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BS스페셜

잊고 싶지 않은 [주문을 잊은 음식점] 금년에 방송된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이 남은 프로그램이 뭘까? 개인적으로 최고의 프로그램은 [나의 아저씨]였습니다. 언젠가 [나의 아저씨]를 복기할 시간이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그늘진 공간의 정서와 이야기를 이토록 따뜻하게 풀어낸 드라마는 앞으로도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아요. 픽션 영역에서 최고가 [나의 아저씨]였다면, 논픽션 영역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은 지난주 종영한 [KBS스페셜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부작]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거에요.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영업종료”가 된 식당 곳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에서 정말 예기치 않게 눈물이 흐르더니 도대체 멈추지는 않는 거예요. 언젠가 어떤 독서모임에서 “노년”에 대한 책을 함께 읽었는데, 이.. 더보기
공존과 평화의 용기, <KBS스페셜 가야> 을 봤습니다. 뜬금없이 김훈의 가 떠올랐습니다. 아주 뜬금없지는 않지요. 이 소설의 배경도 가야니깐요. 악기 하나만을 들고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가로질러 신라에 투항하는 악사, 우륵이 등장하지요. 여기에서 가야와 신라의 전쟁터는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나라들이 언저리를 마주 댄 강가나 들판에서 쇠에 날을 세운 병장기들이 날마다 부딪쳤다. 말 탄 적을 말 위에서 찌를 때는 창이 나아갔고, 말 탄 적을 말 아래서 끌어내릴 때는 화극(畵戟)이 나아갔다. 창이 들어올 때 방패가 나아갔고 방패 위로 철퇴가 날아들었고 철퇴를 든 자의 뒤통수로 쇠도끼가 덤벼들었고 쇠도끼를 든 자의 등에 화살이 박혔다. 쇳조각으로 엮은 갑옷이 화살을 막았는데, 화살촉은 날마다 단단해졌고 갑옷은 날마다 두꺼워졌다.” 어떤 느낌이.. 더보기
초록의 혼이 지나간 자리 우포늪<KBS스페셜 인간과 습지> 공사창립특집 을 봤습니다. 우포늪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생명의 삶이 잘 포착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포늪’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어?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불러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프로그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흐름이 좋았습니다. 겨울프로그램의 시작은 겨울입니다. 우포늪의 겨울. 칠십 평생을 우포늪과 살아온 한 노인의 얼굴이 꽁꽁 얼어버린 대지에 비칩니다. 평생 욕심 없이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입니다. 그 표정 밑으로 겨울의 날선 수면이 있고, 얼어붙은 잿빛 수면 아래로 가물치가 지나갑니다. 바람소리가 들립니다.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적막한 우포늪, 그러나 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