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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1] 좌절의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하여. 필립로스가 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필립로스의 팬이 되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 “필립로스”에 대한 검색질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는 2015년 절필 선언을 한 후 한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견뎌낼 힘이 더 이상 없다. 쓰는 것과의 투쟁은 끝났다." 그렇습니다. 필립로스의 책을 따라 읽다보면 이건 투쟁이자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요하게 쫓아가고, 끈덕지게 묻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세상, 관계, 삶에 메스를 들이댑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 참 대단합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의 절망과 굴욕을 온 몸으로 현시하는 일이며, 그것과 싸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장 하나 하나, 스토리..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3: 전이하는 메타포] 조금이나마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태도에 대하여 [기사단장 죽이기]는 주인공의 성장과 변신에 관심을 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아픈 상처과 기억이든 반드시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그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지요. 이 소설은 그 은색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으로, 상징으로, 가상의 세계로 돌아가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메타포로서 말입니다. “나 돌아갈래!” 그것을 추동하는 계기는 마리에의 실종이었습니다. “펭귄 장식품은 마리에의 것이었군요. 소중한 부적을 구덩이에 두고 갔다. 자기보다 중요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시곗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시간을 새겨나갔다. 바늘이 나아갈 때마다 세계가 조금씩 앞으로 밀려나갔다. 창밖에는 밤의 어둠이 갈려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문득 기사단장이..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어두운 구름 뒤편, 성장과 창조에 대한 이야기 2부는 주인공인 “내”가 “아키가와 마리에”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키가와 마리에는 멘시키가 자신의 딸일 것으로 여기는 꼬맹이입니다. 멘시키의 부탁으로, 아니 어쩌면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인연 때문에 그는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마리에의 눈에는 신비로운 광채가 있습니다. 열기를 품은 동시에 철저히 냉정한 광채. 그는 그 눈의 반짝임을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마리에가 어린 시절 병에 걸려 죽은 여동생을 연상시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멘시키는 어떨까요? 마리에를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산꼭대기 대저택을 매입해 군사용 망원경까지 구입한 사람이 멘시키입니다. 그는 아이를 앞에 두고 피를 나눈 친딸이라고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새롭고 맑은 혈액을..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하루키의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근본적으로 나는 대체 누구인가?”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삶이 우울할 때, 쓸쓸할 때, 외로울 때 아파트 옥상에서 가끔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저도 모르게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늘 읽은 책은 .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나름 초상화 시장에서는 평판이 좋은 친구입니다. “나중에 커서 초상화를 그릴거야!” 그렇게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먹고 살기 위해 맡은 일들을 해치워 가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붓을 가지고 캔버스 앞에 앉.. 더보기
무엇이지 않기 위해...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난 이 책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인물도 상투적이고, 사건도 새로울 게 없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뭐가 없어.” 이 책을 다시 본 것은 점심을 먹던 한 선배의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정말 그래? 난 그렇게 안 느꼈었는데... 그래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게 합니다. 인간은 정말 숭고한 존재일까? 인간은 정말 아름다운 존재일까? 그 질문이 상투적이고, 1980년 광주라는 공간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한강의 이야기에는 매서움이 있습니다. 존엄, 자유, 사랑. 인간이라면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너지는 조건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숭고한 가치들이 얼마나 쉽게 좌절되는지, 한강의 문장은 날카롭.. 더보기
무서워하면 끝장이다. <그리스인조르바 3> 넌 도대체 조르바가 왜 좋아?도대체 왜왜왜? 왜가 없으면 좋아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거요? 이런 말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든 무언가 마땅한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럴 때 마주한 다음 문장은 제가 조르바를 좋아하는 이유의 처음이자 끝이에요. 나는 조르바를 마을까지 전송했다.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풍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두목 봤어요?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그는 이성의 방해를 받지 않고 흙과 물과 동물과 하느님과 함께 살.. 더보기
행복을 원한다구? 그럼 사기치지 말아요 <그리스 인 조르바 2> 어제 저녁 퇴근 길 한강을 걸어오면서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조깅하는 친구, 돗자리를 펴고 친구들끼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미세먼지가 걷히며 조금씩 선명해지는 하늘, 엉금엄금 살포시 강변북로를 밟고 있는 차들, 한강을 흐르는 유람선, 녹음이 짙어진 나무들, 개망초, 노랑선씀바귀, 벌사상자, 벳지, 냉이꽃, 지칭개, 노랑꽃창포, 민들레, 애기똥풀, 인동덩굴 등등 수많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 제게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은 스쳐가는 풍경에 불과하지만 조르바는 다릅니다. 조르바는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 한 송이를 꺾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 꽃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 더보기
내 사랑하는 친구 조르바 (1) 과거에는 이런 저런 책들을 마구 마구 읽어내는 것에 대한 어떤 갈망이나 조급이 있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드는 것처럼 읽는 것에도 이런 허기가 있었던 거죠. 어느 날 거실에서 여기저기 무질서에게 자리 잡은 책들을 바라보다 이제 왠만하면 책을 그만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자는 마음을 먹었다네요. 천천히, 오래오래. 그렇게 지난 한 달 제 가방에는 카잔스키의 [그리스 인 조르바]가 있었습니다. 조르바를 처음 만났을 때 그건 충격이었습니다. 너무 마초적이야. 누군가는 조르바의 야수성과 마초적인 목소리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조르바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일상이 무력해질 때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하하하 일상에 새로.. 더보기
개인주의자는 황금률을 지키옵니다 :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판사의 을 읽었습니다.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는 서구 근대철학에 있어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는 국가주의와 시장주의가 워낙 강하게 지대를 점령하고 있어 이 두 개의 근대성 축이 자리를 잡기 힘든 상황이죠.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근대성으로 핵심 축으로서 “합리적 개인주의를 허하라!” 정도 되겠습니다. 합리적 개인주의가 뭐야? 너무 추상적이고 학구적으로 보이시나요? 그러나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정말 고민하는 겁니다. 하~ 난 세상의 인정, 사랑, 존중 그런 것 받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지도 않고, 광장에 있으면 피곤해지고, 술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 외치면 도망치고 싶어요. 제발 저 좀 그냥 놓아둘 수 없나요? 개인주의자 .. 더보기
자기혁명의 길라잡이 [산 위의 신부님] 박기호 신부님의 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왜인지 울컥하는 거에요. 이 에세이는 너무도 위트있고 따뜻하며 사랑스런 삶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말이에요. 무엇이 마음을 이렇게 흔들었을까, 생각하면 그건 글이 아니라 삶이었던 것 같아요. 박기호 신부님의 삶이 제겐 큰 자극을 준 거죠. 박기호 신부는 2004년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공동체인 ‘산위의 마을’을 세운 사람이에요. 책은 서울이라는 소비와 반생태의 공간을 떠나 단양의 마을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시작해요. 산 위의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은 대안이 아니라 원안의 삶을 좇는 한 인간의 발걸음이었어요. “우리가 사이좋게 지냈던 시절의 기억으로 거슬러간다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었던 신부님은 잃어버린 본래의 삶을 찾아 안정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