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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기사단장 죽이기 3: 전이하는 메타포] 조금이나마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태도에 대하여



[기사단장 죽이기]는 주인공의 성장과 변신에 관심을 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아픈 상처과 기억이든 반드시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그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지요. 이 소설은 그 은색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으로, 상징으로, 가상의 세계로 돌아가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메타포로서 말입니다


나 돌아갈래!” 그것을 추동하는 계기는 마리에의 실종이었습니다.

 

펭귄 장식품은 마리에의 것이었군요. 소중한 부적을 구덩이에 두고 갔다. 자기보다 중요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시곗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시간을 새겨나갔다. 바늘이 나아갈 때마다 세계가 조금씩 앞으로 밀려나갔다. 창밖에는 밤의 어둠이 갈려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문득 기사단장이 방울의 행방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내 것도 아니었고 말이지. 오히려 장소에 공유되는 물건이었지. 어쨌거나 없어진 데는 없어질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걸세’.

장소에 공유되는 물건? 어쩌면 마리에가 이 인형을 구덩이에 놓고 간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 구덩이가 다른 장소로 통하는 건 아닐까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통로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p. 276)


마리에는 구덩이라는 메타포에서 어떤 통로로 나아간 것일까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힌트를 알려준 것은 이데아로서 기사단장이었습니다. 기사단장은 주인공인 "내"게 치매에 걸린 도모히코가 머물고 있는 병원에 가보라고 합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은 완만하지만 착실히 육체의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깊은 주름투성이의 백발노인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자라면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 법이고, 그는 바야흐로 그 지점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흐릿한 막이 덮인 듯한 눈동자 안쪽으로 놀랄 만큼 명석한 빛이 도사리고 있었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위해 그 빛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인상이었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계속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여전히 엷은 막 같은 것이 씌어 있었다. 그것은 생과 사 사이를 천천히 가로막아가는 얇은 레이스 커튼처럼 보였다. 커튼이 몇 겹씩 겹쳐지고 점점 그 너머가 보이지 않게 되다가 마지막에는 무겁고 두툼한 장막이 내려오는 것이리라. (p. 324~328)


치매에 걸린 도모히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사단장은 자신을 그림에서처럼 찔러 죽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존에 가졌던 생각, 이데아를 죽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제군이 제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줄 수 있네. 간단한 일은 아니야. 적잖은 희생과 가혹한 시련이 따르거든. 구체적으로 말해 희생하는 건 이데아고 시련을 겪는 건 제군일세. 그래도 괜찮겠나?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대체 뭔가요?

간단해 나를 죽이면 되네.

제군이 여기서 나를 죽인다. 나를 말살한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련의 리액션이 결과적으로 제군을 그 소녀에게 이끌어준다는 말이지. 제군이 보는 나라는 이데아가 숨을 거두는 거야. 이데아에게는 무수분의 1의 죽음이지. 그래도 하나의 독립된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네만.

하나의 이데아를 죽임으로써 세계가 변해버리지는 않나요?

그야 변하고말고. 하나의 이데아를 말살했는데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세계가 대체 얼마나 의미 있을라고? 그런 이데아는 또 얼마나 의미 있을라고?

제군은 나를 구덩이에서 꺼냈네. 제군은 나를 죽여야 해. 안 그러면 고리가 닫히지 않거든. 열린 고리는 어딘가에서 닫혀야 하는 법이네. 다른 선택지는 없네.

제군이 죽이는 건 내가 아니야. 제군은 지금 여기서 사악한 아버지를 죽이는 거야.

사악한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로 대지를 적시는 거다. 내게 사악한 아버지란 대체 누구일까?

조금 전에 그 남자를 봤을 텐데, 아닌가?

나를 더 이상 그리지 말라고.

그 남자는 말했다. 그리고 어두운 거울 속에서 나를 향해 똑바로 삿대질을 했다. 그 손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내 가슴을 찔렀다. (p. 339~ 342)


결국 그가 죽여야 하는 것은 기사단장이면서 이데아이면서 어두운 거울 속에서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는 사악한 아버지였습니다. 머뭇거리던 주인공이 마침내 그를 찔러 죽이자 도모히코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와 동시에 그림에서처럼 구석 바닥에서 작은 문이 열리며 머리 긴 남자가 올라옵니다.


저는 그저 현상과 표현의 관련성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따름입니다. 그냥 메타포예요. 사물과 사물을 이어주는 존재일 분이죠. 파도에 떠다니는 무능한 해파리 같은 존재라고요. 그러니까 죽이지 마십쇼. 좀 봐주세요.” (p. 377)  


주인공은 메타포를 협박해 그가 올라온 구멍 속으로 내려갑니다. 칠흑 같은 암흑. 스스로의 오감조차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매우 기묘한 기분입니다.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된 기분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찌됐든 전진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걸어도 천장의 높이나 어둠의 농담, 공기의 질감, 경사의 각도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생각은 수수께끼의 나무가 되어 어둠 속으로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나간다. 어쨌거나 나는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연달아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뭐가 됐든 상관없는 무언가를. 그러지 않으면 긴장한 나머지 과호흡을 일으킬 것이다. (p. 381)"


한참을 걸어가자 강이 나옵니다. 강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요? 그건 사람들이 그곳에서 뭘 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루키는 말합니다. 강을 건너주는 뱃사공은 얼굴이 없는 남자입니다. 마리에가 남기고 간 부적인 펭귄 모양의 휴대폰 고리로 뱃삯을 치르고 강을 건너자 기사단장 죽이기에 등장한 돈나 안나가 나타나 길을 안내합니다. 그녀는 내가 어디로 가든 길이 나타날 거라 말해줍니다.

 

어느 한 가지를 생각하려 하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로운 생각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듯이 방금 전 생각을 덥석 삼켜버렸다. 그리하여 생각은 점점 원래 방향을 벗어났다. 결국에는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려 했는지도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되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어두운 숲속의 길을 내처 걸었다. 무슨 생각이든 시작하면 그 생각이 나를 한결 더 어두운 장소로 데려갈 것 같아서였다. .. 공포와 의심은 어둠 속에서 얼마든지 가상의 눈을 만들어낼 수 있다. (p. 402~ 405)


길을 가는데 있어 가장 큰 적은 공포와 의심입니다. 실제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내 마음의 공포가 일을 틀어지게 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겁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말 그대로 제자리에 못박히고 말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온몸의 세포가 신선한 공기를 휘구하며 격렬하게 헐떡거렸다. 나는 철저하게 고독하고 무력하고 모든 빛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였다. 멈추지 말아요 그대로 전진하세요. 마음이 멋대로 움직이게 둬서는 안 돼요. 마음을 놓쳐버리면 이중 메타포의 먹이가 됩니다. (p. 417)


훌륭한 메타포는 모든 현상에 감춰진 가능성의 물줄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하나의 광경 속에 또다른 새로운 광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처럼요. 그러나 이중 메타포는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 치워가며 몸집을 불려갑니다. 이 이중 메타포는 옛날부터 쭉 우리의 마음 깊은 어둠에 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에게는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이중 메타포입니다. 가는 곳마다 나타나 어둠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겁니다. 가는 길은 점점 좁아지고 공황이 주인공을 덮칩니다. 팔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굳어버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등줄기를 훑고 올라왔다. 이것이 이중 메타포인가? 내 안의 어둠에 살고 있다는 그것? 더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억지로 앞으로 밀어냈다. 굴이 더 좁아져서 이제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나는 이성 따위 전부 내던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몸보다 작은 공간으로 나아갔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령 온몸의 관절이 마디마디 분해되더라도.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p. 425)


기고 기어 결국 횡혈을 통과해 아래로 떨어지면서 도착한 곳은 산 속에 파놓은 구덩이였습니다. 그 구덩이에서 방울을 울리면서 주인공인 는 이 어둠과 구덩이에서 빠져나간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유즈부터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물론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분노도 느꼈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기분을 안은 채 살아갈 수는 없는 거였습니다. 주인공의 삶에 있어 앞으로 나가가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아내 유즈와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유즈에게 전화를 겁니다.

 

열두시가 조금 넘어 유즈가 일하는 건축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창문 바로 앞을 가로질렀다. 반질반질하고 새카만 날개가 햇빛에 번쩍였다. 우리가 입에 올린 짧은 말은 한 여름 소나기처럼 메마른 현실의 지면에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당신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 ,,

수화기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석기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처럼. 나는 유즈를 만나려 한다. 머지않아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을, 헤어진 아내를, 약속장소와 시간도 정해졌다. 이게 올바른 일일까? 완전히 올바른 일이나 완전히 올바르지 않은 일이 과연 이 세계에 존재할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비가 내릴 확률이 30퍼센트일 때도 있고 70퍼센트일때도 있다. 진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0퍼센트 진실일 때도 있고 70퍼센트 진실일 때도 있다. 우리가 얼굴을 보는 것은 3월 이후로 처음이다. 지금 그녀는 임신 칠 개월이다. 커다란 변화다. 나는 여전히 그냥 나다. 며칠 전 메타포 세계의 물을 마시고 무와 유를 가르는 강을 건넜지만 그러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는지, 혹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p. 476)“



주인공이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마리에도 현실로 돌아옵니다. 마리에는 주인공인 게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호기심에 멘시키의 집 안에 몰래 들어갔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혔던 이야기, 그녀 역시 기사단장을 만났고 덕분에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 주인공과 마리에는 3일간 있었던 서로의 행적을 이야기하며 비밀에 부치기로 합니다.


그 날 이후 그는 미완성 초상화를 마리에게 전하고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어 다시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말합니다.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것, 다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머리를 비우고 손에 익은 기술을 구사하며 불필요한 요소는 일절 내 안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이데아나 메타포니 하는 것들과 엮이지 않는 것. 골짜기 맞은편에 사는 수수께끼에 싸인 유복한 인물의 복잡한 개인사에 말려들지 않는 것, 좁고 어두운 지하세계의 동굴로 끌려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이 현재 내가 무엇보다 바라는 바였다. (p. 578)


그리고 유즈를 만나 재결합하자고 말합니다.

다시 당신에게 돌아가도 괜찮을까? 혹시 가능하다면.

좋아.

유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별로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당신 좀 변했나? 표정이나 그런 거.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 배운 게 있긴 해.

나도 몇 가지 배운 것 같아.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멀어져 있던 그리운 풍경을 오랜만에 바라보는 것처럼. 그러고는 테이블에 놓인 내 손에 살짝 얹었다.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당신과 새로 시작하고 싶어.

유즈가 말했다.

실은 계속 그 생각을 해왔어.

나도 계속 그 생각을 했어.

내가 말했다.

그래서 잘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잘 몰라.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어.

나는 곧 아버지가 확실하지 않은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상관없어.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는 당신이 낳을 아이의 잠재적인 아버지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생각이 당신을 임신시켰는지도 몰라. 일종의 관념으로. 다시 말해 일종의 가설로. 유즈는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제법 근사한 가설일 거야.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라.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날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p. 584)


주인공은 도모히코 집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유즈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내에게 돌아와서 몇 년이 지나 동일본 일대에서 큰 지진이 납니다. 그곳은 그가 한때 낡은 푸조 205를 몰로 정처 없이 떠돌던 지역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다 그 시간을 떠올리던 주인공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 지역을 돌아다니던 시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극히 고독하고 서글프고 답답한 심경을 안고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실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이어가며 수많은 낯선 이들 틈에 섞여 그들의 일상 속 여러 장면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 -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 몇 가지를 버리고 몇 가지를 건졌다. 그 장소들을 지나온 나는 그전과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었다.” (p. 586)


다시 읽어보니 <기사단장 이야기> 2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급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루키가 펼쳐낸 세계가 워낙 방대하여, 그것이 모두 소화하기에는 지면이 짧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것을 쓴 하루키는 그것을 쓰기 전 하루키와 조금은 다른 인간이 되었을 테고, 그것을 본 독자 역시 이전과는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수히 믿을 수 있게 된 것, 그 믿음을 배경으로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를 창조해가는 것. <기사단장 죽이기>가 주인공에게, 독자에게 전하는 삶에 대한 작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