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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찬

창문 하나, 벽 하나를 가만두지 않는 거리, 빈의 섬세하고 웅장한 일요일 아침

원래 계획은 이런 거였다

일어나자마자 짐을 맡긴 후 왕궁 “Hofburg”로 향한다

930분에 비엔나 궁정 예배당(Wiener Hofmusikkapalle)에서 미사가 있다

빈 소년 합창단의 특송 때문에 유명해진 미사다

예배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다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아 새 숙소로 옮긴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다음 날 노선을 대략적으로라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몇 가지 옵션을 가지고, 그녀에게 넌지시 전한다

오늘은 이런 게 어떨까? 이런 루트도 있어. 이 루트의 문제는 이런 거고, 이 루트의 매력은 이런 거야


물론 세상 일이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절망스러운 일도 아니며, 계획대로 되어도 문제인 날은 부지기수다. 이 날은 동선은 나름 계획대로 움직였지만 힘든 스케줄이었다고 기억된다. 현실의 문제를 구글에서 풀려고 한 나의 판단 착오 때문에.. 그리고 독일어의 생소함 때문에...



이 날을 떠올리면, 우선 일요일 아침의 빈의 한적함과 시원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핫도그도 기억난다. 우리는 이 날 이후 오스트리아의 맛있는 핫도그 집을 찾아 헤매곤 했지만 우연히 마주한 그 날의 핫도그만큼의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오후의 피곤함 역시 떠오른다. 프로이트 하우스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와 또 다른 숙소로 짐을 옮기는 시간은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밤의 오케스트라, 감동적인 경험이었지만 쏟아지는 졸음 앞에서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간 시간. 그래도 만약 다시 빈에 온다면 제대로 된 공연 몇 개는 꼭 보리라는 마음도 들었던 것은 사실. 그만큼 좋았던 시간.

 


7시 즈음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샤워를 하고 빨간 소파에 앉아다 보고, 창문밖을 넌지시 바라도 보다 거리로 나온다

일요일 아침의 빈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거리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과 1900년대 초반 루스 하우스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을 반영한 건물이 비슷하면서도 대조를 이루는 특징을 보이며 왼발, 오른발로 거리 좌우를 채우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세워졌을 건물들은 디테일을 자랑한다. 창문 하나, 벽 하나 하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거기에는 수많은 신들과 문양들이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과 욕망이 근육 하나하나의 섬세함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이에 비해 루스 하우스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을 반영한 20세기 건물들은 심플함과 절제를 건물에 반영하고 있다. 실용적이지 않은 장식, 수사를 거부한다. ‘치장이 지나치면 아름다움은 소멸되고 만다.’는 모더니즘의 진실을 건물 전체에 반영하고 있다. 각자의 철학과 사유를 건축과 거리와 일상에 반영하고야마는 빈의 문화적 융성함과 집요함, 그리고 섬세함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호프부르크 궁정 예배당. 거기로 가는 길 위에서 마주한 파란 하늘과 수많은 시절을 견뎌낸 오래된 무채색 건물들, 그 건물들에 담긴 수많은 섬세한 철학과 이미지들, 아침을 시작하는 가판대 핫도그 할머니의 터프한 아침 인사, 한 손으로 담배를 피고, 또 다른 한 손으로 핫도그를 만들어내는 손길, 그 할머니의 손길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년 아저씨의 뜨거운 눈빛, 점점 더 높게 떠오르는 태양, 태양빛을 머금으면서 그 모습의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빈의 시청 라트하우스, 그리고 몇 군데의 푸르른 가든과 멋 드러진 갤러리를 지나 마주하게 된 호프부르크 궁전의 위엄



호프부르크 궁전은 매우 복잡다단하고 그 위용이 정말 대단하다. 마치 여기에 살았던 왕들이 경쟁적으로 선대 왕보다 좀 더 위엄있는 무언가를 재현하기 위해 경쟁에 경쟁을 덧붙인 느낌이라고 할까, 건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신고딕, 르네상승, 바로크 등 이른바 과장된 건축 양식은 여기에 다 짬뽕된 느낌이다. 건물 꼭대기 중앙에 금테를 두른 왕 옆에 전령이 있고, 검투사들이 있다




광장 가운데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동상이 있는데 말을 탄 합스부르크 왕(나중에 검색해보니 카를대공과 오이겐 공자 동상이 여기에 있다고 하고,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두 번째 동상)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듯싶다. 앞 다리를 든 채 청동으로 고정된 말의 표정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여기는 왕가 빼고는 다 힘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 동상 뒤편으로 앞 편으로 옆 편으로 펼쳐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신들이 서로 다른 포즈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 말을 타는 곳도 있다. 아마 오후 즈음에 에버랜드의 돌고래쇼와 같은 말쇼가 여기에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공간(나중에 알아보니 스페인 승마 학교였다고 한다)을 지나 마주하는 광장의 왼쪽 붉은 색 쪽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십자가가 붙어 있는 노란색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게 바로 궁정예배당이었다.



9. 예배가 시작하기 직전인데 의외로 사람이 없다. 운이 좋은데,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나오던 한 무리가 우리를 보며 오늘 안 한 대!”라는 말을 툭 던지고 사라진다. 에이 설마, 하며 성당 바로 앞까지 가보았지만 마주하는 것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써있는 ‘close', close 앞의 계단에 앉아 잠시 주변을 보는데 누군가 혼자 이쪽으로 뛰다시피 온다


한국인 여성이다. 나는 똑같은 말을 전한다. “오늘 안 한 대!” 물론 한국 말로... 

20167월 어느 날 일요일 오전 9시에 문이 닫힌 빈의 궁정예배당 앞에서 한국인 3명이 계단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친구는 기간제 선생이고, 방학과 함께 이곳에 와 앞으로 몇 주를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하루 일찍 빈에 도착했으니 우리보다 수천 배는 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황이고, 어디 어디는 좋다, 이런 것은 해보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꼭 콘서트를 가보라는 것, 그리고 자기는 지금 성슈테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볼 것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언.



그렇게 성슈테판 대성당에 왔다. 그녀의 발걸음에 우리의 발걸음을 얹은 꼴혼자 열심히 여행하는 30대 중반의 여성, 이런 친구를 귀히 여겨야 한다. 적어도 여행지에서는... 


성슈페판 대성당은 그 웅장함이 가히 놀랍다. 종소리가 들린다. 은은하게 들리는 종소리가 아니다. 묵직하고 장엄하다. 종소리 사이로 성가대가 들어와 나무 의자에 앉는다.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검은 상의만 통일되었을 뿐, 복장은 제각각이다. 삼삼오오 생수를 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너 어제 파티 갔었니?” “, 그 남자 별로였어.” 

뭐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성가대 앞으로 교향악단이 들어와 악기를 조율한다


청파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악단이다갑자기 청파교회와 목사님이 그립다. 그곳의 이야기가 인간의 삶이 종교의 공간과 왼발, 오른발 함께 간다면 여기에서 마주한 종교의 공간은 인간의 삶을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다지 기분 좋은 기분은 아니다. 아 중세유럽은 참참참...


예배 시작 3분 전. 관광객과 빈 시민이 3:7 정도 되는 듯싶다. 예배 시작 전 침묵, 그리고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사제들이 큰 성경을 들고, 무언가를 뿌리면서 등장한다. 앉았다, 일어났다의 반복 속에 들여오는 놀라운 성대가의 화음. 특히 소프라노 독주를 하는 노란 커트머니 아주머니의 소리는 놀랍다. 성가대의 뭇 남성들을 울렸을 목소리와 외모다


근데 오스트리아의 느낌처럼 조금 나이가 들었다. 이게 서글프다기 보다는 원숙함과 안정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성슈테판 성당은 원숙하고 안정감 있으며 모두를 압도하는 소프라노 아줌마와 그 아줌마를 압도하는 종교의 위세로 직조된 공간 같다.


예배는 오르간 소리, 그 소리 위에 얹혀진 신의 목소리, 두 손을 모든 사제의 간절함이 어우러져 진행된다. 그런데 자꾸 중세의 못된 수도사가 생각난다. 종교인이 너무 복부지방이 많은 것은 그래서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또 한번 우리 목사님이 떠오른다.


게다가 거대한 성경, 묘한 성령을 뿌리는 행위, 그 행위를 은은하게 비추는 촛불. 이런 것들을 보다보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지 자꾸 떠오르게 된다. 내가 앉아있는 벤치 위에 십자가에 박혀 죽은 예수의 모습이 부조로 메달려 있다




기도 중 무심코 위를 마주하다 그의 앙상한 갈비뼈, 축쳐진 발가락, 감긴 눈, 메마른 입술, 깡마른 얇은 다리를 마주하게 된다. 문득 울컥하는 감정이 든다. 예수님. 세상의 모든 힘들 자들아, 내게 그 짐을 맡기라는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의 힘든 얼굴을 본 지금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십자가에 못 박힌 그의 깡마른 표정과 대비되는 수도사들의 돼지 비계 같은 모습. 그리고 성당을 수놓은 화려한 황금

여기는 슈테판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