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방송문화진흥회를 알게 된 것은 2005년이다. TV 프로그램 비평상 공모를 했고, 거기에서 상상플러스를 가지고 이런저런 썰을 까서 대상을 탔고, 그 상금으로 나름 좋은 카메라를 마련하고, 술도 원없이 마셨고, 덤으로 책도 한 권 나오게 되었다. 원래 거기는 그런 곳이었다. MBC의 주식을 70% 가지고 있지만, 이런 저런 공익 사업을 하는 곳이었지, MBC의 경영이나 편성에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세월 좋던 때의 일이다. 지금의 방송문화진흥회는 공익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권력집단이 되어버렸다. 아니 권력의 승냥이가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한 판단일 게다. 정부의 골칫거리 「PD수첩」의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더니 (지네들이 뭐라고~~), MBC의 보도·편성이사를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압박하더니 (참네 참네~~), 마침내는 사장까지 갈아치웠다 (할 말 없다).
돌이켜보니 첫 단추가 중요했다. 작년에 KBS 정연주 사장이 KBS로부터 쫓겨나는 과정을 추적한 적이 있었다. 해고가 되고, 조금은 냉정하게 KBS를 보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정연주라는 이름과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분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연주 사장이 정권으로부터 팽 당하는 과정은 정말 치사하고 집요했다. 국세청, 감사원, 이사회, 경찰, 검찰 동원되지 않은 권력기관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뉴스를 통해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접할 때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전체적으로 모아보니, 이건 정말 한 개인에게 권력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든 첫 번째 생각, 이명박 정권 정말 무섭다. 이 무서움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보이더라도 응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말 무서운 거다. 전두환, 박정희 때야 맘에 안들면 몽둥이 들고 패고, 노골적으로 죽여버리니깐.. 무서움의 실체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맘에 안들면 소송 걸고, 벌금 때리고, 은근하게 사생활 캐서 티끌만한 것 나오면 그것 잡아내어 찌질하게 죠지니깐, 무서움의 실체가 조금은 모호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응하자니 찌질해보인다. 그래서 그냥 어리버리 넘어가게 되는데...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서운 것 같다. 뭔가 잘못가고 있는데,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참 거시기 한 거다. 막말로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정권에게 팽 당한 것이, YTN 사장에 방송특보가 임명된 것이 통곡해 울거나 목숨 걸고 저항할 일은 아닌 거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목숨까지는 아니 걸더라도 제대로 저항할 일이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다. 이걸 한 번 그냥 넘어가면 두 번 넘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세 번째쯤 되면 상식이 되어 버린다. YTN 사장에 대통령의 방송특보였던 구본홍씨가 임명되는 것을 막지 못하자, 그 다음에 KBS 정연주 사장이 팽당하는 것을 막는 것은 더 어려워졌고, 그 다음으로 MBC 엄기영 사장이 팽당하는 것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렇다. 단추를 끼우면 끼울수록 사람들은 무기력증에 빠지고,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급기야는 이게 뭐가 문제야라는 자기변명에 빠지게 된다. 뭐~ 나라구 예외일수 있겠나... 심난한 2010년 미디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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