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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2] 배신과 삶에 대하여 배신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시대 배경인 1940년대, 50년대의 혼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한 사회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시대뿐만 아니라 평온한 시대에서도 배신은 인간의 단골 메뉴 중 하나죠. 우리는 그만큼 자주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고, 또 그들에게서 배신당합니다. 아이라는 의붓딸 실피드의 절친 패멀라와 마사지사 헬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아내 이브는 그와의 결혼생활을 고백한 책을 통해 아이라를 배신합니다. 의붓딸 실피드는 엄마 이브를 배신하고, 아이라의 절친 박제사는 아이라가 공산주의자임을 폭로합니다. 모두가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배신하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필립로스가 응시하고자 하는 삶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믿을 수 없는 여러 모습.. 더보기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1] 좌절의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하여. 필립로스가 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필립로스의 팬이 되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 “필립로스”에 대한 검색질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는 2015년 절필 선언을 한 후 한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견뎌낼 힘이 더 이상 없다. 쓰는 것과의 투쟁은 끝났다." 그렇습니다. 필립로스의 책을 따라 읽다보면 이건 투쟁이자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요하게 쫓아가고, 끈덕지게 묻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세상, 관계, 삶에 메스를 들이댑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 참 대단합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의 절망과 굴욕을 온 몸으로 현시하는 일이며, 그것과 싸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장 하나 하나, 스토리.. 더보기
[대화의 희열] 김숙의 자유로움 [대화의 희열] 1회는 재미있습니다. 왜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90% 갓숙때문입니다. 첫 방송 시청률은 2.1%. 수치는 정직합니다. 나는 재미있게 봤어도,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갓숙의 이야기를 듣는 패널은 공교롭게도 중년 아재들로 수렴되었고, 그 중 누군가는 잘 듣지 못했고, 누군가는 어색했고, 주변의 경쟁 프로그램은 너무 강력했습니다. 방송 종료 후 인터넷에는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갓숙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패널은 죄다 아재새끼들인 거냐? 이런 지적들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어쩌면 [대화의 희열]의 생로병사를 판가름하는 주요한 준거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프로그램이 좋았습니다. 내가 왜 “김숙”을 좋아하는 지를 이해하게 돼서 .. 더보기
[오늘의 탐정] 상처받은 자들의 이야기, 호러와 탐정의 콜라보. [오늘의 탐정]을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미니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호러가 더해진 탐정물이거든요. 1~2회 이야기는 대단히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의 시작은 흥신소가 아니라 탐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다일(최다니엘)이 실종된 아이 세 명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범인은 어린이집 선생님 찬미(미람)인데요.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 정도 수준이 아니구요. 찬미를 뒤에서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아니 보이는 손이 있는 겁니다. 창백한 표정과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온 선우혜(이지아)가 그 “손”인데요. 탐정 이다일은 어린이집 지하에서 아이 둘을 구하지만 정작 이 사건을 의뢰한 아버지의 아이를 찾으려다 누군가 휘두른 망치에 쓰러지고, 비오는 새벽 땅에 파묻힙니다...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3: 전이하는 메타포] 조금이나마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태도에 대하여 [기사단장 죽이기]는 주인공의 성장과 변신에 관심을 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아픈 상처과 기억이든 반드시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그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지요. 이 소설은 그 은색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으로, 상징으로, 가상의 세계로 돌아가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메타포로서 말입니다. “나 돌아갈래!” 그것을 추동하는 계기는 마리에의 실종이었습니다. “펭귄 장식품은 마리에의 것이었군요. 소중한 부적을 구덩이에 두고 갔다. 자기보다 중요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시곗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시간을 새겨나갔다. 바늘이 나아갈 때마다 세계가 조금씩 앞으로 밀려나갔다. 창밖에는 밤의 어둠이 갈려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문득 기사단장이..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어두운 구름 뒤편, 성장과 창조에 대한 이야기 2부는 주인공인 “내”가 “아키가와 마리에”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키가와 마리에는 멘시키가 자신의 딸일 것으로 여기는 꼬맹이입니다. 멘시키의 부탁으로, 아니 어쩌면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인연 때문에 그는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마리에의 눈에는 신비로운 광채가 있습니다. 열기를 품은 동시에 철저히 냉정한 광채. 그는 그 눈의 반짝임을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마리에가 어린 시절 병에 걸려 죽은 여동생을 연상시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멘시키는 어떨까요? 마리에를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산꼭대기 대저택을 매입해 군사용 망원경까지 구입한 사람이 멘시키입니다. 그는 아이를 앞에 두고 피를 나눈 친딸이라고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새롭고 맑은 혈액을.. 더보기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하루키의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근본적으로 나는 대체 누구인가?”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삶이 우울할 때, 쓸쓸할 때, 외로울 때 아파트 옥상에서 가끔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저도 모르게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늘 읽은 책은 .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나름 초상화 시장에서는 평판이 좋은 친구입니다. “나중에 커서 초상화를 그릴거야!” 그렇게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먹고 살기 위해 맡은 일들을 해치워 가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붓을 가지고 캔버스 앞에 앉.. 더보기
잊고 싶지 않은 [주문을 잊은 음식점] 금년에 방송된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이 남은 프로그램이 뭘까? 개인적으로 최고의 프로그램은 [나의 아저씨]였습니다. 언젠가 [나의 아저씨]를 복기할 시간이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그늘진 공간의 정서와 이야기를 이토록 따뜻하게 풀어낸 드라마는 앞으로도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아요. 픽션 영역에서 최고가 [나의 아저씨]였다면, 논픽션 영역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은 지난주 종영한 [KBS스페셜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부작]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거에요.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영업종료”가 된 식당 곳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에서 정말 예기치 않게 눈물이 흐르더니 도대체 멈추지는 않는 거예요. 언젠가 어떤 독서모임에서 “노년”에 대한 책을 함께 읽었는데, 이.. 더보기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네.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를 봤습니다. 너무 친근해서 눈에 띄지 않는 동네 보물창고(이발소, 슈퍼, 방앗간 등)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를 김영철의 발걸음과 따뜻한 목소리로 이끌어 냅니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행복했어요. 어릴 적 슈퍼 아저씨, 이발소 아저씨, 우동집 아주머니, 방앗간 할머니가 떠올랐고, 동네에서 함께 소독차를 쫓아가던 친구들이 떠오르는 거에요. 일을 끝내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식당 할머니를 카메라가 길게 잡을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어느새 할머니가 된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고, 이모가 보고 싶기도 하고. 참 묘한 기분이었어요. 요즘 KBS에서 이런저런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최근 본 프로그램 중 가장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더보기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의 이야기 <거리의 만찬> 을 봤습니다. 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난 거리의 만찬. 파일럿1회를 보면서 “그래 공영방송은 이런 만찬을 준비해야 했던 거야.” 이런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았습니다. 방송인 박미선, 정의당 이정미 대표, 아산연구소 김지윤 박사. 은 여성 3인이 이슈의 현장을 찾아가는 토크쇼입니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현장과 사람을 만난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엣지인데, 첫 회로 그들이 찾은 곳은 서울역 KTX 승무원들이 노숙 농성을 하는 파란 천막이었습니다. 천막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노숙 당번들. 13년째 서울역 한귀퉁이 거리에 있는 여승무원들입니다.서울 곳곳을 다니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이런 천막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천막에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있고, 피켓이 자리 잡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