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지끈거릴때는 조깅만큼 좋은 운동은 내게 없다. 오랜만에 꽤 오랜 시간을, 꽤 긴 거리를 뛰었다. 어두웠고, 바람은 차가웠고, 길가에 쌓인 눈은 꽁꽁 언 상황이었다. 내복 위에 츄리닝을 입고, 그 위에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털장갑을 낀 채, 난 어둠을 밟고, 눈을 밟고, 바람을 헤치며 한적한 홍제천 주변을 뛰는 듯 걷는 듯 했다.
"왜 삶이 쓸쓸할까? 왜 삶이 무력할까?"
2010년 1월 갑작스럽게 찾아온 쓸쓸함과 무력함이 당황스럽다. 당황스럽지만 왜라는 질문은 뭔가 어울리지 않다. 그런 질문조차 하기 싫은 것이 쓸쓸함과 무력함이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씩씩하게 지냈던 듯 싶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난 더 씩씩했었던 것 같다. 씩씩해야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위기가 기회라는 상투적인 문구에 호응했던 것일까? 그리고 삶에 여백을 지워나갔다. 짜투리의 시간을 동여맨 채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고, 그것보다 많은 것들을 해갔다. 해야 하는 일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인양, 열심히 했고, 그만큼의 인정도 받았고, 그만큼의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짙은 쓸쓸함에 빠졌다.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간 후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의 혼란일까? 아니면 씩씩한 지난 시간 속에서 잊게 된 어떤 감정들과 관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열심히 했던 어떤 것들의 가치에 대한 의심 때문일까? 모르겠다. 아마도 쓸쓸함의 근원은 이런 질문들 밖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인을 알면 그건 쓸쓸함이 아니다.
소리내어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한다.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해야 한다.
목소리 높여 화내고 싶을 때 분노해야 한다.
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분노하지 못할 때
그건 쓸쓸함의 잔해로 남는다.
씩씩한 것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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