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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 "자신의 입은 목소리를 갖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해 말하고 있다'고 말하던 시인. 그는 인간을 끝없이 괴롭히는 혼동과 카오스, 어둠, 고독을 노래하던 시인이었다. 이 소설은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따뜻한 기분좋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조급하게만 돌아가는 오늘의 내게 이 소설은 시원한 인도양 어느 한적한 섬의 바닷바람으로 다가섰다.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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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1) 시작
심장이 너무 강력하게 펌프질을 해댔기 때문에 가슴에 손을 얹어서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시인에게 그렇게까지 번적이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던 바다가 마리오에게는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라는 후렴절로 된 단순한 시귀만 낭송할 뿐이었다.

(2) 만남
마리오는 가방 안으로 기어 들어가 거기서 포도주 병이나 비웠으면 하는 심정으로 가죽가방만 쳐다보았다.
친근한 대화에 용기를 얻은 마리오는 그날 해질녁 오렌지빛 태양이 시인과 연인에게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쳐 올 즈음, 바위가 있는 해안가로 베아트리체를 쫒아가 심장을 턱끝에다 붙여 놓고 말했다.
그날 저녁 우체부는 별을 세면서,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값싼 포도주 한 병을 다 비우면서, 뺨을 긁적거리면서 불면증을 달래야만 했다.
"나는 여자 없는 남자, 꿈이 없는 밤은 싫다, 다 꺼져 사그라들 때까지 뜨겁게 달궈진 키스로 가득 찬 삶을 원한다."
"자네 심장이 개처럼 짖어대고 있는 게 여기서도 느껴지네.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잘 잡고 있게나."

(3) 그리움
"로사 부인의 말에 의하면 자넨 손톱 밑에 낀 때를 빼고 나면 가진 게 하나도 없다는 걸세."
"하지만 저는 젊고 건강해요. 아코디온보다 더 불룩한 폐가 두 개나 있다구요."
"하지만 자넨 지금 그걸 베아트리체만 찾으며 한숨짓는 데 사용할 뿐이잖아. 그 폐에서는 지금 유령선 싸이렌같은 쉰 소리만 나온다고."
"내 폐는 돛단배를 불어서 호주까지 보낼 수도 있어요."
"이보게 베아트리체때문에 이렇게 계속 애를 태우다보면 앞으로 한 달도 못 가서 생일 케이크에 꽃힌 촛불도 못끄게 될 걸세."
...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낮잠이나 자도록 하게. 두 눈이 국 대접보다 더 깊숙하게 파였어."

2.변화

(1) 변화 1
"정치 생활이 벼락처럼 몰려와 작업에 몰두하던 저를 꺼내갔습니다. 대중은 저에게 삶의 교훈과 같았습니다. 전 시인의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음이 많은 자의 두려움으로 대중에게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일단 대중 속으로 들어가니 제 자신의 모습이 뒤바뀐 것 같습니다. 개인은 정말 위대합니다. 전 그 일부분이며 위대한 인간 나무에 붙어 있는 한 개의 자그마한 이파리에 불과합니다. "
(2) 변화 2
시원한 파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라도 한 듯, 산들바람이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식혀 주기라도 한 듯, 인생이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참을 만한 거라는 사실을 인식한 듯, 마리오의 시뻘건 얼굴이 천천히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위트
(3) 변화 3
시인은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여자의 목소리를 말끔히 떨구어 내기라도 하려는 듯 수화기를 마구 흔들면서 내려 놓았다.
"파블로씨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일 라운드에서 케이오당한 권투선수의 심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

3. 

(1) 천국으로 가는 기차는 늘 완행열차였으며, 습기 차서 숨이 탁탁 막힐 것 같은 역마다 멈추었다.
(2) "가족 내부에서 아버지를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주장할 만큼 극단적인 민주주의로 치닫는 일은 없도록 하게."
(3) 시월의 어느 목요일 정오부터 갑자기 냉동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면서 생선은 강한 봄볕을 받아 상하기 시작했다. 비록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살아오던 조용하고 아름다운 칼레타 지역의 주민들은 로사 여사의 텔레비전이나 라이도에서 떠들어대는 나라 전역에 걸친 슬픔을 남의 일처럼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4) 저는 시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제 시는 지역의 한계에 함몰되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언제나 괴로움이 가득 담긴 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제가 우리나라 국기와 제 시를 가지고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펼쳐지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 우리 모두가 불타는 인내심을 지닐 때 우리는 모든 인간이 광명과 정의와 존엄성을 누릴 찬란한 도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시는 괜히 헛되이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5)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고? 만일 시인이 되고 싶다면 걸어다니면서 생각하도록 해."

4.죽

"열이 이렇게 심하니까 후라이팬 위에 올라간 생선이 된 기분이야."
"상처는 우물만큼 깊지도 않고 성당의 문만큼 넓지도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눈자위에 서리는 그림자를 느꼈다. 두 눈이 해안가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무리를 향해 거대한 폭포수나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유령처럼 유리창을 갈기갈기 찢으며 튀어나갈 것 같았다."
"나는 하늘에 둘러싸여 바다로 돌아간다. 파도 사이로 들려오는 고요함은 팽팽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무한대의 목소리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삶은 죽었다. 피는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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