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예찬

문제는 마음이야! 다섯 개의 호수길 (체르마트)



수네가행 열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파른 산악터널을 지나면 해발 2,280미터의 수네가에 도착하게 된다.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어제 아침 고르너그라트에서 바라본 풍경과 조금은 다르다. 어제의 마테호른이 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수네가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가깝다. 파란 하늘, 흰 눈, 그리고 녹음으로 이어진 풍경이 따사로운 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레킹을 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 아래 띄엄띄엄 새겨진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조금 걸어가면 바위투성이의 넓은 대지를 마주하게 되고 조금만 고개를 들면 심도 깊게 펼쳐진 알프스 산맥의 위엄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재잘거림은 줄어든다. 단지 햇님처럼 평화로운 미소와 바람처럼 시원한 느낌만 공유할 뿐이다.

 


수네가역에서 5분 정도만 걸어 내려가면 맑은 하늘 아래 파랗게 자리잡은 라이(leisee) 호수를 마주하게 된다. 호수 주변에는 걸터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널빤지가 단단한 동이줄에 매달려 있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로 손색없다. 이 호수를 주변으로 이십여 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널빤지에 탄 서너명의 아이들은 줄을 당기며 호수 양끝을 오가고, 이제 시작한 연인처럼 보이는 커플은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호수에 발을 담근다. 흰 모자를 쓴 곱슬머리 꼬맹이는 호수에 돌을 던지며 좋아하고, 그 모습을 본 언니, 오빠들이 어느샌가 꼬맹이 주변에 모여든다.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해발 2,000미터에 자리한 작은 호수 주변에서 새어나오는 느낌은 이전의 평화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소소하게 만들어내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이 주말인가, 평일인가, 여기가 스위스인가 한국인가 이런 질문이 무색할 평온함, 세상의 다양한 사건과 무관하다는 듯이 흐르는 평화의 상수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가방에 가지고 온 포도와 오렌지를 까먹고 나는 그 옆에 선글라스를 낀 채 살짝 잠이 든다. 우리는 그 호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트레킹. 원래는 수네가에서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헤르드(blauherd)까지 올라간 후 다섯 개의 호수를 돌아 내려오는 코스이지만 우리는 반대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어제 고르너그라트에서 내려오는 근육을 과잉 소진하는 바람에 나름의 잔머리를 쓴 것이었다. 라이호수에서 무스이예 호수(Moosjesee)까지 가는 길은 사진에서 보아오던 알프스 트레킹 코스의 자태를 재현하고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설산이 보이고 오솔길 양 켠에는 야생화가 다양한 색깔과 향기를 내뿜고 있다. 설산과 야생화 사이에는 짙녹색의 소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나는 어제의 기억 때문에 자꾸 그녀가 신경이 쓰인다. 조금만 가파른 경사와 낭떠러지와 마주하게 되면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 돌아갈까?”, “좀 만 더 가면 괜찮아질거야.”, “앞만 보고 가, 옆에는 보지 마.” 이 말을 수백 번을 했던 듯싶다그리고 마주한 무스이예 호수. 에메랄드 빛 호수는 짙녹색 전나무와 두터운 회색빛 돌벼락에 둘러싸여 묘한 정취를 뿜어 낸다. 차가운 여성의 이미지라고 할까, ‘추워 보이는 호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스이예 호수를 활처럼 끼고 돈 오솔길 한 켠에는 노란 야생화가 늘어져 있고, 저만치 앞으로 펼쳐진 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숲을 지나 돌길이 펼쳐져 있다. 과감하게 흙색과 회색빛깔 물감을 흠뻑 풀어놓은 듯한 암벽 사이에는 녹색, 파란색, 흰색을 머금은 자연의 형상들이 흩뿌려져 있다.

 


무스이예 호수를 뒤로한 채 쭈욱 앞으로 나아가자 넓은 회색빛 지대가 펼쳐진다. 해발 2,500미터를 넘어서자 앞서의 세계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구름과 설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키 작은 나무와 탄탄해 보이는 돌무덩이들이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인적 없는 2,500미터 주변을 걸어가고 있노라면 많은 상념들이 머릿 속에서 사라진다. 카페에 앉아 나른하게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음악을 듣는 도시의 풍경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걷는 것뿐이다. 넓은 2,500미터의 광야와 흰 눈과 파란 하늘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가끔씩 먼 곳에 우뚝 솟은 암벽을 마주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같다는 말을 남겼다. 함부로 이런 말을 하면 안되는 걸까? 곧 그 말은 현실이 된다. 핸드폰 사진 어플을 동영상 모드로 바꾼 후 360도 파노라마 영상을 남기는데 어디를 봐도 사람 한 마리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평화 너머의 적막감과 자연의 기운에 눌리는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 번째 호수 그뤼엔에 도착한다. 벤치가 있고 이 호수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인적이 끊긴 공간에서 마주한 사람들이 반가웠다. ‘어이 반가워 친구들하고 덮썩 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수 앞에 마련된 빨간 벤치에 앉아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릴적 동시상영관 영화를 보러 갈 때가 생각났다. 첫 번째 영화가 끝나고 두 번째 필름이 돌아가기 직전의 심경이라고 할까. 뭔가 전반부의 영화와 두 번째 영화가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그런 마음을 전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그녀는 긴장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정말 지옥같은 황량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푸르른 녹음은 아주 드물게만 보이고 시야의 절반은 흰색 구름과 파란 하늘, 나머지 절반은 눈 덮인 봉우리와 눈이 녹아 남겨진 에메랄드 빛 광석, 그리고 암석뿐이었다. 공룡이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간 듯한 풍경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고 우리는 마치 메두사를 만나러 가는 심정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사실 이쯤되면 우리가 왜 앞으로 가는지 그 의미도 모호해진다. 단지 나머지 두 개의 호수를 봐야 한다는 목표의식만 남을 뿐. 왜 그런 목표의식을 가졌는지도 돌아보면 참 의아하기 짝이 없다. 이제 주변의 아름다움과 평화의 선물은 자연이라는 신이 거두어들인 것 같았다. 어서 빨리 이 메두사 마을을 벗어나야겠다는 마음만 앞설 뿐 평화로움이나 기쁨의 환희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발걸음은 빨라졌고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네 번째 호수 그린드예 호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린드예 호수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온통 돌로 가득 쌓여진 길 위에 갑자기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키 큰 나무들이 경쟁적으로 뿌리를 박고, 그 사이로 저 위 신의 세계에서 흘러 내린 물들이 잠시 자리를 잡아낸 형국이라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예쁘거나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높이의 위엄 때문인지 나무들의 형세는 앞서 마주한 나무들에 비해 주눅 들어 있었고 이들이 차지한 규모라는 것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니깐 이 호수는 누가 호수야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호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시냇물 규모라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푸르른 수풀과 에메랄드 빛 호수는 그 의외성에 작은 놀라움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놀라움을 느끼기에는 이미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한계 근처에 봉착한 상황이라는 것.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을 구경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은 마음에 작은 공포를 싹틔우기 시작한다. 이러다 3000미터에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니야? 감히 나도 그녀도 이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면 그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린드예 호수를 보는 순간 뭔가 그런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한 집요함도 있었다.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끝내야 하는 것. 이 이상한 근성은 두려운 마음을 압도해 우리는, 아니 나는 그녀를 이끌고 마지막 다섯 번째 호수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 상황에서는 그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옵션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네 시간 넘게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내려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호수 그린드예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호수 슈텔리로 가는 길은 어제 고르너그라트에서 느꼈던 공포 이상의 공포를 체험하게 하는 길이었다. 고개를 15도만 돌면 천 길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나는 그녀에게 옆에 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 ‘이제 조금만 가면 큰 길로 이어져라는 말을 수백 번도 더 읊조렸던 것 같다. 그녀는 정말 앞도 보지 않고, 옆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운동화 바로 앞 길만 보고 갔고 누가 보더라도 그녀는 울기 직전이었다. 사실 그녀의 공포가 이틀 사이 내게도 전이된 것인지 나 역시 이 길에서는 엄청난 공포심을 느꼈다. 제대로 한 걸음 떼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태연한척 해야 했고, 그녀를 응원해야 했고, 이런 길을 가게 만든 상황이 마치 나의 책임인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위기의 굽이굽이 낭떠러지 길이 끝나는 지점에 갈림길이 있었다. 하나는 바로 곤돌라 역이 있는 블라우헤르드(blauherd)로 향하는 길이었고, 또 다른 길은 다섯 개 호수의 마지막 호수 슈텔리 호수로 가는 길이었다. 나도 그녀도 이미 육체적, 심리적으로 에너지가 거의 고갈된 상황이었지만 나는 슈텔리 호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를 찍고 불라우헤르드로 가는 것이나, 블라우헤르드로 직접 가는 것이나 거리상으로 큰 차이가 없었고 무엇보다 여기까지 와서 마지막 호수를 안 찍고 가면 상당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다.

 

노란 이정표를 지표 삼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마지막 슈텔리 호수로 가는 길은 평온했다. 구름 위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우리는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한 슈텔리 호수는 환희를 부를 만큼의 풍경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쨌든 마지막 호수까지 왔다는 그 사실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확실히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호수는 다른 호수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늪에 빠졌다. 이것은 실제이기도 하고 징조이기도 하다. 슈텔리 호수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가는 길에서 나는 진흙탕 늪에 빠져 신발과 양말이 모두 젖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실제다. 그리고 30분 후 곤돌라가 출발하는 블라우헤르드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마을로 향하는 곤돌라의 막차가 끊겼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은 불길한 징조였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이미 어느 순간부터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우리 주변을 감싸는 것이 돌과 낭떠러지와 파란 하늘과 설산과 흰 구름 뿐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감각적으로 느꼈지만 그렇다고 지상으로 떠나는 기차가 끊겼을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봤자 달리 대안도 없으므로... 슈텔리 호수를 뒤로 한 채 블라우헤르드로 향하는 길 위에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은 30분 전 마지막 곤돌라가 떠나버린 공간에서 구체적인 공포로 나의 마음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해발 3000미터 블라우헤르드에 붙박힌 곤돌라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붙박혀 있었고 역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개미새끼 한마디 구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어둠과 적막 뿐이었다.

 


곤돌라. 끊겼어.”

한참의 침묵,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 ? 그렇다. 왜 나는 막차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기본이었다. 그러나 변명거리도 있었다. 어제 고르너그라트에서 체르마트로 돌아가는 기차의 막차 시간은 저녁 10시였다. 그렇다면 옆 마을 블라우헤르드에서 수네가를 거쳐 체르마트로 돌아가는 곤돌라와 기차의 막차 시간도 그즈음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지금은 오후 5. 아무리 생각해도 막차가 끊길 시간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들기 시작했다. 라이호수에서 조금만 일찍 출발했더라면, 마지막 호수 슈텔리를 보지 않고 왔더라면, 아침에 와인을 마시지 않고 조금만 일찍 출발했더라면... 그리고 또 다른 불안이 엄습했다. 여기서 곤돌라가 끊겼다면 수네가에서도 체르마트로 돌아가는 기차가 끊긴 것이 아닐까? 그럼 체르마트까지 3000미터를 내려가야 하는 것인가? 명하가 무서워하는, 그리고 이제는 나 역시 아찔한 낭떠러지 길을 따라? 과연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좌절과 고통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목표 지점인줄 알고 왔는데 그것이 다시 첫 지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좌절, 당황, 두려움. 깊고 커다란 자연 속에 혼자 놓여진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올라온 길에 새겨진 공포의 기억들. 무엇하나 마음을 다스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당연한 마음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와 목소리에 깊은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거칠고 날카로웠다. 너 때문이라는 원망 섞인 목소리,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공포와 분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 시간을 버티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주변의 자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의 뛰다 싶이 수네가로 내려왔지만 우려했던 대로 수네가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기차도 끊겼다.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가장 안전하고 가장 체르마트에 근접해 보이는 길을 따라 걷고 걸을 뿐이었다. 가끔씩 그녀의 한숨이 들려왔고 나는 그녀가 화를 낼 때 가만히 그것을 들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가진 비상식량들, 물 모두 앵꼬가 난 상황이었다.

 

체르마트에 도착하자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체르마트 다운타운에 문을 연 피자집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피자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원샷하고 나니 그제야 그녀도 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미안해.”

아니 내가 미안해.”

그녀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레지던스로 향했고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떨어졌다. 그녀의 엄지발톱은 이날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발톱이 자라는 데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다. 그리고 나는 그날 그녀가 잠든 후 줄담배를 피웠다. 그날 밤 꿈을 꿨다. 학원에 공부하러 가는데 거기가 바로 메르스 감염 병동인 거다. 뭔가 불안과 공포의 마음에 하루가 감염된 느낌, 마음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아름다운 명소로 소문난 다섯 개의 호숫길을 재앙으로 만든 느낌? 내면이란 그렇게 신기한 거였다. 그러나 어두워진 밤은 잠을 선물하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또 다른 마음과 관계의 장이 펼쳐지기 마련. 그렇게 체르마트에서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