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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어느 여름 날, 빈의 거리에서 미사를 마치고 성슈테판 성당을 나오니 오전과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그러니깐 이 거리는 빈 관광의 핵심공간인 듯 싶다. 우리로 치자면 명동성당 즈음 되는 느낌? 수많은 관광객으로 거리는 발디딜틈 없었고, 태양의 온도는 뜨거웠으며, 콘서트 티켓을 파는 청년이 거리 곳곳에서 관광객과 흥정 중이었다. 한 대학생을 만났다. 의심이 많은 우리는 애써 시선을 피했지만, 그의 밝은 웃음, “안녕하세요? 전 음악대학교 학생입니다. 오늘 저녁 좋은 공연이 400년도 더 된 궁전에서 있어요. 한 번 보지 않으실래요?” 이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 어떻게 한국어를 이렇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당당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표정, 자신이 세일즈를 하고 있는 공연에 대한 무한 애정의 느.. 더보기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 8부 흉노와 무제의 마주침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룬타이현(輪臺縣) 남부에 타림 호양림(塔里木 胡楊林)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호양수(胡楊樹)들이 가을이면 노란색으로 물들면서 경이로운 사막 풍경을 연출하는데요, 적막한 타클라마칸 사막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합니다. 호양수는 식물계에 있어 가장 탁월한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요, 지하 20m까지 뿌리를 깊이 박아 지하수를 빨아들이는데, 뿌리는 염도 높은 지하수에서 수분만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고, 줄기는 아주 견고하여 대량의 수분을 자기 안에 축적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호양수는 죽어서도 천 년 넘게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그다음 천 년 동안 썩지 않는다고 전해지는데요, 호양림은 살아 있는 찬란한 호양림과 죽어 있는 신비로운 호양림이 독특한 풍경을.. 더보기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 7부 사기의 기록, 흉노와 묵돌.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스키타이가 있다면, 사기의 기록에는 흉노가 있습니다. 유라시아의 동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목국가의 원형이 흉노인 것이죠.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원래 흉노는 중앙아시아, 특히 몽골고원에 흩뿌려져 살아가던 작은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는 다양한 유목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요, 가장 동쪽 흥안령 산맥에는 동호라 불리는 유목민이, 서쪽 타림분지 지역은 월지가, 북쪽 바이칼 호수에서 예니세이강까지는 투르크라 불리는 정령 등이 있었습니다. 흉노족은 수많은 유목민 중에 하나였는데요, 이들이 동방 최초의 유목 제국이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마천의 ‘사기’ 흉노열전(권110)에 기록된 흉노에 관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흉노는 물과 풀을 따라 옮겨 살았기 때문에.. 더보기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 6부 헤로도토스의 기록, 스키타이. 유목민의 역사는 근대 이전 2000년에 걸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왔으나 기록된 역사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주민에게는 정해져 있는 테두리에서 토지를 나누고, 성을 쌓고, 체제를 계승하는 것이 중요해 일찍부터 기록 문화가 발달했지만, 말을 타고 대초원을 누비며 생활의 근거지를 바꾸어나갔던 유목민에게는 기록문화가 취약한 것이죠. 그 이유 때문에 유목의 역사가 오랑캐로 치부해 폄하되며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기도 하는 건데요,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저평가된 유목의 이야기를 표면 위로 부상시키는데, 그 일번 타자가 바로 스키나이입니다. 스키타이에 대한 이야기는 BC 424년 무렵에 간행된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es)’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헤로도토스는 전문 여행가로 배를.. 더보기
창문 하나, 벽 하나를 가만두지 않는 거리, 빈의 섬세하고 웅장한 일요일 아침 원래 계획은 이런 거였다. 일어나자마자 짐을 맡긴 후 왕궁 “Hofburg”로 향한다. 9시 30분에 비엔나 궁정 예배당(Wiener Hofmusikkapalle)에서 미사가 있다. 빈 소년 합창단의 특송 때문에 유명해진 미사다. 예배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다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아 새 숙소로 옮긴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다음 날 노선을 대략적으로라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몇 가지 옵션을 가지고, 그녀에게 넌지시 전한다. 오늘은 이런 게 어떨까? 이런 루트도 있어. 이 루트의 문제는 이런 거고, 이 루트의 매력은 이런 거야. 물론 세상 일이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절망스러운 일도 아니며, 계획대로 되어도 문제인 날은.. 더보기
낯선 곳에 밤에 도착했다면?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첫 날밤 빈에 도착한 것은 초여름 밤 9시 즈음이었다. 낯선 언어와 사람들, 새로운 공간의 느낌은 공항에 새겨진 광고 카피들, 사진들, 이미지에 조금은 상투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우리가 첫날 묵을 곳은 “BEST WESTERN PLUS Amedia Wien”이라는 호텔이었다.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가는 도중에 OBB Train Ticket이라는 표지판을 찾아 표를 구매해야 한다. 항상 여행에 있어 첫 번째 발자국은 상대방에게도 내게도 중요하다. 이 여행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한 어떤 예언 같은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든지 첫 번째 스타트를 어떻게 준비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날 공항에서 헤매지 않고 ‘OBB Train Ticket’을 찾고, 거기에서 거의 헤매지 않고 .. 더보기
[2018년 책] 9. 심각한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파리의 아파트 기욤뮈소의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뭔가 이야기에 빠지고 싶을 때, 일상에서 조금 비껴 있고 싶을 때 기욤뮈소의 소설 한 권을 들고 카페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욤뮈소가 만들어낸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도 그렇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생각나는 게 거의 없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가벼움이 매력인 거죠.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전직형사 매들린과 극작가 가스파르가 전산착오로 파리의 같은 아파트에서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들이 머물게 된 집은 일 년 전 사망한 천재화가 숀 로렌츠가 머물던 공간이었는데요. 이 집이 얼마나 멋드러졌는지 두 사람은 절대로 집을 양보하지 않겠다며 서로 으르렁거리다 불편한 한 집살이를 시작하는데... 거기.. 더보기
[2018년 책] 8. 나의 자존감 지지대는 무엇인가? 엄마의 자존감 공부 스타강사 김미경씨의 이야기네요. 아니 김미경씨 아이들은 이미 다 크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 부모교육서인데요, 내용이 다분히 알차보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경험과 아쉬움들이 글에 묻어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의 소개 문구를 볼까요?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하루에도 지옥과 천당을 백 번쯤 오간다. 매일 최선을 다한다지만, 가끔 돌아보면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흔들린다. 미안한 일이 떠오른다. 아이가 잘못되면 내 잘못 같다. 김미경이 만난 전국 수만 명의 엄마들은 모두 같았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일까? 대체 부모 노릇이란 무엇일까? 질문이 끝도 없다. 오늘도 수많은 엄마들이 답 없는 고민을 품고 앓고 있다. 김미경에게도 초보 엄마 시절이.. 더보기
[2018년 책] 7.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40대의 그녀는 이 책을 보면서 “도저히 못 읽겠어.”라고 손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함께 읽었던 20대의 청춘들 중 누군가는 “내 인생의 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단 제목이 기막히게 멋드러진 책.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않을 카피, 책의 핵심을 그대로 건져낸 타이틀. 그리고 이 시대의 키워드가 여전히 앞으로도 위로와 격려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은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와 불안장애를 겪어온 지은이와 정신과 전문의가 나눈 대화를 엮은 에세이인데요. 전국 동네책방에서 시작된 입소문으로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라고도 합니다. 출간 5개월 만에 14쇄를 찍고 28만 부가 팔렸다고 하네요. 이 책을 읽은 2030.. 더보기
[2018년 책] 6. 나의 웃음과 혼란은 어디에서 왔을까?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이게 무슨 책이야? 검색을 해보니, 어마무시한 웹툰이었군요. 저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한 독자가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최고의 책이에요 남친 아빠 남동생 내가 아는 모든 남자들에게 다 보여주고 싶은 책이에요 그림도 내용도 너무나 좋아요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에요 정말 최고의 책이에요 코멘터리까지 잘 봤습니다. 여자로 살면서 느꼈던 불합리함 부조리함을 명쾌하게 짚어낸 책이라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느낌이었어요. 보는 사람마다 다 추천하고 있어요.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팔로우 60만명,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며느라기!이게 책을 관통하는 캐치프레이즈인데요,간단하게 책소개에 나온 스토리를 말해보면 “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