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빼고는 전부 지우세요.’
‘만약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죠.’
‘이렇게 공부해서는 절대 오늘의 자신을 넘어서지 못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이런 꾸짖음을 들어본 게 언제일까? 오랜만이다. 이 꾸짖음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 재미있다.
선생님이 묻는다. 왜 유종원의 글쓰기가 애도의 글쓰기라 생각해요? 애도가 뭐죠?
내가 답했다. 왜냐하면 궁시렁 궁시렁..
선생님이 재차 묻는다. 형일씨는 그게 정말 애도라고 보는 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옆에 있는 다른 학우들이 대답한다. 그게 어떻게 애도에요? 말이 안되요. 논리가 이상하잖아요. 근거가 없잖아요. 저는 전혀 그렇게 안 읽히는데요.
모두가 내게 ‘너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이상하다’고 지적질 하는 그 순간, 나의 감정 하나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주말에 이러고 있지?’
‘하~ 도망가고 싶다.’
선생님의 말이 이어진다.
‘이건 아주 투박한 인상비평이에요. 왜 이런 식이죠? 이걸 넘어서야 해요.’
다른 학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고, 난 속으로 말한다.
‘인상비평이 나쁜거야? 내가 유종원을 2박 3일동안 밤 꼴딱꼴딱 새면서 만났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는 거야? 더 이상 어떻게 깊게 만나? 그리고 그냥 인상비평이면 뭐 덧나?’
그 순간 선생님이 내 푸념에 제동을 걸 듯, 속사포 같은 질문을,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묻기 시작한다.
“이 문장과 이 문장, 어떻게 이어지죠? 또 이 문장과 그 다음 문장, 이건 또 어떻게 이어지죠?” “이건 형일 선생님의 생각이지, 유종원의 생각이 아니죠. 그리고 생각과 생각의 고리, 그 연결이 너무 어설프죠. 비약이 전체 글 속에 널뛰고 있어요. 유종원의 삶과 생각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오직 형일 선생님의 투박한 삶과 생각만 가득해요. 그러면 왜 글을 쓰고, 왜 읽죠? 왜 여기 있죠?”
반박을 해야 할 때다. 근데 제대로 반박이 안된다. 그냥 쥐새끼처럼 구석으로 계속 몰릴 뿐이다. 대답을 하면 또 다시 질문이 들어오고,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이 대답하기 더 어렵다. 말과 말 속에 아~, 음~ 근데~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런 쓸데없는 말들이 많아진다.
‘왜 제대로 대답을 못하냐구? 반박을 하거나 이유를 말하란 말이야. 야~ 음.. 근데... 그런 것 말구!’
그러나 쉽지 않다. 반박을 하면 할수록 그건 미치지 못함에 대한 변명이 되어버리는 것을 내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 느낌에 베어나오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
'뭐 인정하자. 어설프잖아. 진지하지도 않고, 제대로 소화도 못했잖아. 반성하고, 다시 공부하자. 진지하게.. 형일아.. 제발.. 그게 아니구요,라고 변명하지 말자. 제발.'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열받는다, 그래서 반박하고 변명한다. 변명을 하면서 드는 감정.
‘발제문, 이게 뭐 중요하다고 꼬투리야? 참... 내가 왜 당신들의 논리에 따라야 해. 내가 이렇게 읽었다면 그냥 그걸로 된 것 아냐?’
‘글을 읽는데 정답이 있는거야? 난 내 식대로 읽는 거야.’
‘그래들,.. 참 잘나셨다.’
그런 감정을 밑바닥에 깔고 반박을 하게 되는데. 묘한 것은 반박을 하면 할수록 선생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선생님이 존경스럽기보다는 얄밉다. 그 얄미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의 마지막 멘트.
“형일 선생님은 다음주에 다시 고민해서 발표하세요.”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유종원에 바치고도, 난 그 유종원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문제라면서 왕창 깨졌다.
깨지고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오간다.
“나는 왜 공부할까? 나는 왜 읽고 쓸까? 이게 어떤 의미일까?”
배우자고 하는데, 내가 닫혀 있는 것일까? 내 고집과 내 사유의 틀 속에 모든 것을 닫아두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누군가, 소위 공부의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이 자신들만의 틀에 나를 맞추려 하는 것일까?
토요일이 어느 날부터 도전의 요일이 되었다. 난 논어를 외우고(항상 못외워서,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공부를 한다. 참), 주역을 듣고, 송나라 시대의 문인들의 사유와 글을 배운다. 수업만 자그만치 7시간이고,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상에서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그 이상이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바둥대는데... 그런데도, 항상 꼴등이다. 맨날 깨지고, 맨날 다시 다시~라는 말을 듣는다. 이 꼴등이 참 어색하다. 돌이켜보면 어디서든 일등 주변을 서성거렸지 꼴등에서 멤돈적은 없는 것 같다. 이건 내가 잘낫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날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그런데 30대 중반으로 넘어서는 지금, 그래서 난 공부도 삶도 꼴등인지도 모른다.
내가 똑똑하다는, 나의 엘리트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어쩌면 난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처럼 내 틀을 깨지 못할지도 모른다. 겸허하게 배우고, 진중하게 읽기, 그리고 자유롭게 사유하기. 그럼으로써 나의 틀 깨기. 이 상투적인 말이 참 쉽지 않다. 변신,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이게 내 삶의 습관으로 붙기까지는 참 많은 고난이 따른다.
선생님과 학우들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자고 말하면서도 난 집에 들어와 구글에서 선생님 이름 석자를 친다. 그리고 선생님이 쓴 책과 나의 책의 판매지수와 평가를 비교한다. 내 책이 조금 더 많이 팔렸다는 것과 내 글에 대한 평이 더 좋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난 쾌재를 부른다.
“거봐.. 내가 더 잘났다니깐...” 혼자 키득거린다. 그 키득거림의 꽤재재함에 웃음이 나온다. 인간은 결국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소인배를 넘어서기 힘들다. 참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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