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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팽이가 나를 울린다 (김수영을 위하여)

#20120613-1 팽이가 나를 울린다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1953년작.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이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한 남자가 운다.

도는 팽이를 보면서...

왜일까?

도는 팽이가 이 남자에게  던진 질문이 아파서다.

너는 나처럼 돌고 있느냐?

다른 도는 것에 의탁해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는 것은 아니냐? 

어제와 똑같은 오늘, 매일이 그날 그날인 일상,

도는 것을 멈춘 오늘을 살면서, 

삶과 사랑과 자유와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

 

이 질문에 그는 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묻는다.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히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말한다.

서럽겠지만, 외롭겠지만.

서로 붙으면 안 된다.

두 팽이가 마주치면 돌기를 멈추고 바닥에 멈추기 때문이다. 

멈춘 팽이는 팽이가 아니다.

멈춘 인생은 삶이 아니다.

 

결국 팽이도, 인간도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돌 수밖에 없다.

공통된 무엇을 위하여 마주치는 순간 허망하게 쓰러지고 만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서럽고 서러운 단독성!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린 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러셀을 한다.

러셀은 등산로가 파묻혀 보이지 않는 경우에 온몸으로 눈길을 내는 것인데,

뒤에 오는 사람들이 편하게 산을 오르도록 하는 배려다.

 

도는 팽이를 보면서 그는 다짐한다.

온몸으로 눈길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이미 만든 눈길을 계속 지워나가겠다.

그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가는 러셀이다.

 

도는 팽이를 바라보는 김수영의 마음과 의지를 드려다보면서

나는 요즘의 내모습을 돌아본다. 

 

국가, 권력, 자본  등 외부로부터의 독립

가족, 친구, 동료, 인연  등 주변으로부터의 독립 

과거, 기억, 트라우마, 추억, 습관 등 어제로부터의 독립

 

요즘 나는 이 연습을 하고 있다.

나만의 삶, 나만의 느낌으로 세상과 마주치는 연습.

서럽지만, 서러운 오늘을 격동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비애로,

결의하고 변혁하는 슬픈 감성으로

느끼고 만지는 연습.

 

순간이 영원을 죽이고,

관계가 존재를 시들게하며,  

남의 욕망이 나의 욕망보다 앞서는

일상 속에서

순간과 관계와 남의 욕망을 넘어서기 위해 몸부림 중이다.  

 

 

비. 김수영. 1958년작.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 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고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