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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파스타의 두 남녀.

몸이 좋지 않다. 봄이 오니 꽃이 피고, 꽃이 피니 몸이 시든다. 일요일 오후 내내 소파에 누워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소파에 누워 TV를 켠 채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MBC 드라마에서 파스타 종일방송을 편성했는지, 돌리는 족족 붕어 공효진과 버럭남 이선균을 만날 수 있었다. 트렌드드라마를 볼만큼 마음이 한가하지 않아, 한참동안 툭 놓았던 드라마, 그러다 아프고 지친 몸 때문에 우연히 보게 된 파스타는 오랜만에 꽤 괜찮은 휴식을 선물했다.

출처: MBC


솔직히 파스타 1회를 첨 보았을 때, 소리만 지르는 이선균이 못마땅했다. 바보같은 공효진도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소파에 누워 한 회 한 회 보다 보니 이 두 사람 의외로 매력있더라. 공효진의 매력은 씩씩한 삼순이(내 이름은 김산순)의 매력과도 다르고 보이쉬한 은찬이(커피프린스 1호점)의 매력과도 다르더라. 그 매력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금은 어설프고, 조금은 주눅들어 있고,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툴툴거리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자존심은 반드시 지키고야마는 그런 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더라. 그 현실감이 좋았다. 주방을 어느 공간으로 바꾸든, 공효진 같은 여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작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흩뿌리는 존재다. 이런 존재들이 성장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딱히 자극적이진 않지만 애써 피할 도리도 없다. 
 

출처: MBC


또 하나 버럭 이선균, 약해빠진 남성들이 즐비한 시대에, 똑똑한 여자들에게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면서, 여기저기 눈치나 보고 살아가는 30대 남성들에게 이선균은 조금 불편한 남자상을 제시한다. 그는 일에 있어서는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그만큼의 실력도 갖추었으며, 그만큼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하다.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한 남자들이 즐비한 시대에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게다가 나름 자신의 기준에 있어, 자신의 말에 있어, 책임질 줄 아는 놈이다.

“서유경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난 서유경을 사랑한다. 쉐프로서 신임을 잃을만한 행동을 한 점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서유경을 사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를 빌 마음은 전혀 없다. 따라서 나는 쉐프의 자격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주방을 깨끗하게 떠나겠다"

솔직히 말해 요즘 이런 남자 드물다. 말만 앞섰지, 그 말에 대해 제대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선균의 캐릭터는 많이 불편하다. 처음에는 소리를 버럭 버럭 질러 불편한 줄 알았는데, 좀 더 벗겨보면, 내가, 우리가 그렇게 폼나게 살지 못해 불편한 지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선균의 캐릭터를 아주 멋지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버럭,하는 그가 여전히 싫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 자신의 직업에 대해, 룰에 대해 엄격하고 철저한, 이선균의 어떤 지점이 부럽다는 것, 배우고 싶다는 것,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에 이선균 같은 선배나 동료가 있다면? 그는 해외파에다 실력도 글로벌 프로꾼이다. 싸가지는 없지만, 잘생겼고, 능력도 있고, 나름 책임감도 있다. 음... 솔직히 조금 괴로울 것 같다. 나도 나 잘난 맛에 사는데, 나보다 잘난 놈을 만났으니... 그런 놈을 부러워하는 나를 못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를 열라 부러워하고 열라 시기할 거다. 아 인간이란... 근데 세상 만고의 진실... 한꺼풀 벗겨 보면 이 놈도 나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놈이다. 이선균은 사랑때문에 주방을 떠나는 남자면서 동시에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사랑하는 여자를 한강다리 한복판에 버리고 줄행랑 치는 싸가지 없는 남자이기도 하다. (나는 적어도 그러진 않는다. ㅎㅎ). 그뿐일까? 직업에 대해서는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지만, 자기보다 실력 있는 어떤 놈들에게는 무한한 시기심과 질투를 느끼고, 열심히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제대로 전법도 전수하지 않는, 그런 찌질한 면도 가지고 있는 놈이기도 하다.

 

출처:MBC


인간은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을 제대로 다루는 드라마는 별거 없어보이는데도 사람을 주저 않게 만드는지 모른다. 파스타 별로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드라마 아니다. 딱히 관심을 끌만한 캐릭터도 없다. 그렇지만 아파서 집에 홀로 시들시들 누워있을 때 보기에는 제격인 드라마다. 물론 드라마가 끝났다고, 아픈 몸이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지금도 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