들판과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 해는 언제 지고 언제 뜬 것일까? 인간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해는 졌고 다시 떴다. 그렇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새소리와 함께 창문 밖에서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여행은 몸을 변화시킨다. 시간과 공간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이다. 테라스로 나가 마테호른을 마주한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사이에 우뚝 솟아오른 대지의 여신은 “굿모닝”하며 씩씩하게 아침 인사를 건낸다. 오늘 우리는 이 친구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예정이다. 아침으로 치즈와 빵과 요플레를 먹는다. 마테호른을 마주한 테라스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생.. 더보기
마흔, 다시 여행 2015년, 마흔이라는 나이는 나의 삶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기점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흔이 되면 이래야지 하는 굳은 결의가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니구요. 하지만 마흔 살이라는 작은 언덕을 건너면서 이제껏 걸어온 길과 다른 길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막연한 예감은 대부분 비껴가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어제와 다른 길 위에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오롯이 내 선택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 역시 내가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싫든 좋든 마흔이라는 작은 봉우리 위에서 내가 선택하는 길은 좋든 싫든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빽도가 불가능하며,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입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