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일럿 해피버스데이와 화성인 침공

출처: KBS

K본부 복귀 후 우연치 않게 제일 처음 접한 기획안이 해피버스데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다림, 출산 장려 버라이어티라는 문구가 해피버스데이의 핵심 키워드였는데... 아빠가 될까 말까 고민하는 나같은 놈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의외로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탄환효과라는 게 있다. 탄환처럼 미디어의 메시지가 무차별적으로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 효과 이론은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라디오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된 최초의 미디어 효과이론이다. 이 효과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사례로 이야기되는 프로그램. 1938년 미국의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The War between World"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오손웰스는 핼로윈데이인 10월 30일, 로웰의 소설 '우주전쟁'을 특집 라디오극으로 만들면서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해 왔다'는 내용을 긴급 속보 형식으로 방송한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의 한 장치일 뿐이었고, 이것이 허구라는 것을 드라마 초반에 분명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후 600만 청취자 중 12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긴급 뉴스가 야기한 혼란을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겁먹은 사람들이 화성인의 독가스를 피하려 젖은 타월을 얼굴에 두르고 집을 뛰쳐나갔다. 서부에서는 로키산맥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이 줄을 잇고 일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은 종말이 왔다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당시 방송 후 사람들이 혼란 중에 가장 많이 찾은 곳은 교회라고 한다. 삶에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을 때, 어디로 도망쳐야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디어 효과 이론에서 탄환효과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탄환효과가 유효하다고 본다. 가령 김연아 효과나 월드컵 효과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차별적이다. 여기에 예외?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갑자기 해피버스데이 이야기를 하다가 탄환효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냥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뚱맞게 이 효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제 방송된 해피버스데이는 모든 시청자들의 출산을 무차별적으로 독려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가지게끔 만들었다. 김보민, 박경림, 윤종신, 이수근, 타블로, 그들에 대한 호불호의 정도와 상관없이 나는 그들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산부인과, 그곳에서 갓 태어난 두 명의 생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 거렸다. 이런 강렬한 느낌 꽤 오랜만이다.

오늘 오전에 주절주절 해피버스데이 내용과 편성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다림인데 정작 기다림은 없었다는 비판, 산모와 아이를 만나는 이경규와 MC들의 모습이 형식적이었다는 아쉬움, 토크만 길고 정작 축하의 주인공인 산모와 아이와 가족의 이야기는 없었다는 지적 등이 있었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이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이 재미에 어떤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재미 때문에 누군가는 아이를 아주 잠깐이지만 아주 강렬하게 원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해피버스데이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출산률이 최저인 요즘 사회에 뭔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은 것이 이 프로그램의 제작 목표입니다. 인기 ”연예인들이 출산한 부부를 찾아가 다양한 형태의 토크를 하면서 출산이란 기쁘고, 축복된 것이구하는 것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죠. 한마디로 출산을 사회적인 화두로 만들어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주 상투적이지만 상투적일수록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거창한 의도? 상투적 목표? 대부분은 그냥 간판에 걸어놓을 뿐이다. 그런데 해피버스데이... 어쩌면 성공할 것 같다.

아주 가벼운 방식으로 다가가 묵직한 뭔가를 건들 수 있는 프로그램, 오랜만에 그런 프로그램을 발견한 느낌이다. 해피버스데이... 강추다.

 

참고문헌

황용희 (2010년 3월 15일). KBS 김영선국장, 공익과 재미표방 '해피버스데이' 성공은 공영방송의 지향점.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