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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추노에서 만난 삶에 대한 방법론

출처 : KBS

1.추노의 세 주인공, 그리고 내 안의 욕망들

한참을 KBS에 떠나있을 때 이상하게 KBS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보게 된 KBS, 거기에서 가장 인상깊은 프로그램은 현재로서는 <추노>다. 추노를 이끄는 세 인물, 대길(장혁), 태하(오지호), 철웅(이종혁)은 이익과 대의, 그리고 원한과 질투 때문에 쫓고 쫓긴다.

대길
"궁궐은 궁궐이고 저자는 저자야. 조정이나 정치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태하
"저는 노비가 아닙니다. 설령 노비보다 더 못한 것이 됐더라도 그 일은 꼭 해야 합니다."
"쫓기는 것이 아니외다. 가야할 곳을 향해 갈려갈 뿐..."
철웅
"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그게 바로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 하는 이유다."


대길과 태하와 철웅은 나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 셋은 하나의 몸에욕망하고 살아 숨쉬는 수많은 마음의 어떤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조선 후반이라는 판타지적 배경 위에 쫙 펼쳐진 우리 안의 살아 숨쉬는 욕망. 그 욕망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안의 지저분한 욕망과 고상한 욕망을 동시에 구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출처: KBS


2. 장혁의 눈빛

내게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것은 하나. 장혁의 눈빛. 장혁의 눈빛 속에 담긴 절망과 분노에서 난 아전인수 격으로 2010년 우리 사회에 응수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읽는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9년. 한반도 전체 인구의 47퍼센트, 한양 전체 인구 53퍼센트까지 노비였다. 노비가 오직 화폐가치로 계산되는 사람임을 생각할 때, 이런 세상을 상상하는 것 어렵지 않다. 우리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퍼센트가 더 늘었으면 늘었지 노비처럼 사는 사람들이 줄지는 않았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지 못한 사람들, 우리 시대의 이방인, 타자,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들, 이들의 삶이 <추노>에서 그려지는 저작거리 사람들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우리는 윗사람과 권력을 욕망하고 이들에게 복종하며, 자신들끼리 분열하며, 아랫사람을 추노하거나 흡혈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권력의 노리갯감이 되어서라도 승자의 반열에 오르려하고(황철웅),
어쭙잖은 완장을 차고 몽둥이를 휘두르려 한다(오포교).
그러나 이런 캐릭터만 우리 사회에 즐비한 것은 아니다. 지옥같은 저잣거리에서 스스로의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 노비들을 잡아들이며 맨몸으로 분투하는 이가 있고(대길) ,노비로 전락해서도 세상을 향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소명을 버리지 않으려는 이가 있다(태하). 

 역사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 싸움에서 승자는 대부분 황철웅과 오포교와 같은 자들이다. 자유를 외치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이들의 삶은 대부분 팍팍하고 텁텁하다.
그렇지만 <추노>가 재미있고 그 다음회가 기다려지는 것은 저항하고 분노하는 사람, 피눈물 흘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도 마찬가지다. 맨몸으로 저항하고, 가치를 쫓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많아야, 그래야 세상은 재미있고, 그래야 다음 회도 기대할 수 있는 거다.   
 오늘의 고통이 기막히게 멋져질 수 있는 것은 꿈과 투쟁과 사랑이 그 위에 겹겹히 쌓여있을 때다. 고통을 회피하지 말자. 세상의 피냄새와 쇠냄새를 무시하지 말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변명하는 순간 드라마는 그걸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