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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10월 26일(화) 일등과 꼴등 사이

‘이름 빼고는 전부 지우세요.’
‘만약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죠.’
‘이렇게 공부해서는 절대 오늘의 자신을 넘어서지 못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이런 꾸짖음을 들어본 게 언제일까? 오랜만이다. 이 꾸짖음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 재미있다.
선생님이 묻는다. 왜 유종원의 글쓰기가 애도의 글쓰기라 생각해요? 애도가 뭐죠?
내가 답했다. 왜냐하면 궁시렁 궁시렁..
선생님이 재차 묻는다. 형일씨는 그게 정말 애도라고 보는 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옆에 있는 다른 학우들이 대답한다. 그게 어떻게 애도에요? 말이 안되요. 논리가 이상하잖아요. 근거가 없잖아요. 저는 전혀 그렇게 안 읽히는데요.
모두가 내게 ‘너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이상하다’고 지적질 하는 그 순간, 나의 감정 하나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주말에 이러고 있지?’
‘하~ 도망가고 싶다.’

선생님의 말이 이어진다.
‘이건 아주 투박한 인상비평이에요. 왜 이런 식이죠? 이걸 넘어서야 해요.’
다른 학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고, 난 속으로 말한다.
‘인상비평이 나쁜거야? 내가 유종원을 2박 3일동안 밤 꼴딱꼴딱 새면서 만났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는 거야? 더 이상 어떻게 깊게 만나? 그리고 그냥 인상비평이면 뭐 덧나?’

그 순간 선생님이 내 푸념에 제동을 걸 듯, 속사포 같은 질문을,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묻기 시작한다.
“이 문장과 이 문장, 어떻게 이어지죠? 또 이 문장과 그 다음 문장, 이건 또 어떻게 이어지죠?” “이건 형일 선생님의 생각이지, 유종원의 생각이 아니죠. 그리고 생각과 생각의 고리, 그 연결이 너무 어설프죠. 비약이 전체 글 속에 널뛰고 있어요. 유종원의 삶과 생각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오직 형일 선생님의 투박한 삶과 생각만 가득해요. 그러면 왜 글을 쓰고, 왜 읽죠? 왜 여기 있죠?”

반박을 해야 할 때다. 근데 제대로 반박이 안된다. 그냥 쥐새끼처럼 구석으로 계속 몰릴 뿐이다. 대답을 하면 또 다시 질문이 들어오고,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이 대답하기 더 어렵다. 말과 말 속에 아~, 음~ 근데~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런 쓸데없는 말들이 많아진다.

‘왜 제대로 대답을 못하냐구? 반박을 하거나 이유를 말하란 말이야. 야~ 음.. 근데... 그런 것 말구!’
그러나 쉽지 않다. 반박을 하면 할수록 그건 미치지 못함에 대한 변명이 되어버리는 것을 내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 느낌에 베어나오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

'뭐 인정하자. 어설프잖아. 진지하지도 않고, 제대로 소화도 못했잖아. 반성하고, 다시 공부하자. 진지하게.. 형일아.. 제발.. 그게 아니구요,라고 변명하지 말자. 제발.'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열받는다, 그래서 반박하고 변명한다. 변명을 하면서 드는 감정. 
‘발제문, 이게 뭐 중요하다고 꼬투리야? 참... 내가 왜 당신들의 논리에 따라야 해. 내가 이렇게 읽었다면 그냥 그걸로 된 것 아냐?’
‘글을 읽는데 정답이 있는거야? 난 내 식대로 읽는 거야.’
‘그래들,.. 참 잘나셨다.’

그런 감정을 밑바닥에 깔고 반박을 하게 되는데. 묘한 것은 반박을 하면 할수록
선생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선생님이 존경스럽기보다는 얄밉다. 그 얄미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의 마지막 멘트.
“형일 선생님은 다음주에 다시 고민해서 발표하세요.”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유종원에 바치고도, 난 그 유종원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문제라면서 왕창 깨졌다.
깨지고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오간다.
“나는 왜 공부할까? 나는 왜 읽고 쓸까? 이게 어떤 의미일까?”
배우자고 하는데, 내가 닫혀 있는 것일까? 내 고집과 내 사유의 틀 속에 모든 것을 닫아두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누군가, 소위 공부의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이 자신들만의 틀에 나를 맞추려 하는 것일까?

토요일이 어느 날부터 도전의 요일이 되었다. 난 논어를 외우고(항상 못외워서,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공부를 한다. 참), 주역을 듣고, 송나라 시대의 문인들의 사유와 글을 배운다. 수업만 자그만치 7시간이고,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상에서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그 이상이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바둥대는데... 그런데도, 항상 꼴등이다. 맨날 깨지고, 맨날 다시 다시~라는 말을 듣는다. 이 꼴등이 참 어색하다. 돌이켜보면 어디서든 일등 주변을 서성거렸지 꼴등에서 멤돈적은 없는 것 같다. 이건 내가 잘낫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날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그런데 30대 중반으로 넘어서는 지금, 그래서 난 공부도 삶도 꼴등인지도 모른다.

내가 똑똑하다는, 나의 엘리트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어쩌면 난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처럼 내 틀을 깨지 못할지도 모른다. 겸허하게 배우고, 진중하게 읽기, 그리고 자유롭게 사유하기. 그럼으로써 나의 틀 깨기. 이 상투적인 말이 참 쉽지 않다. 변신,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이게 내 삶의 습관으로 붙기까지는 참 많은 고난이 따른다.

선생님과 학우들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자고 말하면서도 난 집에 들어와 구글에서 선생님 이름 석자를 친다. 그리고 선생님이 쓴 책과 나의 책의 판매지수와 평가를 비교한다. 내 책이 조금 더 많이 팔렸다는 것과 내 글에 대한 평이 더 좋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난 쾌재를 부른다.

“거봐.. 내가 더 잘났다니깐...” 혼자 키득거린다. 그 키득거림의 꽤재재함에 웃음이 나온다. 인간은 결국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소인배를 넘어서기 힘들다. 참참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