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 세 번째 이야기. 1~2장에서 고진은 정주혁명과 맞물려 등장한 호수제에 대한 설명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개인적으로 증여, 호수제, 상호성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게 따뜻하고 휴머니즘이 짙게 묻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능한 자가 일상에서 강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호수제는 어떻게 퇴장했을까요? 증여의 역사는 어느 시대에 종말을 선언한 것일까요? 정말 그것은 사라진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 먼저 호수제가 어떻게 시스템화되었는지를 잠깐 복기해보겠습니다. 인류의 정주화의 더불어 자유의 상호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어딘가에 머물게 되면서 축적이 시작되고, 축적에 의해 생겨나는 계급, 권력, 국가의 탄생이 예고됩니다. 그러면서 상실되는 것은 자유였습니다. 호수제는 이 자유의 상실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등장합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자유에 대한 열망”은 강박적으로 언제든지 타인과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유목 채집의 시스템(무기질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그 충동이 만들어낸 것이 교환양식 a, 즉 호수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역사에는 계급, 권력, 국가가 탄생합니다. 이를 고진은 복종과 보호라는 b라는 교환양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환양식 b, 복종과 보호라는 교환을 처음 파악한 사상가는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홉스였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상징되는 홉스의 이야기는 그 전제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진은 홉스의 사유가 만인이 만인을 적대하는 자연 상태에서 시작한 것은 인류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애시당초 그런 사회는 미개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사회에는 증여와 호수원리가 강하게 작동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만인이 만인에 적대하는 상황은 오늘날에도 게임이론이 가정하는 것인데요, 그것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뿐이라고 고진은 지적합니다. 홉스의 사고는 아담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근대사회의 존재방식을 태고의 사회에 투사하는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증여와 호수원리는 언제 어떻게 사라진 걸까요? 고진은 적어도 유럽의 역사에 있어 봉건사회까지는 교환양식 a가 남아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나 유럽의 절대왕권에서는 이 a를 완전히 잘라냅니다. 지배자간의 호수성을 폐기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피지배 간에 존재한 호수적 관계도 폐기해 버리고, 국가가 오롯이 교환양식 b를 독점하는 구조를 꾀한 것이죠. 이러한 절대왕권이 출현한 것은 유럽에 교환양식 c가 침투한 이후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이 강해지면서 이들이 왕과 결탁하여 봉건영주와 봉건적 제후를 폐기한 거죠. 이것이 유럽의 절대왕정이고 그 다음이 절대왕정의 타도, 부르지아 혁명으로 시민을 주권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출현입니다. 그렇다면 근대국가란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c가 지배적인 관계에 있을 때 교환양식 b가 취하는 형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p. 95)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이야기는 어쩌면 이게 전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봉건사회-절대왕정-시민혁명-근대국가의 출현. 그러나 이건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극히 일부, 저 구석에 자리한 유럽사회만을 관찰할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곳이 지금 여기를 이해하는 단초라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 너머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를 넘어서야 합니다. 제가 유럽이 아닌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둔 이유이자, 제국, 유목에 관심을 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국은 단순히 군사적 정복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복종할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국에는 교환양식 a, b, c가 공존합니다. 우선 교환양식 a, 몽골의 세계제국, 여기서 칸은 각지에서 온 대등한 수장들 사이에서 뽑히지 않으면 전체의 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주변의 수장들에게 상당한 증여와 호수성을 보여야 합니다. 증여, 호수성 없이 칸을 꿈꾸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국은 교환양식 c와도 분리할 수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제국은 상업에 종사하는 유목민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의 작은 공동체나 소국가는 제국의 형성을 환영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단 평화와 교역의 안전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형성에 의해 교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생산력이 향상되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세계제국은 세계화페를 만들고, 그 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국제법을 만듭니다. 어디 법뿐이겠습니까? 종교와 언어도 세계제국이 겸비하는 주요한 테크놀로지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환양식 c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 힘의 무게중심은 교환양식 b에 있었다는 겁니다. 제국은 다수의 부족이나 국가를 복종이나 보호라는 교환에 의해 통합하는 시스템입니다. 제국의 확대는 정복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것은 정복된 상대를 전면적으로 동화시키거나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복종을 한다면 다원성을 인정하고 보호할 뿐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근대 이후 미국과 같은 나라는 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네이션=국가의 확대로 존재하고, 그것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 교환양식 b가 아니라 교환양식 c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을 교환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시장을 넓히기 위해 네이션=국가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교환양식c가 우위에 있는 세계시스템에서는 제국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제국을 흉내내는 제국주의만 존재할 뿐입니다. 가령 미국의 제국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장려하지만 실은 다른 나라로부터 빼앗는 것은 주로 관세권입니다. 멀리갈 것 없이 트럼프를 보세요. 제국의 팽창이 교환양식 b에 근거한다면 제국주의 팽창은 교환양식 c에 근거합니다.
자, 이야기는 이제 호수제에서 제국으로 이어집니다. 제국을 나의 것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누군가를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힘은 아닙니다. 다원성을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증여하고 선물할 수 있는 마음, 나 혼자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평화와 교류의 기폭제가 되겠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제국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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