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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 일대기
나는 1966년 평범한 가정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원적은 현재의 포항시인 경북 영일군 구룡포지만,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부친의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어린 시절 전국 곳곳으로 이사다니면서 자랐다. 맏이인 누나와 둘째인 형이 학생운동을 했지만, 소년 김기식은 서울 경성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의 삶에 ‘동요’가 온 것은 고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83년이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살던 나는 누나가 다니던 연세대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가 많았다.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5월 광주’의 진실은 소년 김기식에게 적잖은 변화를 가져다 준다. 캠퍼스에 뿌려진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보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기억한다.

집권자가 동족을 향해 총을 쏘는 나라가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우리나라’인가 하는 충격과 의문이 밀어닥쳤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닥친 이러한 ‘고민’은 결국 그해 서울대 입시에서 낙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연세대에 드나든 것이 내 인생의 절반을 바꿔 놓은 셈이다. 훗날 내가 학생운동으로 구속되자 어머니는 “너 때문에 동생이 물이 들어 저렇게 됐다”며 누나를 원망했다.

이듬해인 1984년, 나는 공부는 관심 밖인 채 대학생들의 시위에 참가해 전경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재수생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여름을 넘기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한양대 학생회장을 지낸 형이 나를 불렀다. 형은 “운동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우선 대학부터 들어가라”고 타일렀다. 형의 얘기는 효험이 있었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공부에 매달려 85학번으로 서울대 인류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1985년 2월, 입학식이 있기 전 인류학과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열어 줬다. 선후배 간의 술자리가 파할 무렵 나는 ‘운동의 핵심임이 확실해 보이는 선배’에게 무작정 다가가 “저는 운동이 뭔지 다 압니다. 제가 가입해야 할 서클을 빨리 소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소원대로 운동권 서클에 가입한 나는 입학 두 달 만에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될 정도로 ‘준비된 운동권’이었다.

서울대 인류학과 재학중 두 차례 구속된 적이 있다. 2학년 때인 1986년 11월 ‘구학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압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이 첫번째였다. 사법처리 전력이 없고 학년이 낮은 점이 감안돼 구속 4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캠퍼스로 돌아온 지 6개월 후, 이번에는 1987년 6월항쟁 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두번째로 구속됐다. 집행유예 기간이어서 꼼짝없이 4년 정도는 감옥살이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6·29선언 후 시국 관련 구속자들이 대거 석방되면서 20일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한편으로는 늘 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엄숙한 자세로 학생운동을 했던 것 같다. 연행과 투옥과 고문이 다반사였던 권위주의 시절의 학생운동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한 심적 부담 속에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며 좋은 직장 다니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굉장히 죄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운동권 대학생으로 지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내가 찾아간 곳은 노동현장이었다. 1988년부터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나중에는 노동상담소 운영으로 이어진 그의 노동운동은 1993년까지 6년 동안 계속됐다. 당시만 해도 운동권 내부에서는 ‘민중 속으로’라는 개념이 워낙 확고해 학생운동을 마치면 노동운동으로 옮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노조 결성을 도와 주고 쟁의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 현장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공간이었다. 그 몸부림에 가혹한 탄압이 가해졌고, 그 탄압만큼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졌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세상을 배웠다. 그러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다 해고되고 감옥 가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한계와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1991년 해고자 문제로 분규를 겪는 사업장에 나갔다 20여 명의 구사대에 붙들려 집단구타당한 적이 있다. 허리뼈에 금이 가는 전치 6주의 상처를 입었는데, 저는 회사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일절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이 일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새로운 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념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로 투쟁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가진 이념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활이 더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이념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진보는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정 이념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좀 더 보편화한 가치로서의 진보가 필요하다. 고민의 결론은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되었고, 그런 생각을 20쪽짜리 ‘페이퍼’로 만들어 지금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있는 김근태 선배를 찾아 갔다. 당시만 해도 김선배는 운동권의 대부로 여겨졌었다.

김선배는 ‘이제는 정치적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치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치를 하려면 확실히 하고, 그게 아니면 진보적 시민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입장이 달랐고, 김선배는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를 만나 보라고 했다. 김교수를 찾아가 고민을 말했더니 ‘그런 고민이라면 두 사람을 만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박원순 변호사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소개했다. 두 분 모두 나와 비슷한 고민을 이미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쉽게 의기투합한 가운데 1994년 1월 참여연대 결성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반독재 투쟁을 넘어서서 더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권력 감시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취지문과 함께 참여연대가 공식 출범한 것은 1994년 9월이었다. 참여연대는 사법 및 의정감시활동, 소액주주운동,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등을 통해 시민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면서 대표적 시민운동 단체로 성장해 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9월 ‘시민과 대통령을 잇는 핫라인’을 표방한 ‘개혁통신’을 발행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개혁통신’은 옷 로비의혹 사건 때는 권력 핵심부에 대한 쓴소리도 여과 없이 담아내 주목받았다. 같은 해 시작된 소액주주운동은 삼성 일가의 변칙증여, 현대전자 주가조작, ‘바이코리아’ 불법 운용 등을 지적해 냄으로써 재벌 감시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존재를 일반 국민에게 가장 확고하게 인식시킨 계기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벌인 낙천·낙선운동이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900여 시민단체로 이뤄진 총선시민연대의 중심에 섰고, 나는 참여연대 정책실장으로 있으면서 낙천·낙선 대상자 선정 실무작업을 맡았다. 참여연대가 짧은 기간에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운동 단체로 자리잡은 데는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었던 박원순(朴元淳) 변호사의 공이 컸다. 박변호사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실질적인 참여연대 대표 역할을 했고, 나는 정책실장으로 박변호사와 호흡을 맞춰 왔다.

참여연대에 일대 변화가 닥친 것은 2002년 3월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물갈이가 필요하다”며 사무처장직을 내놓은 것이다. 박변호사가 내놓은 사무처장직은 결국 내게 돌아갔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승계’로 비칠 수 있지만, 이 과정에는 적지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94년 창립 때부터 사무처 조직을 두루 맡아온 나는 언제부터인가 ‘항아리 밑바닥을 박박 긁어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충전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는 2002년 1월 1년짜리 휴직계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박변호사가 사퇴하기 얼마 전이었다. 미국에서 1년 정도 인턴생활을 할 계획으로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던 나를 호출한 박원순 변호사는 사퇴의 뜻을 밝히면서 “김기식 씨가 사무처장을 맡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변호사는 “학생운동 경험도 있고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도 탁월했기 때문에 김기식 씨가 후임으로 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나를 “굉장히 영민하고 친화력도 뛰어나다”고 평가한 박원순 변호사는 “외부에서 아무리 능력 있는 인물이 온다고 해도 참여연대처럼 자리가 잡힌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김기식 씨만한 적임자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미 재충전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입장은 달랐다. 나는 “절대로 못 하겠다”며 열흘을 버텼다. 그러나 박변호사의 퇴진 의사가 워낙 확고한 데다, 박상증 공동대표까지 나서서 “그냥 부름에 순명하라”고 거드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무처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무처장 제의를 그토록 고사했던 이유는 단순히 재충전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팎의 사정이 정 그렇다면 사무처장을 못 맡을 이유는 없었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 책임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그런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때 내 나이 37세였다. 박변호사처럼 6년간 사무처장으로 있다 물러난다고 해도 43세밖에 안 되었다. 나는 정치에는 생각이 없고 정말 시민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43세에 물러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여연대를 맡아온 사람이 다른 단체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 단체를 만들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에서 정말 사무처장은 맡고 싶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사무처장 자리를 맡은 후 나는 5년 간 2004년 탄핵 촛불시위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 파병 반대 운동 등을 이끌었다. 그리고 2년간의 안식년을 얻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다시 돌아온 지금 그가 서있는 자리는 역시 참여연대다.

# 그를 주목하는 이유 1
"그는 참여연대의 든든한 맏형이다. 그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불린다. 존경하는 형, 의지할 지원자, 자랑스러운 선배. 실제로 그는 무언가 그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있는것으로 생각이 들만큼 명민하게 판단했고, 이슈를 끄집어냈고, 실제로 세상에 변화라는 단어를 실체로 만들어냈다. 그의 활동은 대부분 시의적절했고, 공감을 얻었고, 시대의 흐름을 탔다.
 
무엇보다 시민운동가로서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젊은시절부터 고민해 온 문제의식과 가치들을단단하게 부여잡으면서도 이를 만들어가는 방식과 자세들을 끊임없이 혁신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중요한 활동의 동기라고 하면서도 분노와 구호로 일하지 않았다. 그는 정확한 근거와 논리와 현실적 가능성의 토대위에서 사고했고, 사안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가능한 대안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초심이라는 과거에는 철저하게 얽매이면서도, 과거에 갇히지 않고 그가 살아가는 시대와 호흡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유의미한 사회적 활동과 발언을 하는 것도 이런 그의 혁신적인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좋아하는 한 후배의 평가다. 이 정도 평가 받는 선배 많지 않다. 특히 시민사회 영역에서...

# 그를 주목하는 이유 2
 내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사실 이런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의 공적인 행보, 공적인 언어가 기막히게 맘을 친다. 어제 트위터를 통해 그가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를 봤다. 난 이 기사를 보고, 그의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 그 논리성과 현실성,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함에 놀랐다. 이 기사 전문 기재한다. 이 인터뷰 기사는 단순 기사가 아니다. 인간다운 사회,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고갱이들이 들어있다. 길을 잃을 때 한번쯤 다시 꺼내보면 좋을 이야기다.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프레시안, 2010년 1월 23일)
@ 프롤로그
복지가 대세다. 무상급식 논란이 촉발시킨 '복지' 담론은 국민들이 낸 세금의 쓰임새와 국가재정,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둘러싼 백가쟁명의 각축장이 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세력들에게는 비껴갈 수 없는 소용돌이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감세, 작은 정부, 시장 만능주의의 경제정책을 신념으로 내면화시킨 보수 정부로서는 복지라는 말 자체가 달갑지 않음이다. 하지만 복지 소용돌이는 여권의 미래권력들 사이에 균열을 냈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내걸고 이슈 선점에 속도를 붙였다.
반면 복지 담론은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우산이다. '뭉쳐야 산다'는 지상명제를 받아든 야권에선 연대·연합의 질서로 '복지동맹'을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론적 교감만 오갈 뿐 연대·연합의 방법론에서는 동상이몽이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복지국가 정치포럼'과 함께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 및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을 두루 만나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하는 연쇄 인터뷰의 네번 째 손님,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이다.

@ 전문
다음은 지난 11일 서울 옥인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김윤태 교수와 김기식 위원장이 가진 대담 전문이다.

김윤태 : 최근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정당까지 모든 정당들과 차기 대선주자들 대부분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의 논쟁, 어떻게 평가하나?

김기식 :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국내적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것 때문이 아니었나? 민주화 이후 민주정권 10년이 지났지만 양극화는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삶의 실제적 조건들이 악화됐다. 사람들이 다시 먹고사는 문제의 심각함에 봉착한 것이다. 지난 민주정권은 그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미래의 비전, 대안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익숙한 것으로 회귀했다고 할까, 사람들이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 성장주의 시대, 고도성장이 만들어냈던 시장적 분배효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것이다.
그 기대감은 이런 측면이었다. 과거 성장주의 시대에는 경제적, 양적 성장이 이뤄지면 임금이랄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산업 연관효과와 같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경제적 이익이 일정하게 분배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199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 산업적 연관효과도 끊어졌고,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정규직과의 분절화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또 대량실업자들은 자영업 쪽으로 대거 이동하게 됐다. 수출하는 대기업은 성장하지만 내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이윤율은 떨어지는 조건에서 성장이 시장을 통해 분배되는 효과가 끊어졌다.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통계상으로 보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급속하게 성장률을 회복했고, 경상수지 실적도 굉장히 좋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한강의 기적'에 대한 기대감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이 시장을 통해 분배되는 효과가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불과 2년 만에 그 성장주의의 신화가 깨진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시장주의·성장주의와는 다른, 국가에 의한 적극적 분배기능의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권이 선택한 성장주의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를 갖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적, 보수화된 흐름들이 지난 2008면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에는 포스트-신자유주의 쪽으로 가고 있다. 금융규제, 재정정책의 중요성, 노동과 고용친화적 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한 흐름을 반영해서 미국에서는 100년 만에 의료보험 개혁이 이뤄졌고, 일본도 파견제 금지와 같은 정책을 공식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 역시 복지국가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 형성돼 있다. 과거 보수야당 소리를 들었던 민주당에선 너도나도 복지를 이야기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조차도 "복지국가는 아버지의 꿈"이라고 하면서 다음 대선에서의 국가비전을 복지에 맞췄다. 결국 시대적, 세계사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윤태 : 왜 진보진영이 지난 10년 동안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하게 제기하지 못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기식 : 기본적으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 상황과 함께 물려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세계사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건에서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인 한국사회는 이와 벗어나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IMF 사태로 인해 강제되는 조건이 아닌 가운데 출범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방향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국내적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부재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DJP 연합이 아닌, 단독으로 집권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호남에 한정돼 있던 DJ는 결국 충청지역에 기반한 JP의 보수세력과 연합해 정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첫 1년 반 정도의 경제정책은 박태준이나 김용환, 이규성 등 JP그룹이 사실상 주도했다. 김대중 정권은 경제정책을 이들에게 위임해서 위기를 타개하는 데 거의 올인하게 된다. 전면적 복지국가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통합주의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 의료보험의 통합, 고용보험의 확대, 국민기초생활보호법 등 신자유주의와는 이념적으로는 반대에 있는 사회정책들이 이뤄졌다. 그런 면에서 김대중 정부를 일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부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분명하지만, 사회정책적으로는 복지국가적, 사민주의적, 통합적인 방향으로 갔던 모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 하에서도 연장해 나타난 측면이 있다. 노무현 5년을 돌이켜 보자. 집권세력 스스로가 시대적 과제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한 측면도 있고, 2004년 총선부터 1년 정도의 기간을 빼면 집권 5년 내내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주체를 형성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그런 지점이 상호작용하면서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김윤태 : 노무현 정부 당시 서민층 등 국민의 지지가 약화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김기식 : 노무현 정부 탄생의 가장 큰 동력은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이었다. 그 점에 있어 노무현 정부는 자신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검찰이나 국세청을 통한 권력통치를 포기하고, 자신의 수족을 자르면서까지 대선자금 문제를 수사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참여정부 출범 그 자체로 일정하게 정치개혁은 달성됐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출범하는 순간부터 먹고사는 문제라는 사회경제적 요구를 표출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이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해 국정 어젠다로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후반기에 와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양극화 문제 등에 집중했지만 그 때는 이미 정권이 각종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복지예산, 보육예산 등이 확대되는 성과를 냈지만, 국민이 원하는 만큼의 정책실현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윤태 : 김대중 정부는 1997-98년 외환위기에 직면하면서 불가피하게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들이 요구했던 삶의 질 개선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각각의 한계는 있지만 대체로 한국 사회의 복지는 발전해 왔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평가할 수준까지 왔다고 보는가?
김기식 : 퇴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또 집권세력의 정책담당자들이 양극화나 저출산, 고령화 등을 참여정부 초기의 국정 어젠다로 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성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복지제도의 확대를 폄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주요한 국가복지 시스템의 근간을 정비해낸 예는 많지 않다. 요즘 '보편적 복지'를 많이 거론하는데, 보편주의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상당 부분은 보편주의적으로 제도가 설계됐고 시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단일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독일만 해도 조합주의적 연금제도와 의료보험 시스템이 아닌가. 이는 서구의 복지국가 사례와 비교해 봐도 굉장히 진보적인 모델이다. 그것을 김대중 정부 기간 동안 달성해 낸 것이다. 국민기초보장법은 국민의 권리로서의, 동시에 국가의 의무로서의 복지를 규정한 최초의 법률이다. 김대중 정부는 복지를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는 기본원칙 속에서 확립해 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수급권자로 바뀌었다. 복지영역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수준의 변화다.
아직 사회서비스 영역에 있어서는 불충분하고,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일정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가 복지국가의 초입에 와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비어있는 부분은 물론 있다. 높아진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율로 인해서 제도 자체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시스템이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0%, 건강보험 가입률을 38%, 고용보험 가입률은 37%에 불과하다. 자영업자 중 상당 부분은 국민연금에서 빠져있거나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조건이다. 이렇게 형성된 사각지대 문제는 심각하다. 복지국가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의 과제다. 사회보험 영역에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문제, 또 하나는 보육이나 자녀양육, 노인복지 등 더욱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고 또 절박해지고 있는 보편적 요구를 사회시스템의 영역에서 충족시키는 일이다.

김윤태 :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이 지금과 같은 복지제도적 틀을 60-70년 걸려 형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년 정도 짧은 기간 동안 이뤄낸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해 보인다. 건강보험의 보편적 적용범위에도 불구하고 보장성 비율이 낮고, 자기부담 비율은 높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도 껍데기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의 복지모델이 미국식 모델처럼 극빈층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혜택을 주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가지고 출발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기식 :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주요한 국가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혁하는 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하고, 운동을 벌였던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 사회복지를 최소화하거나 특정 부분을 배제하려 했던 것은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복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입법화했던 것이다.
다만 참여연대 내에도 그런 반성은 있다. 우선 성장률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고, 또 다른 측면은 비정규직 문제다. IMF 이전만 해도 사실상 완전고용, 종신고용 상태였는데 경제위기 이후 우리의 노동시장의 변화가 너무나 급격했다. 정부 통계로도 실업률이 10%가 넘을 정도였고, 현재 비정규직 비율은 50%에 이른다. 35%인 자영업자 비율도 OECD 어떤 나라와도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을 IMF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가 복지제도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보완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계,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의 한계라는 생각이다. 2000년대 이후 국민연금 부분에 있어서도 기초연금 도입 논의가 시작됐고, 지금은 진보진영에서 대세를 형성한 것도 그러한 반성에 기인한 것이다.

김윤태 : 미국식 모델처럼 빈곤층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미국식보다는 유럽식 모델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김기식 : 특정한 해외의 모델을 목표로 설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계에서 복지국가 모델을 이야기할 때 북유럽의 사민주의 모델, 독일 조합주의 모델, 영미 자유주의 모델을 이야기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도 쟁점이다. 구체적 모델에 앞서 복지국가를 규정하는 조건을 봐야 한다. 서유럽의 복지국가는 높은 경제성장률, 베이비붐으로 인한 피라미드형 인구구조 즉 두터운 경제활동 인구, 상당히 높은 노동조합 조직률, 전통적 산업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조건 등이 작용해 구축됐다. 국가의 규모도 중요한 변수다. 북유럽 모델에서 공통적인 것은 대체로 1000만 명 이하의 작은 국가라는 점이다. 즉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실현가능한 복지국가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윤태 : 최근의 가장 큰 쟁점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편적 복지'는 우리의 조건에서 실현가능한 모델인가?
김기식 : 모든 것을 보편주의적으로 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결합된 형태일 수밖에 없다. 다만 보편적인 욕구가 존재하는 부분은 보편적 제도를 짜야 한다는 것이다. 노후대책이나 출산, 양육, 보육, 교육복지의 필요성은 아주 빈곤한 사람이든 중산층이든, 1%의 재벌가만 빼고는 다 느끼는 게 아닌가? 예를 들자면 있는 놈은 있는 놈끼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나눠서 하자는 게 선별주의적 접근이다. 그런데 계층을 나눠 접근하면 사회가 통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선별적 복지는 옳지 않다는 게 진보적 복지국가론자들의 주장이고, 저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보편적으로 하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보편적 욕구가 존재하는 곳에는 보편적 제도를 짜고, 제도와 정책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또 다양한 요구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영역에선 선택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대응하는 방식이 옳다고 본다. 보편적 제도 하에서 자산, 소득에 따른 차등 지원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독일의 조합주의 모델을 뛰어 넘은 측면이 있고, 의료보험시스템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우수한 편이다. 반면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측면에서 보면 미국보다도 못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 3% 정도만 무상의료 혜택을 받는데 미국은 14%가 받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을 두고 '천박하고 수준 낮은 복지제도'라고 이야기하지만 저소득층 의료서비스는 우리가 미국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김윤태 :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한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김기식 : 한국의 복지제도 모델은 일관된 흐름에서 설계되고 구축된 게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요소가 혼재돼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주체 중심으로 목적의식적으로 국가시스템을 짜지 못했고, 우후죽순으로 발전했다. 제도 간의 상호작용도 고려되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자유주의적이지만 다른 부분은 사민주의적, 또 다른 부분은 조합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대체적으로 보편주의적 복지가 담고 있는 사회연대성의 원리,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이 특정 복지모델로 가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은 학문세계에서나 가능한 범주화가 아닌가. 학자들 사이의 논의는 이해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국가론적 관점에서 하나의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와 노동, 복지와 산업, 복지와 재정정책 사이의 관계가 종합적으로 고찰되지 않으면 좋은 것을 나열해 놓은 것 이상이 될 수 없고, 복지국가도 건설할 수 없다.

김윤태 : 어쨌든 현재보다 더 많은 복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재원조달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지 않나.
김기식 : 재정을 빼고 하는 복지 이야기는 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국가재정 확대의 필요성은 어떤 복지국가를 상정하더라도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우리처럼 전체 GDP에서 국가재정이 30%정도면 복지국가로 갈 수 없다. 그러나 '증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전략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봐도 그렇다. 증세라는 용어에는 그 세금의 부담주체가 누구인지의 문제를 희석시키고, 국민 모두의 부담이라는 식의 정치선동의 대상이 될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국가재정의 확대를 정치적으로 막으려는 세력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적 동의기반도 만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증세보다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이뤄진 '부자감세의 철회'가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개념인 것 같다. 나아가 조세특혜 철폐라는 지점도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감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국민들도 모르고 진보진영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김윤태 : 한국의 조세감면 규모, 얼마나 되나?
김기식 : 올해 예상으로 약 31조 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는 18조 원 정도였다. 조세증가율에 비해 조세감면 증가율이 두 배 가량 된다. 이 조세감면이 어디서 이뤄지고 있는가. 낮아진 법인세를 환원하고, 나아가 더 올리자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자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삼성전자를 보자. 법인세 최고세율인 22%를 적용받는다면 10조 원 이익이라고 할 때 2조2000억 원을 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실제 삼성전자는 법인세를 1조1000억 원밖에 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0~11% 사이라는 것이다. 명목상 법인세율을 3% 증가시키는 것보다 삼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내야 할 법인세 22%를 제대로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조세 특혜다. 조세감면이라는 이름 하에 대기업이 받고 있는 특혜의 규모는 실제로 엄청나다.조세정의의 핵심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 자산소득이라는 명백한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혜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부자감세와 조세특혜의 철폐, 조세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이 실제로 재원을 확보하는 과정뿐 아니라 보수진영과 논쟁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관점이라고 본다.

김윤태 :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부유세를 언급하고 있고,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역시 사회복지세 신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증세 주장에는 반대한다는 이야기인가?
김기식 :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부유세나 사회복지세의 신설에 대해선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복지에 있어 기여자와 수혜자를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필연적으로 제도가 균열되고 보편적 복지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기여자가 수혜를 받지 못하면 제도 밖으로 나가서, 즉 민간의 영역에서 자신들끼리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게 된다. 본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돈만 내겠다는 사람이 있겠나? 조지 레이코프(<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증세-감세 프레임에 걸리면 우리가 무조건 진다. 현실적으로 봐도 이미 세금을 잘 내고 있는 사람에게 "더 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제대로 내라"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훨씬 더 설득력있는 접근이다.

김윤태 : 다음 대선을 앞두고 진보민주 진영이 연대나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위 '빅텐트론'을 제기했다. 한편에선 이념이나 가치가 다른데 무조건 모이자는 것이냐는 비판도 있다. 생각하고 있는 복지동맹, 진보적 정치연합의 모델은 어떤 구상인가?
김기식 : 복지국가의 실현을 정책의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복지국가는 명백히 정치적 산물이다. 복지는 결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근대복지제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질병보험, 재해보험 제도는 비스마르크 시절 도입됐다. 복지를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총자본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불만 세력, 혁명세력을 체제내화한다는 측면이 있지 않나. 반면 진보진영과 노동계급은 혁명적인 경로가 어려워진 가운데 대의민주주의 틀 내에서 복지제도의 확대를 관철한 양면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지제도는 양 진영의 끊임없는 정치적 힘겨루기, 그 힘들 간의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다. 진보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할 때는 사민주의적 복지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양쪽의 힘이 비슷하면 타협하며, 미약할 때는 자유주의적 복지모델로 간다. 한 사회의 정치사회적 역관계가 복지국가의 모델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복지국가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의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 사회적 역관계를 반영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염두에 둘 때 결국 핵심은 그것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치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의 조건은 굉장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중심적 정치주체가 미약하거나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다수를 점하는 민주당은 당 자체로 보면 중도 자유주의적 성향이고, 사민주의 성향의 진보정당은 지지율 2~5% 수준에서 소수로 남아 있다.
정치주체 형성의 관점에서 많은 진보적인 정치학자들이나 진보정당은 보수, 중도, 진보의 3자 정립구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상정할 때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다수를 점하는 중도 자유주의 정당을 축으로 소수 진보정당이 연합해서 복지국가를 실현한 예가 없다. 복지의 불가역적 성격으로 인해 복지국가가 형성된 이후 보수파가 집권해도 복지국가 모델이 유지된 경우는 있어도, 복지국가 형성과정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서구에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민주의 정당이 반(反)보수의 중심주체로 형성돼 있었다. 이러한 사민주의 정당의 힘이 세면 단독으로 집권하고, 약해지면 자신을 기준으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끌어들여 연립주체로 집권하는 모델이 아닌가. 반면 우리는 다수가 중도 자유주의 정당이고, 진보세력이 소수화된 구조다. 이것이 연립하고 정책적 합의문서를 쓴다고 해서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그것을 관철시킬 힘이 없다면 제도로 성립되기 어렵고, 현실적인 이행과정에서 거의 100% 왜곡된다.
복지국가를 진정 고민하는 세력에게 요구되는 중심적 과제는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다수화된 중심주체를 형성하고, 부족한 부분을 연합 혹은 연립정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내에서 복지국가의 책임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부분은 3분의 1, 적게 잡으면 4분의 1정도다. 진보정당은 소수화돼 있고, 시민사회는 정치 외부에 존재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산재된 형태로 흩어져 있다. 제가 이야기하는 빅텐트는 기존 정당질서가 통합하거나 합당하는 것에 국한된 관점이 아니다. 각각의 주체별로, 정치와 시민사회로 산재돼 있는 복지국가의 주체들이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복지동맹, 정치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복지국가 정치동맹'으로 결합하자는 것이다. 뭉치면 다수가 될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 지지율은 32~36%, 나머지 정당은 16~18%로 2대 1 정도의 구도다. 이것을 하나의 빅텐트 구조에서 생각해 보자. 민주당 내의 3분의 1세력과 진보정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 세력이 결집하는 순간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정치주체가 50%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그 상태에서 선거를 한번만 치르면 보수의 반대편에서 다수가 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된다.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사민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세력적으로 보면 한국사회의 3대 상수는 호남, 친노(親盧) 그리고 진보다. 이 삼자를 아우르지 않고서는 다수화해서 집권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본다. 단순히 집권뿐 아니라 이 삼자를 아우르는 정치주체를 만들지 않고는 결코 복지국가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빅텐트를 이야기한 것이다. 단순하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게 아니다. 빅텐트는 단일정당론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더 좌파적이거나, 혹은 중도 중에서도 일부 보수적인 그룹이 몇 개의 소수화된 정당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무관하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중심적 정치주체를 형성하자는 관점에서 빅텐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이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뭉쳐야 한다?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모두 정당설립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김윤태 : 그렇다면 정책연합이나 후보 단일화 수준의 선거연합을 의미하는 것인가?
김기식 : 아니다. 선거연합이나 후보 단일화는 분립해 있는 질서를 그대로 둔, 단순한 지분 나누기다. 그 전제는 현재 중도보수를 포함해서 중도 자유주의 세력, 호남 기득권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질서를 그대로 두고 단순히 정책 합의문서와 권력지분 나누기로 연립정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단일한 세력으로, 강력한 힘의 중심을 만들지 못하는 한 복지국가 실현 과정에서의 정치적 대립, 좌우의 공격, 시민사회 내부의 계급적 저항을 돌파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복지국가를 실현하려는 정치주체는 강력한 단일대오로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요구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더 진보적으로 이동해 있다.
그런데 정치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민주당이, 혹은 민주당 지도자들이 더 높아진 진보적 요구를 체화된 형태로 수렴해서 국가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신념,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적 기반을 갖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 연립정부를 수립해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도 그 정권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책을 현실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까. 그 지점에 대한 회의가 있다. 현재의 시대적 과제는 정치의 혁신이다. 민주당의 기득권적 구조를 해체시키고, 소수정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이 갖고 있는 소수파 정서와 이념적 경직성을 극복해야 한다. 민주당 내의 진보적 흐름과 진보정당, 시민사회의 진보적 흐름이 결집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복지를 추구할 새로운 주체, 새로운 정당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당이 나와야 한다. 다만 선언적으로 세력의 편제를 미리 설정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접근은 곤란하다. 분명한 가치지향,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내걸고 그것에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모이자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와 희망이 있는데 자신의 기득권 질서때문에 저항한다면 그 심판은 국민이 하지 않겠는가.

김윤태 : 결국 모든 정당들이 복지동맹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된다.김기식 : 그 시기와 경로는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치는 과정이다. 단일한 경로로 그림을 그리고, 세력을 편제한다고 해서 정당을 건설할 수 있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민주진보당, 결국 빅텐트는 '민진당 프로젝트'다. 복지동맹의 수준에서 민주진보 정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경로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지향을 가진 각각의 정치세력이 각 정당에서 주도권을 잡고, 그 다수화된 힘으로 당 전체를 끌고 들어와 합칠 수도 있는 것이고, 강력한 기득권적 저항이 발생하면 깨고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또는 중간 수준에서 통합하고 연합하는 과정에서 2단계로 질서를 만드는 단계적 과정일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일정한 정치적 과도기에 있다고 본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서의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정치주체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그 과도기적 과정은 앞으로 5년~10년 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2012년이든 2017년이든 정치주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복지국가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요하다. 정치세력을 만들지 않고 무슨 수로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나.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 사민당, 노동당이 다수가 되지 않고 연립정부를 통해 복지국가를 실현한 예가 있나? 중도 자유주의 정당 중심의 정치구도 하에서 소위 자유주의 모델을 넘어선 복지국가를 실현한 예가 있나? 5~10% 지지율의 소수 진보정당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실현한 예가 있나? 없다. 보수-중도-진보의 삼자 정립구도 하에서 진보정당이 나중에는 중도를 넘어 다수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20세기 초반 영국 보수당-자유당 구도에서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이 탄생한 사례를 제외하면 세계사적인 예가 있나? 한국에선 지난 반세기 동안 보수와 중도자유주의 정당이 각축하고 있는데, 그것도 분단 냉전체제, 삼자 정립구도 하에서 진보정당이 자체적으로 확장해 다수가 되겠다? 과연 상상할 수 있는 경로인가.

김윤태 :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제도정치권에 진입한 이후에 여러 성과도 있었지만 분명한 한계도 노정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기식 : 많은 사람들이 지난 2007년 대선을 지금의 민주당, 과거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고 평가한다. 100%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진보정당은 국민적 심판에서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13% 지지율로 화려하게 원내에 진입한 이후 진보정당의 지지율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도자유주의가 몰락하면 진보의 세가 확장되나? 2008년 촛불사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8%, 민주당 지지율은 9~12%일 때도 민주노동당 5%, 진보신당의 2% 지지율은 변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최대치까지 확장됐던 것은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했던 2004년 총선 때였다. 자유주의 세력의 팽창과 연동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현재 진보정당의 의미는 소수 견제자, 명백한 소수파 전략이다. 집권이 아니라 견제세력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김윤태 : 진보정당 내에선 이념과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민주당과 선거연합 이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면 민주당은 어떤가? 변화를 위한 모색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평가의 지점은 다양할 것 같다.
김기식 : 민주당이 자체혁신을 통해 복지국가의 정치주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민주당 내 혁신 세력 역시 자체의 힘만으론 호남 기득권구조와 그에 기반한 민주당 내 중도 세력의 주도권을 깨기 어려워 보인다. 복지국가 정치주체 형성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정당 확장론도, 민주당 자체 혁신론도 모두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의 진정성 있는 세력과 진보정당, 시민사회 세력이 합쳐 다수를 형성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게 제 관점이다. 그 과정에서 중도와 왼쪽을 끌어안으면서 더 확장된 형태로 빅텐트를 구성하면 더 좋겠다. 그 빅텐트 안에서 각각 다른 성향들이 내부 블럭으로서 경쟁하고 각축하는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 정당들을 봐도 민주당은 계파적, 진보정당은 정파적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을 보자. 공통의 합의기반이 있지만 하나의 정당 안에 이념적, 정책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역동적 정치과정속에서 정강과 노선, 대표주자가 결정된다. 계파나 정파 구조야말로 구시대적인 것 아닌가. 다양한 이념·정책그룹이 한 정당 내에서 각축하는 구조가 오히려 정당의 건강성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

김윤태 : 민주당에서 복지국가를 추구할 수 있는 세력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민주당은 복지국가를 추진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당 강령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았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보나?
김기식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국가부터 시작해서 민주당 내의 여러 복지국가 이야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이념과 신념을 자기 입장으로 하느냐가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 땅을 판다고 뭐가 나오나? 국가의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가 복지국가의 핵심인 것이다.국민소득 2만 달러. 11~13위 경제대국을 달성했는데 복지국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대한민국의 자원이 어디엔가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기업과 특권적 소수계층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 실현은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아서 국가가 대다수 서민에게 배분하는 문제다. 당연히 엄청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그 세력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 자본, 언론, 지식사회, 종교…. 그 저항을 뚫어내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선 강력하게 이를 뒷받침할 세력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저항뿐 아니라 시민사회 내의 기득권적 계급저항도 매우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다. 조세특혜를 폐지하자면 대기업은 가만히 있겠나. 대부분의 국민에게 해당되지도 않는 종부세를 '세금폭탄'으로 낙인 찍고 결국은 정권을 잡은 뒤 무산시켜버리는 상황에서 부유세를 하자고? 그렇게 해서 복지국가가 된다?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그 저항을 뚫고, 저항하는 세력에 맞서 정치적 힘을 갖고 타협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총자본과 총노동의 관점에서 타협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중심적 정치주제를 형성하지 못하는 한 복지국가는 그저 그림의 떡일 것이다.

김윤태 :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내부의 정치인들도 이런 빅텐트론에 동의하고 있다고 보는가.
김기식 : 진보정당 내에서 복지국가 정치주체 형성론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물론 이른바 정통 좌파의 입장에서 보면 사민주의 자체가 수정론이기는 하다(웃음). 하지만 그건 강단과 운동의 영역이지, 정치주체의 입장에선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윤태 : 현재 논의에서는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이 먼저 통합하자는, 소위 '비(非)민주 선통합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기식 : 비민주 선통합론은 위험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호남인들에게는 '호남 배제론'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 기득권 세력들에게도 "봐라, 또 우리를 빼려고 한다"면서 마치 '호남 자민당'과 같은 형태로 움직이려고 하는 명분을 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쪽에서 누구를 먼저 배제하는 식으론 곤란하다. 그 외에도 비민주 통합론이 갖고 있는 정치공학적 측면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와 노선을 이야기하면서, 국민참여당은 되는데 민주당은 안 된다?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오히려 복지국가 측면에서 보면 민주당이 더 왼쪽, 국참당이 더 오른쪽에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복지국가라는 지향을 놓고 이야기하면 모두에게 개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진정성을 갖는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태도가 옳지, 민주당과 지분 협상을 하기 위한 파이를 키우자는 게 공학적 논리 이상의 설득력이 있겠나. 차라리 진보정당 선통합론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정치권에 몸담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단정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물론 다르다. 어떻게 똑같겠는가. 하지만 조합주의적 복지국가 모델도,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게 진보적 자유주의 아닌가? 이념그룹으로서 경쟁할 수 있으니까 뭉치자는 취지다.

김윤태 : 민주당은 앞으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기식 : 민주당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민주당 내부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자체적인 힘만으로 민주당을 혁신할 수 있나. 어려울 것이다.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를 떠나서 세력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력적 통합을 통해 현재 민주당 내부 구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내부적 한계를 외부 세력과 통합하고 연합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어야 복지국가 세력이 다수화될 수 있다. 그것을 정당질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 과정에는 다양한 경로와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시기적으로도 2012년에 하면 좋지만 안 된다고 해도 중장기적인 과정을 거쳐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빅텐트는 민주당의 기득권 질서가 해체되거나, 혹은 노선적인 좌클릭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012년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김윤태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의 경우엔 어떤가?
김기식 : 진보정당은 이념적, 정치적 경직성을 좀 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국가는 뭔가,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정책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좀 더 현실에 밀착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세력적 역관계랄지, 계급투쟁이랄지 하는 부분에 누구보다 해박한 분들이 정책의 실현이라는 문제에 대해선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농반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노동운동 할 때 임단협을 통해 사측과 타협하는 게 주업이었던 분들이 왜 정치와 정책에 있어선 일체의 타협을 부정하고 비판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와 정책이야말로 타협의 산물 아닌가. 진보정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삼자정립 구도론, 확장적 집권론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봤으면 좋겠다. 핵심은 소수파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비판·견제 세력으로 남을 것인가, 스스로 다수화해서 복지국가를 실현할 것인가. 바로 그 지점이다.

김윤태 :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까지 참여하는 큰 틀의 빅텐트를 제기하고 있다. 참여연대도 몇몇 인사들이 정치인으로 출마하거나, 정치세력으로서 정당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김기식 : 개별 시민단체는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다. 다만 시민사회의 역할이 비판·견제자를 넘어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주체화 할 필요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민사회 인사들의 정치 참여는 하등 문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시민운동가가 정치를 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다만 복지주체 형성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단순한 정치참여로 귀결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非)정당적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서구와 같은 계급적 대중정당 모델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정치사회적 동력이 정당적 질서로 모두 다 담아지지도 않는다. 20~30대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정당적 질서로도 담아지지 않고, 개별 시민단체로도 담아지지 않는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동력을 담는 그릇이 비정당적 시민정치운동의 영역이라고 본다. 1987년 국민운동본부, 미국의 무브온이나 티파티같은 형태가 바로 이러한 비정당적 정치운동 조직이 아닌가.

김윤태 : 참여연대에 17년 째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동안 참여연대의 활동에 김기식 정책위원장이 중심적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이런 기대를 갖는 분들도 적지 않다. 오는 2012년 총선 때 출마할 의향도 있나?
김기식 : 개인적 거취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시민사회 내부에 시민정치 운동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히 넓은 편이다. 올 봄까지는 시민사회 운동에 복무해 왔던 분들이 시민정치 운동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을 내놓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시민정치 운동은 명백히 비정당적 시민정치 운동이고,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정치주체의 형성을 촉진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기본으로 해서, 정치주체 형성과정에 필요하다면 하나의 주체로 참여하는 문제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거취를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질문한다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에 있어서는 좋은 의미의 권력의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권력의지를 통해 권력을 잡고, 그 일원으로서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태도와 의지를 가져야만 정치를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불행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귀국한 이후 1년 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현실적 권력의지랄까, 그것을 제 안에서 찾기가 어렵다. 개인이 판단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시민사회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직접 물어 본다면 "정치를 하고 싶다"고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배가 고파도 시민사회가 낫다(웃음). 주변에서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시민정치 운동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계속 성숙시켜 보자" 고 답한다.

김윤태 : 김기식 정책위원장이 제기하고 있는 복지국가 정치운동이 좋은 성과를 남기길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김기식 : 지금 문제의 핵심은 국가의 역할론이다. 1990년대 이후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국가의 영역을 축소시켜 왔다. 진보가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율성 확대를 추구해 왔다면, 보수는 국가로부터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과적으로는 시장 지배력, 자본 권력의 강화로 귀결됐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의제나 한반도 의제는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고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역할, 국가 영역에 개입하기 위한 정치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와 억압 기제로서의 성격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국가 역할론의 강조는 20,30대의 자유주의적 경향과 모순된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에 대한 시민적 통제, 시민 주권성을 강조하고 싶고, 그런 맥락에서 복지국가론과 함께 '시민국가론'을 제기하고 있다.촛불시위 과정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불려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는 시민 주권성에 대한 대중적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의 형성과정이 다수 시민의 이해와 목소리가 국가의 정책과정에 반영되는 정치적 과정이란 점에서 시민국가론이 복지국가론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복지국가 논쟁이 보다 발전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복지국가 논쟁을 하면서 이론적이고 철학적 논의보다 사실은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 작년 연말 날치기 파동 이후에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봤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어떤 아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기초생활) 수급권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모 방송사 피디가 버려진 아이를 취재한 사연도 들었는데, 역시 희망을 물었더니 "어른이 되는 거요"라고 했다더라. 커서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다면서 내놓은 대답이었다. 장래 희망이 어른이고, 수급권자인 아이들에게 GDP, 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가장 바람직한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행복을 꿈꿀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지금까지는 기본적으로 부국강병론, 나라의 부강함만이 담론을 지배해 왔다. 진보진영에게도 국가와 사회를 고민하는 데 있어 노동자, 농민, 학생 등 사회집단적 사고가 중심이었다. 복지국가가 별건가. 국민 각자가 행복을 꿈꿀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정치를 하겠다는 게 복지국가 논쟁의 핵심이 아니겠나.

김윤태 : 긴 시간 진지한 답변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