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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무엇이지 않기 위해...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난 이 책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인물도 상투적이고, 사건도 새로울 게 없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뭐가 없어.” 이 책을 다시 본 것은 점심을 먹던 한 선배의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그래? 난 그렇게 안 느꼈었는데...

그래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게 합니다. 인간은 정말 숭고한 존재일까? 인간은 정말 아름다운 존재일까? 그 질문이 상투적이고, 1980년 광주라는 공간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한강의 이야기에는 매서움이 있습니다. 존엄, 자유, 사랑. 인간이라면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너지는 조건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숭고한 가치들이 얼마나 쉽게 좌절되는지, 한강의 문장은 날카롭고 차갑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되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초를 태워도 아무 소용없네. 냄새를 견디며 너(동호)는 강당에 들어간다.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입관을 못한 서른 두사람의 몸들은 흰 무명천에 덮인 채 넓은 창 아래 누워 있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올릴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눈에 띄는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처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 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 (p. 12)


도청 상무관에서 소년 동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침묵하며 누워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입니다. 왜 소년 동호는 죽은 자의 혼과 부패하는 육체가 울고 있는 상무관에 들어온 걸까요? 총에 맞은 친구 정대를 뒤로 한 채 혼자 달렸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와 정대의 누나, 정미 누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때리기라도 했다면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었을 텐데, 정미 누나마저 그들의 총칼 사이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부채의식, 우리는 때로 그 부채의식 때문에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육체와 시취가 가득한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 것도 용서하지 않으며.움직일 수 없었던 나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소년이 온다>의 각 장은 동호와 관련된 인물 개인이 겪은 아픔과 상처가 서로 다른 결에서 그려지는데요, 그 아픔이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이라 아픕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모두 영혼의 파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령, 80년 당시 여고생이었던 그녀 은숙.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도청으로 되돌아가는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도청을 나오기 전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멘 동호를 발견했을 때,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눈꺼풀이 떨리는 동호와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영혼은 바로 거기에서 부서졌습니다.


대학생 진수의 영혼을 무너뜨린 것은 평범한 모나미 볼펜이었습니다. 도청에서 나와 향한 그곳에서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었습니다. 그날 도청을 떠나지 못한 것은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군인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기억하는 건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이었습니다. 마치 광주의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진수를 사로잡은 건 그것이었습니다(p. 115). 그러나 그곳을 나와 모나미 볼편으로부터 시작되는 고문은 영혼을 너무도 쉽고 허무하게 파괴시켰습니다.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 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인간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 자체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p. 121).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바로 나였습니다. 영혼이란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던 겁니다.


70년대, 80년대 노동조합을 만들고 구속되고 해고되고 그러다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 미싱사 시다로 취직했다 광주 민주화항쟁을 마주한 선주, 도청에서 나와 삼십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휴벼들어오는 고문을 당하고,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겨 기절하고, 이후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이후 몸을 증오하게 됩니다. 모든 따뜻함과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모든 관계로부터 도망치면서 차갑고 고독하며 안전한 불빛의 작은 동그라미에만 머뭅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동호의 어머니. 자기 손으로 아들을 묻으면서 울지도 않고 뗏장 옆에 풀을 한움큼 끊어서 삼켰습니다. 삼키고는 쪼그려 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움큼 끊어다 씹었습니다. 어머니의 한이었습니다. 전두환 그놈이 광주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옥상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그렇게 싸웠습니다. 봄이 오면 미쳤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습니다.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지는 겨울. 아들이 죽은 후 어머니의 삶은 캄캄한 쪽으로만 갔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죽은 정대의 혼이 동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2검은 숨」입니.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를 보러 광장에 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맞습니다. 군용트럭에 실려 정대는 다른 시신들과 함께 어딘가에 버려집니다. 정대는 혼이 되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을 담담히 설명합니다. 죽은 혼들은 온 서로를 그리워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법은 없습니다. 혼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투명한 유리벽 같은 것이 있어서 슬픈 영혼들은 그 유리벽을 한없이 더듬고 핥지만 서로 끝내 닿지 못하고 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창백한 해가 떠오르는가 싶더니 맹렬하게 하늘의 중앙을 향해 전진해 올라갔어. 덤불숲 뒤에 쌓인 우리들의 몸은 이제 햇빛을 받아 썩기 시작했어. 먹피가 굳은 자리에 쇠파리들과 날파리떼가 날아와 앉았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 소리가 들린 것 그때였어. 한 번에 수천 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 같은 폭약 소리. 먼 비명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그때 동호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그때 그곳으로 가야 했을까. 여전히 눈에서 피가 흐르는 채 서서히 조여 오는 거대한 얼음 같은 새벽빛 속에서 나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어." (p. 51~62)


한강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로 어떤 강렬한 이미지와 영상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와 영상은 진하게 고통스럽고 차갑게 냉철합니다.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 속에 섬뜩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소년이 온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단편들은 외롭고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훼손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훼손되었던 시간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버리게 됩니다


헛된 희망과 기대 없이 선한 기운과 파동이 섞일 수 있는 현장의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매년 5월 광주, 죽은 소년이 다시 옵니다. 이 소년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이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은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게 또한 인간입니다.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왕이면 햇빛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많이 피고 밝은 곳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대던 순간,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희를 느끼게 되는 느낌을 부여하는 양지로 가야, 그나마 영혼이라는 걸 지켜낼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을 믿지 않으면서, 헛된 희망을 품지 않으면서,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선한 기운이 만들어지는 시공과 악한 기운이 만들어지는 시공만 있을 뿐. 그래서 질문하게 되는 것은 하나. 어떻게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 선한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갓 나온 책을 두고 앞에 앉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그녀는 책을 덮고 기다렸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