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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유목과 제국

[제국의 구조] 4부 도덕적 탁월성과 제국의 관계


[제국의 구조] 네 번째 이야기.

 

로마제국이 번영했던 것은 로마인의 도덕적 탁월성에 의해서이고 그것이 멸망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p. 127)


[제국의 구조] 3~4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다양한 제국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와 로마제국, 그리고 당, , 청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제국들. 이 묘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도덕적 탁월성이었어요. 도덕적 탁월성이 한 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는 것, 이건 제국하면 떠오르는 힘, 폭력, 복종, 무력 이런 단어들과 사뭇 상반된 느낌이더라구요.

 

그렇다면 제국과 도덕적 탁월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보편종교는 제국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신의 나라는 피안이나 종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어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서 지상의 나라가 자기애에 입각한 사회인데 반해 신의 나라는 신에 대한 사랑 내지 이웃애에 의해 성립하는 사회다. 이 두 가지 나라는 겹치고 서로 혼동한 채로 존재한다. 신의 나라는 지상의 나라에 종속되는 일도 의존하는 일도 없다. 그것은 폴리스, 땅의 나라와 같은 한계나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코스모폴리스다.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유럽에서 이상과 같은 이념이 남아 있었다. 교회의 존속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을 보존시킨 것이다.” (p. 130)


이 생각은 로마제국의 멸망 후 서유럽에 제국 제국이 성립하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이 존재했다고 설명하는 고진의 논리입니다. 제국-보편종교-기독교-이웃애-코스모폴리탄이 연결되는 순간인 것이죠. 중원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기에도 도덕적 탁월성과 제국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이 있습니다. 특히 도덕적 탁월성은 씨족 중심의 수장제 연합국가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형성될 때까지의 과정인 춘추전국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바로 공자, 맹자, 순자 등등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통해서 말이죠.

 

포문을 연 것은 노자였습니다. 노자 사상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無爲인데요. 무위란 위에 대한 부정이죠. 여기서 위(,)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는 당시 중원의 지배적 교환 양식인 주력(呪力)에 의한 강제, 바꿔 말하면 호수원리에 의한 강제, 그리고 무력에 의한 강제를 의미했습니다. 노자의 무위는 이 모두를 거부합니다. 주력(呪力)과 무력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선언한 것이죠. 노자의 무위 사상은 춘추전국시대 유가와 법가에도 공히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그 무위의 공간에서 새로운 사유의 힘이 성립하는데요, 가령 공자는 예와 인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구요, 법가는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하는 지배자, 호족들을 법으로 억누르는 것을 목표로 둡니다.


먼저 힘을 잡은 것은 법가였습니다. 어찌보면 도덕적 탁월성의 가장 낮은 단계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혈연관계, 인격적 주종관계를 넘어선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시키는 것, 바꿔 말해 교환양식 a를 불식시키는 것이 법가사상의 핵심이었는데요. 권력을 잡은 진시황제는 기존의 호수성에 근거한 권력들을 일소에 불식시키기에는 법가만한 사상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진왕조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의 원리에 의해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황제는 유가를 시작으로 하는 백가를 탄압하는데요, 탄압도 잠깐. 이 왕조는 시황제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립니다. 법가의 원리만으로는 국가체제를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사상이 유가였습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만 하더라도 유가는 무력했습니다. 무력이 탄압을 했기 때문이죠. 그 가운데 공자를 혁명적 사상가로 다시 읽은 이가 맹자인데요, 맹자가 강조한 것은 천의 초월성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군주는 절대자인 천의 위임을 받아 인민을 위해 인민을 지배하는 존재로서 천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천명이란 실은 민의라는 사고인데요.

군주의 정통성은 혈통이 아니라 천명에 기초한다. 천명은 인민의 의지다. 그러므로 민의가 지지하지 않는 왕은 천명을 갖고 있지 않기에 멸망하게 된다.(P. 146)”

이것이 역성혁명이라 불리는 중원에 있어 왕조교체 혁명을 정당화하는 관념인데요, 사실 따져보면 도덕적 탁월성에 있어 유가는 법가보다 훨씬 더 앞서 있던 사상이 아니었나 싶어요. 특히 역성혁명의 관념은 중원에 탄생하고 소멸한 국가의 구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생각이었는데요.  누가 어느 민족이 지배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제국의 원리를 충족시키는지 아닌지, 그리고 정치적인 통일에 의해 안정, 평화, 번영을 가져오는지 아닌지에 의해 판단되었다는 것이죠.

 

왕조의 교체, 국가의 교체가 비단 유교의 논리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왕조 말기 되살아난 것은 오히려 노장사상이었습니다. 노장이 말하는 무위자연은 근본적으로 권력과 국가의 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한 말기에 표면화됩니다. 민중적 종교인 도교라는 형태로 말입니다(P. 153). 후한 말기 질병이 만연하여 대량의 유민이 발생했습니다. 그 가운데 태평도를 주장한 장각이 창시한 종교가 널리 퍼졌는데 그것이 황건의 난으로 발전합니다. 그로 인해 후한이 붕괴되고 소위 삼국지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태평도는 곧 소멸되었지만 그 후 도교로 이어졌는데요. 이러한 민중운동은 오랜 시간 중원에서 기존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종교적 외견을 띱니다. 예를 들어 한나라 후반의 황건의 난은 도교, 14세기 원제국 말 홍건의 난은 불교(정토교)로 이어지는 백련교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주원장이 역으로 이 난을 진압하면서 명왕조를 열었죠. 19세기 기독교와 이어지는 태평천국의 난도 청조 붕괴에 공헌했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치적인 민중조직이나 유민의 반란에서 신왕조이 탄생이라는 과정은 반복됩니다. 마오쩌둥에 의한 혁명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역사의 흐름은 무엇을 암시할까요? 이념과 종교는 새로운 제국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좀 안으로 들어가보면 현실 논리, 정치 논리, 경제 논리를 넘어 도덕적 탁월성을 둘러싼 경쟁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긴 누군가는 제국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하고, 제국 바로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며, 진정한 제국으로 진화 확장되어가기도 합니다.


한나라가 호수제를 넘어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만들었지만 제국 바로 앞에서 좌절한 국가라면, 중원에 있어 진정한 제국은 당나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실현된 것은 유목민이 중화의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던 소위 오호십육국시대를 경유한 이후인데요, 이 혼란의 시대를 매듭짓는 것은 유목민인 선비(탁발씨)가 세운 북위였습니다. 북위는 유목민 원리를 유지하면서 농경민국가이려 했던 최초의 국가인데요, 수와 당은 북위의 정책을 답습합니다. 중앙 집권제를 확립하기 위해 관료제를 강화하고 균전제를 도입했구요(참고로 이 균전제는 맹자가 제기한 정전론, 우물 ()’자 모양으로 토지를 나눈 후, 가운데 네모의 공전(公田)’을 주변의 8사전(私田)’ 경작자들이 공동으로 경작해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하는 형식을 좀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바꾼 방식으로 모든 백성에게 신분의 귀천과 관계없이 균등하게 토지를 배분하는 형식), 또 다른 한편으로 불교를 국교로 하면서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함께 공존합니다. 왜 유교가 아니라 불교를 국교로 했을까요? 당나라가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족, 민족을 넘어 보편적 원리를 필요로 했습니다. 유교, 도교만으로 부족했던 것이죠. 불교는 현장, 의정 등이 인도로 여행을 떠나 대량의 경전을 가지고 돌아와 그 수용이 본격화됩니다. 이른바 세계적 종교로서 불교가 국교로서 인정된 것이지요.

 

당나라에 존재했던 제국의 구조를 계승한 것은 야율아보기의 거란 제국과 칭기스칸과 쿠빌라이로 대표되는 몽골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거란, 몽골을 떠올릴 때면, 야만, 약탈, 정복을 먼저 떠올릴지 모르지만 실상 야율아보기와 칭기스칸의 정복은 약탈이 아니라 평화와 통상의 확립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종교적 민족적 관용은 이들 제국들이 공히 가지고 있던 도덕적 탁월성이기도 했구요.

 

칭기즈칸과 그의 아들들에 의해 만들어진 몽골세계제국은 다음 4대 울루스로 이어졌고, 이는 청제국, 무굴제국, 이란제국,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등 인류 마지막 제국으로 이어집니다. 그걸 간단히 도식화하면 이렇습니다.

동아시아, 쿠빌라이가의 대원 청제국

중앙아시아, 차가타이가의 차가타이한국 무굴제국

서아시아, 훌레구가의 일한국 이란제국

동유럽 주치가의 킵차크한국 러시아제국



자 그렇다면, 이 제국의 흐름은 근대 이후 언제 어떻게 끊긴 걸까요? 도덕적 탁월성을 가진 제국은 왜 어떤 이유로 쇠퇴하게 된 걸까요? 그것이 교환 양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