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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통즉불통, 통하면 아프지 않다. 통즉불통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通則不痛 통하면 아프지 않다. 이것은 동양 의역학을 대표하는 아포리즘이다. 이른바 통한다는 것, 흐른다는 것은 건강하게 산다는 뜻이다. 반대로 아프다는 것은 어딘가가 막혀있다는 거다. 통하고 막히는 것, 이 경계는 실로 다양합니다. 몸과 마음, 나와 너, 몸과 조직, 몸과 우주, 물질과 정신 등등. 요즘 곳곳에서 부동산 값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문명은 그것이 자본, 효율, 이윤, 생산성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은 게 쉽지 않다. 자본의 논리는 통함을 욕망하지 않고 축적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최소비용과 (누군가의 수익을 가로채는) 최대수익과 독식과 배제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나와 네가 분리되고, 물질적으로는 넘치고 넘치지만 정신.. 더보기
기의 흐름과 비움에 대하여 가을이 왔다. 바람이 분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경복궁의 옆자락 길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무언가 그 걸음과 함께 내 안의 기운이 잘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 의역학에서 건강함이란 기의 흐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흐름이 막히면 거기서 병이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관건이다. 경복궁 옆자락에서만 아주 잠깐 흐름이 좋으면 뭐해?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다.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보폭을 맞추어 가는 거다. 낮과 밤, 기의 조절은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루는 일생의 축소판. 나는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저녁 죽는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 더보기
[제국의 구조] 6부 자본주의의 끝, 거기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다시 제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야기는 서양에서 시작합니다. 이유는 하나. 지금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창조한 근대라는 개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엄청난 교회와 성당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유럽의 중세는 교회=세계의 세상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가 세계=제국의 시스템으로 움직일 때 제국의 변방 유럽은 세계=교회의 시스템 위에 자리잡고 있던 것입니다. 세계=교회에 대한 반란은 종교개혁이라는 형태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붕괴 속에 자리잡은 것은 절대왕권이었습니다. 절대왕권은 왕을 신성화하지만 그 왕권이 봉건제후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시 또는 시민계층과 결탁하면서입니다. 왜 민중의 지지에 의해 민중을 통치하는 절대자가 출현했을까요? 이 비밀을 사회계약에서 찾았던 것.. 더보기
[제국의 구조] 5부 세계=경제 시스템의 도래와 제국의 쇠퇴 제국은 몽골의 전과 후로 나뉩니다. 근대 각지의 제국, 이를테면 투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 무굴 제국, 청 제국 등은 모두 몽골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몽골의 지배가 가져온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와 광대한 판도, 그리고 다민족을 포섭하는 제국의 원리는 이들 제국에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제국은 예외 없이 19세기 서양열강에 의해 동반 몰락하게 됩니다. 도대체 서구열강의 무엇이 제국을 쇠퇴하게 한 것일까요? 15세기 전후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습니다. 거대한 아시아와의 교역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시아에 가서 팔 산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투르크 제국에 의해 길도 막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콜럼부스로 표상되는 대항해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 더보기
[제국의 구조] 4부 도덕적 탁월성과 제국의 관계 [제국의 구조] 네 번째 이야기. “로마제국이 번영했던 것은 로마인의 ‘도덕적 탁월성’에 의해서이고 그것이 멸망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p. 127) [제국의 구조] 3~4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다양한 제국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와 로마제국, 그리고 당, 원, 청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제국들. 이 묘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도덕적 탁월성’이었어요. 도덕적 탁월성이 한 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는 것, 이건 제국하면 떠오르는 힘, 폭력, 복종, 무력 이런 단어들과 사뭇 상반된 느낌이더라구요. 그렇다면 제국과 도덕적 탁월성은 어떤 관계가.. 더보기
[제국의 구조] 3부 제국을 나의 것으로 삼는다는 것 가리타니 고진의 세 번째 이야기. 1~2장에서 고진은 정주혁명과 맞물려 등장한 호수제에 대한 설명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개인적으로 증여, 호수제, 상호성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게 따뜻하고 휴머니즘이 짙게 묻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능한 자가 일상에서 강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호수제는 어떻게 퇴장했을까요? 증여의 역사는 어느 시대에 종말을 선언한 것일까요? 정말 그것은 사라진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 먼저 호수제가 어떻게 시스템화되었는지를 잠깐 복기해보겠습니다. 인류의 정주화의 더불어 자유의 상호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어딘가에 머물게 되면서 축적이 시작되고, 축적에 의해 생겨나는 계급, 권력, 국가의 탄생이 예고됩니다. 그러면서 상실되는 것은 자유였.. 더보기
[제국의 구조] 2부 억압해도 회귀하는 열망 가리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 두번째 이야기. 제국의 문법과 구조를 나의 것으로 익히고자 할 때 관심을 두어야 하는 단위는 국가가 아닙니다. 국가라는 프레임 하에서는 제국의 문법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를 훌쩍 넘어서 세계무대에 서야 하고, 때로는 그보다 작은 공동체 단위에 관심을 둬야 하는데요, 특히 후자에는 제국의 문법에 차용할만한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의 작은 공동체, 그러니깐 씨족 사회에서 캐어낼 수 있는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우리는 씨족 사회에서 국가로 역사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고진은 역사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씨족 사회 이전에 유동적 수렵채집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떠돌면서 공동기탁을 하며 수렵과 채집을 하던 그들이 어느 날 정주를 하기 .. 더보기
[제국의 구조] 1부 잃어버린 자유를 탈취하라! 유목의 삶, 제국의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요즘 제 몸에 익히고 싶은 게 있다면 유목의 삶, 제국의 삶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목하면 “저 푸른 초원”만 생각하고, 제국하면 “미국”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목은 초원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미국은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유목은 무엇이고 제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부터 가을에 읽을 책들은 이 두 개념 위를 오갈 겁니다. 그로부터 개별적인 자유와 집합적인 다원성을 강조하는 유목과 제국의 구체적 면모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해요.그 첫 번째 책은 가리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2014년에 쓴 책인데요. 그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19세.. 더보기
우정과 연대의 대서사시, 디어마이프렌즈 2 지난 금요일 오후 회사 체육대회가 있었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선후배들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토요일에는 이제 보청기가 없으면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뵙고 왔고, 오늘은 교회에서 평소 따르던 형님, 누님들과 특송을 부르고 책읽기 모임을 하며 수다를 떨다 왔습니다. 며칠 전 상가 집에서 만난 한 누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제는 우리가 공동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 여기저기서 듣는 이야기면서 스스로도 자주하는 질문입니다. 누군가와 섞인다는 것이 시련이고 아픔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하지 않는 삶을 상상해보면 참 쓸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정과 연대, 그리고 공동체. 요즘 자주 생각하는 단어들입니다.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마 이 단어들에 대한.. 더보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만, 당신들은 디어마이프렌즈 (1) 노희경 작품 중 최고가 무얼까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입니다. 여성 노인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입니다. 삼십대 후반의 번역가인 박완(고현정)이 내레이터가 되어 엄마와 그 친구들 이야기를 중개하는 구성입니다. 이야기는 치매를 앓는 희자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녀의 병이 깊어지는 과정을 따라 전개됩니다. 2회에 걸쳐 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볼까 합니다. 우선 희자.소녀같이 가녀리고 조신한 60대 여성입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갑자기 사는 게 두려워집니다. 모두가 제 자신을 쓸모 없고, 우중충하며 불쌍한 과부 노친네로만 보는 것 같아 주눅이 듭니다. 돌아보면 그녀의 삶은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옵니다. 남편이 죽고, 자식들의 짐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처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