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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위대한 계춘빈, 풋풋한 성장 러브 스토리


위대한 게츠비가 꼭 읽어야 하는 명작(세상에 이런 건 없지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한 계춘빈은 보면 기분 좋아지는 달콤한 단막극이다.

“그녀는 종교다. 한 번 종교를 믿으면, 속세로 돌아가기 힘들다.” (미술치료사 기남)

어렴풋이 들리는 기남의 음성,으로 시작되는 드라마. 흠. 흠. 흠. 이런 생각이 사랑을, 삶을 무지 힘들 게 만드는 건데... 기남의 사랑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때론 이렇게 아프다. 그래서일까? 기남은 말버릇처럼 여친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남에게는 종교와 동급 위치에 자리잡은 그녀가 있다. 그녀는 당근을 싫어하는 기남에게 카레를 해주고는 밤이 되면 신의 집으로 어김없이, 거리낌없이 돌아간다. 그 집에는 기남에게는 종교인 그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산다. 그녀가 남편의 집, 그러니깐 신의 가정으로 쏙 들어가 버린 밤이면, 그 놈은 홀로 어둠의 공포에 벌벌 떤다. 미술치료사 기남은 사랑을 종교라 생각하기때문에 삶이 힘들고, 그래서  미술치료사이면서 동시에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한편 이런 기남을 좋아하는 춘빈(정유미)은 한 마디로 상큼하다. 사랑이 이렇게 상큼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풋풋하고 시원하다.

기남 : 절 좋아하신다고요?
춘빈 :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기남 : 저빼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던데요.
춘빈 : 그렇구나. 아셨구나.
기남 : 이제 저를 그만 좋아하시죠. 전 여자친구(그 놈에게 종교인 유부녀)도 있고...
춘빈 : 저는 하던대로 하려구요.
기남 : 계속 절 좋아하신다구요?
춘빈 : 네.
기남 :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닐까요?
춘빈 : 왜요?
기남 : 그건.. 그러니깐 절 좋아하면 바라는 것도 생기고... 질투도 나고 마음도 힘들고 그러잖아요.
춘빈 : 그런 것 없는데요. 그리고 그쪽은 애인도 있으시잖아요.

이 상큼한 사랑에 대해 춘빈이가 아끼는 새롬이(춘빈이가 가르치는 유치원의 꼬맹이)는 이렇게 말한다.
“너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고 있어?”
그리고 사랑에 가슴 아파서 괴상망측한 낙서 놀이를 하다 경찰에 끌려간 아저씨도 이렇게 한탄한다.
“아가씨 사랑 안해봤구나. 손가락 가지면 발가락 가지구 싶구 그런게 사랑이야.”

 
사실 그렇다. 춘빈의 사랑은 상큼하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설익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꼭 푹 익을 필요는 없지만, 사랑의 경험치가 쌓이면, 사랑의 농축액, 그 치명적인 맛에 당황하고, 울게 되는 법. 그러나 울면서도 다시 찾게 되는 법.

 그래서 춘빈의 기남에 대한 사랑이 현실화될수록...
 “괜히 손가락 만져 아픈가봐요. 나 이제 그만 좋아할래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는 거 그거 정말 힘들어요. 울면서 물총쏘는 것, 껌씹으면서 노래하는 것,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것.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푸념도 하지만, 그 사랑의 맛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상큼하기만 했던 춘빈의 사랑이 소소한 일상 속에  성장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사랑... 키우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뭐, 걱정이야. 또 키우면 되지..”
사랑에 대한 깔끔한 입장. 단순한 게 좋다!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에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 좀묵직하게 녹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가의 사랑에 대한 시선.
“두 가지를 한 번에 하긴 힘들지만 힘이 들어도 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해 볼려구요...”
쿨하고 가볍지만, 그래서 예쁘다. 그렇게 사랑도 사람도 성장하는 것 아닐까?

계춘빈... 그냥 그런 사랑 이야기보다 좀 톡톡 튀는 보는 재미가 있다. 이게 단막극의 장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