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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동양의역학

기의 흐름과 비움에 대하여



가을이 왔다. 바람이 분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경복궁의 옆자락 길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무언가 그 걸음과 함께 내 안의 기운이 잘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 의역학에서 건강함이란 기의 흐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흐름이 막히면 거기서 병이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관건이다. 경복궁 옆자락에서만 아주 잠깐 흐름이 좋으면 뭐해?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다.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보폭을 맞추어 가는 거다. 낮과 밤, 기의 조절은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루는 일생의 축소판. 나는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저녁 죽는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하루는 생명이 태어나 소멸하는 과정을 성찰하고 훈련하는 최고의 현장이다. 자꾸 그것을 잊어버려서 문제지만.. 


삶을 계절의 리듬에 맞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봄날, 천지가 기지개를 펴고 만물이 자라날 채비를 한다. 생명을 살리는 리듬을 타야하는 계절.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천지가 서로 사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야 하는 계절. 덥다고 옆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만물이 사귀는 여름의 리듬에 역행하는 거다. 가을, 하늘의 기운은 쌀쌀해지고 생명들은 단호하게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두면서 밖으로 마음을 두지 않는게 중요한 시간. 단호한 계절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거다. 겨울, 물이 얼고 땅이 얼며 음이 양을 압도한다. 폐문자수, 문을 닫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관종의 욕망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간. 


기운의 흐름이 좋은 사람들은 공히 자연의 리듬과 조응하는 공간이 크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컴백홈한다. 여름이 되면 땀을 흘리며 만물과 사귀고, 가을이 되면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간다. 저녁에 포식하지 않고, 그믐에 과하게 술을 마시지 않으며,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다


어디 이뿐일까? 기운의 흐름이 좋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자기 마음에 포획되지 않는 거다. 아무리 적게 먹고 과음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소란스러우면 기운의 통로는 막히기 마련.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않는 마음은 자주 기운의 흐름을 방해한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막연한 명제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해야만 기운의 순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질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은 어제도 참이었고 내일도 참이다.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 의심과 생각, 망상과 불평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는 것, 이를 통해 자기의 세계와 지금 이 순간 마주하는 사물의 세계를 일치시키는 것.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편안해지고 성정이 화평하게 되며 그 가벼움 속에서 기운의 순환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 비움을 일상에서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 길을 가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배와 발로 기운을 내리는 것, 내부의 기운은 배와 발에서만 느끼는 것, 이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법론이다. 누가 그러냐고? 스승님이 매번 강조하는 거다. 머리에 힘빼고, 기운을 내려. 마음이 흐트러질 때, 머리가 생각과 감정으로 뜨거울 때, 기운을 배와 발로 내리는 것,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단전으로 모으는 것,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기가 모이고, 기가 모이면 단이 만들어지고 단이 만들어지면 형이 단단해지며 형이 단단해지면 신이 보전된다(내경편, 신형, p. 20).

 

요컨대 기의 흐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연의 리듬, 계절의 리듬을 따르는 것,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 배와 발로 기운을 내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병을 치유할 수 있을뿐더러 마음의 망상, 번뇌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게 이루어지면 정신과 기운이 모여 형체가 단단해진다. 이 비움의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의 자아에서 탈주하여 타자”, “세계가 될 수 있는 여백도 커지게 된다. 이 공감의 공간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나, , 세계, 우주 사이의 소통의 여지도 커지게 되는 거다. 뜬구름 잡는 얘기 같다고? 한 번 해보고나 그런 얘기 좀 하지. (나한테 하는 이야기임) 


그래서 하고픈 말은 하나. 일상은 자연의 리듬에 담백하게 조응하면서,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기운은 아래로.

 

요즘 나도 너도 기운의 흐름이 막혀 있다는 느낌도 들고, 수많은 번잡한 마음 때문에 심란하여 잘 안될 줄 알면서도 나름의 마음 탈출법을 오랜만에 적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