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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오늘을 가볍게 넘어서기 -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이 니체전집입니다.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유고,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등. 물론 제대로 읽은 것은 한 권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를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장 제일 위쪽 오른편에 꽂아 놓은 것은, 언젠가는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를 만난다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고개 끄덕이며 배우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겁이 나죠. 니체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단절하겠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나와 나의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적어도 여기 저기서 들은 니체의 이야기를 조합하면 그렇다는 겁니.. 더보기
맑스가 Mediation을 이야기 한다면? - Livingstone (2009) On the Mediation of everything.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굳이 블로그에 옮길 이유는 없지만, 뭐~ 여기에 기록해두면 숙제로 내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지는 않아서, 앞으로는 조금씩 흔적을 남겨야겠다. “There is no pure experience prior to mediation' 리빙스톤의 ‘On the Mediation of Everything’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 그러나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지게 만들었던 문장.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문장을 보면서 요즘 읽고 있는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2004)’이 오버랩되었다는... 이 책은 맑스의 대표 저작 자본에 대한 이야기다. 맑스가 서술한 ‘자본’이 아니라, 이진경이 공부한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만약 리빙스톤의 저 .. 더보기
신정아와 우리 사회가 고개를 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 - 4001을 본 소회 1. 4001. 정아씨가 1년 6개월간 가슴에 달고 있었던 수인번호. 4001을 달고, 여론의 뭇매를 마지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억울함, 배신감, 분노, 절망, 좌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픈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 겪었을 듯 싶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온 지난 시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언론이 과도하게 그녀를 상품화시켜 융단 폭격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아라는 이름이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빗겨가면서, 그녀는 작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토해내지 않으면 화병이 날 것 같은 마음,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 공적인 영역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섞여 4001은 탄생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과 의지, 그리고 욕망을 존중한다. 그것은 언젠가 시간이 한.. 더보기
테크노폴리에 길담서원 짓기 - 포스트만 [테크노폴리] 1. 경복궁 근처에 길담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테크노폴리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문득 이곳이 떠올랐다. 길담서원이 위치한 동네엔 ‘길’과 ‘담’이 어울어져 있다. ‘길’과 ‘담’은 떠남과 머무름, 열림과 닫힘, 비움과 채움이라는 은유가 담겨 있다. 우리는 길을 떠나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길 위에서만 살 수 없다. 담으로 둘러쳐진 안식의 공간이 배면에 깔릴 때, 그곳이 내 정신이 상승하는 근거지가 될 때, 떠남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담이 없다면 길은 정처없이 헤메고, 방랑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길담서원은 이름 그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옛 서원의 계승을 표방한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며,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각 지역의 정신적 중춧돌로서의 역할을 했던 .. 더보기
박완서 # 일대기 나는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여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숙부와 오빠를 잃는 등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40대에 접어든 1970년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裸木)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공모전에 당선될 때 나는 다섯 아이를 둔 40세의 전업주부였다. 이 소설은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초상화부에서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이다. 을 비롯해 내 작품들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파헤치거나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 더보기
3월21일(일) 뚱뚱함을 벗고 아침을 열다 (박민규 아침의 문) 1. 요즘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아주 바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지키기로 했던 약속들이 자꾸 뒤로 미뤄진다. 어제 아침 오랜만에 북한산에 올랐다. 등산이 아니라 운동이었다. 나와 선배는 산을 뛰다시피 올랐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시작하여, 칼바위능선을 지나, 백운대 근처까지 정신없이 올랐고, 완만하지만 긴 진달래 능선을 단거리 선수처럼 뛰어 내려왔다. 중간에 몇 번 바위에 걸터 앉아 쪼잔해 보이는 서울을 내려보며 보온통에 담긴 물을 마시기도 했지만, 이 휴식은 펄떡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아주 살짝 움켜지는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산을 꼭 이렇게 힘겹게 오를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오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의도다. 뭔가 심리적으로나 육.. 더보기
2월 12일 금요일 두 개의 세계 운명은 항상 나보다 많은 것을 아는 것 같다. 딱 6개월만에 KBS로 복귀했다. 복귀 후 또다른 일상이 시작되었다. 마치 시간이 내가 해고된 2009년 7월 18일에서 복직한 2010년 2월 4일로 훌쩍 뛰어버린 느낌이다. 복직 첫 날, 팀장님이 자신의 자리에 6개월동안 고히 간직해 놓았다는 내 컴퓨터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은 후, 컴퓨터를 켰더니 놀랍게도 모든 것이 똑같았다. 6개월전과 말이다. 단지 6개월의 여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탕화면에 임시라는 폴더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안에 팀장님이 6개월 동안 손수 작업해 놓은 자료들이 쌓여있는 것 뿐이었다. 그랬다. 자리도 똑같고, 컴퓨터도 똑같고, 사람들도 거의 변화 없고, 그렇게 다시 KBS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 더보기
1월 19일(화) 사랑은 엄청나게 시끄럽게... [엄청나게 시끄럽고 및을 수 없게 가까운] 가끔 꿈을 꾸다 훌쩍 거리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그녀가 죽거나, 그놈이 죽거나... 영락없이 이런 꿈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다 잠이 깬다. 그리고 죽음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묘한 안도감에 사로잡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꿈이었군요.’ 그리고 다시 잠이 들고, 다시 죽음을 잊는다. 죽음. 누구나 피해갈 수 없지만, 아무도 인정하기 싫은 것.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지만 우리는 그 상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죽게 된다는 것.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현실을 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럼으로서 개인의 역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후회하거나, 통곡하거나... 그.. 더보기
2009년 11월 30일 - 풍경의 아름다움은 슬픔에 있다. 오르한파묵의 이스탄불을 읽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9년 서울을 생각한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슬픔에 있다." (아흐메트 라심)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버스 창문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그 흘러내림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학교 연구실에서 언론노조 사무실로 가던 길이었다. 2009년 가을은 그랬다. 매일같이 관악산 밑자락과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갔다. 그 숨가픈 시간 속에 난 끊임없이 서울의 아픔을 만나고 느끼고 그랬던 듯 싶다. 어느때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고, 어느때보다 많이 목청을 높였으며, 그러면서 슬픔은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하던 동반자였다. 투쟁, 철폐, 해고, 자본, 공익, 효율. 노동, 언론 지난 2009년 내 주변을 감쌌던 추상적이며 정치적인 단어. .. 더보기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 "자신의 입은 목소리를 갖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해 말하고 있다'고 말하던 시인. 그는 인간을 끝없이 괴롭히는 혼동과 카오스, 어둠, 고독을 노래하던 시인이었다. 이 소설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따뜻한 기분좋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조급하게만 돌아가는 오늘의 내게 이 소설은 시원한 인도양 어느 한적한 섬의 바닷바람으로 다가섰다. --------------------------------------------------------------------------------- 1. 사랑 (1) 시작 심장이 너무 강력하게 펌프질을 해댔기 때문에 가슴에 손을 얹어서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시인에게 그렇게까지 번적이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던 바다가 마리오에게는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