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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유목과 제국

[제국의 구조] 2부 억압해도 회귀하는 열망

 


가리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 두번째 이야기.


제국의 문법과 구조를 나의 것으로 익히고자 할 때 관심을 두어야 하는 단위는 국가가 아닙니다. 국가라는 프레임 하에서는 제국의 문법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를 훌쩍 넘어서 세계무대에 서야 하고, 때로는 그보다 작은 공동체 단위에 관심을 둬야 하는데요, 특히 후자에는 제국의 문법에 차용할만한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제국의 구조>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의 작은 공동체, 그러니깐 씨족 사회에서 캐어낼 수 있는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우리는 씨족 사회에서 국가로 역사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고진은 역사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씨족 사회 이전에 유동적 수렵채집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떠돌면서 공동기탁을 하며 수렵과 채집을 하던 그들이 어느 날 정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기후변동과 같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겠죠. 빙하기 이후 찾아온 온난화. 대형짐승이 사라지고 채집을 하기에는 과거와는 다른 계절적 변동이 커지게 됩니다. 좀 더 안정적인 삶의 방식을 찾게 된 호모사피엔스들. 이들 중 누군가가 눈을 돌린 것은 어업이었습니다. 어업은 채집과 달리 도구를 필요로 합니다. 정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정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하나의 이슈가 된거죠.. ~ 씨족 사회에 살던, 우리의 선조 되시는 분들은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하였을까요? 이들은 부의 불평등이나 권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시스템을 창조하는데요, 그게 바로 호수적 시스템입니다. 증여교환을 강제하는 원리죠.

 

이 교환이 강제되는 단위는 공동체와 공동체와의 교역이었어요. 채집과 이동을 할 때와 달리 정주를 하면서 사람들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자신의 공동체에서 모두 다 얻을 수 없게 되었죠. 다른 공동체와의 교역이 불가피해진 이유입니다. 자신이 정주하는 공간에서 생산되지 않는 산물을 어떤 식으로든 충당해야 하면서 다른 공동체와의 교역이 급물살을 탔는데요, 이들은 어떻게 교역을 했을까요? 이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환이란 평화적으로 해결된 전쟁이고, 전쟁이란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새로운 낯선 타자와의 관계란 과거에도 지금에도 일단 두려움에서 시작 하나봐요.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교류하고 교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뢰와 우호적 관계. 그러면서 구성되는 교환 관계가 증여의 호수제. 교환양식 a에 근거하는 세계 시스템입니다.

 

호수적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의 형성을 방해합니다. 그것은 권력의 집중을 방해하고, 상위레벨의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이는 다른 말로 과도한 불평등을 억제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존의 유동적 사회에 존재하는 자유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개인을 공동체에 단단히 결부시키면서 자유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이죠. 이전 채집 유목사회에서는 자유였기 때문에 평등했죠. 하지만 씨족사회에서는 평등을 위해 자유가 희생됩니다.

 

어떻게 이런 사회가 출현했을까요? 이에 대해 고진의 답은 이런 같습니다.

신의 명령.

좀 허무한가요?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꼭 그러지만도 않습니다.

 

이런 답에 영감을 준 것은 프로이트입니다. 프로이트의 저작 <토템과 터부(1912)>에서 관심은 부족사회에서 씨족의 평등성, 독립성이 어떻게 획득되었는지입니다. 그것은 증여의 호수제가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의식인데요. 프로이트는 그 원인을 자식들에 의한 원부 살해라는 사건, 오디이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통해 발견하고 해석합니다. 이 이론은 인류학자에 의해 전면 거부당합니다. 태고에 원부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와 같은 원부는 전제적 왕권국가가 성립한 후의 왕이나 가부장의 모습을 그 이전의 시대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부살해의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이트는 씨족사회의 형제동맹적 시스템이 왜 어떻게 강고히 유지되고 있는지를 물은 것이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고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주화와 더불어 축적이 시작되고 계급이나 국가, 바꿔 말해 원부가 생겨날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토테미즘이다. 토테미즘이란 다시 원부살해를 행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원부살해는 경험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수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조를 뒷받침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국의 구조, p. 73)

 

좀 어렵죠? 저 역시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제 식대로 고진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유목, 채집사회에서 씨족사회로의 변화. 그 변화의 중심에는 정주혁명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머물게 되면서 축적에 의해 생겨나는 부와 권력의 격차가 생기고, 호수제는 이 격차를 줄이는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물론 호수제가 이러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채용된 것은 아닙니다.

자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증여를 합시다!” 이런 식으로 호수제가 사람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사고된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것은 반복적이고 강박적인 사람들의 습관이었습니다. 이를 반복강박이라 명명한다면 후기 프로이트는 이 반복강박을 설명하기 위해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창안하는데, 가리타니 고진은 바로 이 개념을 호수제를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로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유기체가 무기질이었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충동, 갈등과 상극으로 가득찬 정주 시스템(유기체 시스템)에서 자유롭고 언제든지 타인과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유목 채집의 시스템(무기질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려는 충동. 이 충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 충동의 근저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씨족 사회는 유동적 사회에 존재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망은 씨족 사회도, 이후 국가, 자본주의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회귀하는 거죠. 그 이름은 바로 자유!

 

바로 이 지점에서 고진이 염두해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교환양식 D에서 고차원적으로 회귀하는 것은 명징해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 정주로 인해 잃어버린 수렵채집민의 유동성, 즉 거기에 존재하는 자유의 상호성(P. 83)입니다.

 

한미디로 정주 혁명 이후 씨족 사회-국가-자본의 흐름 속에서 아무리 억압해도 회귀하는 열망은 하나.

그 이름은 바로 자유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