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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9월 1일. 이유를 찾는 무력함

난 이유를 중요시한다. 어떤 삶에도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힘들고 아픈 상황이 닥치러라도 자기 담론, 자기 이유를 꽤 건강하게 잘 만든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은 많은 부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기대고 있는 듯 싶지만 사실 종교적인 느낌, 색채가 짙게 묻어 있다. 그리고 이런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은 상당부분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가령 부부싸움이 극에 달해 이별을 생각할 만큼 괴로웠던 시간, 그리고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다니던 시간은 돌이켜 생각하면, 나의 가정과 일과 공부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던 커다란 매듭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이유를 찾는 나의 모습에 조금은 분노를 느낀다. 누군가 죽음과 싸우는 이 상황에서 “여기에도 이유가 있을거야. 어쨌든 잘 될거야”라고 반응하고자 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다. 이 지점에서는 오히려 분노와 슬픔과 저주와 절규가 어울린다.

여동생과 나는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사고가 난 후 2주일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남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내 동생이 우는 모습을 난 딱 두 번 보았다. 사고 첫 날, 의사로부터 거의 가망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사고 일곱째 날, 살아도 식물인간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시간을 빼고, 내 동생은 오히려 면회 온 다른 사람들보다 씩씩하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떠들고, 열심히 괜찮다고 전화하고, 열심히 병원 의자에서 노숙하면서, 그렇게 병원에서의 시간을 버텨가고 있다. 그런 씩씩한 동생을 보는 오빠의 심정은, 엉엉 우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오빠의 심정보다 더 가슴이 미어진다.

사고가 난 당일, 난 울고 있는 여동생의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동생은 씩씩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다. 참 이상하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내 가슴이 오히려 미어진다.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