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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미디어 놀이터

주말 뉴스데스크 이동과 MBC 개편 그 얄팍함에 대하여...

주말 MBC 뉴스데스크가 8시로 앞당겨졌다. 메인 뉴스 시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것이 미칠 프로그램 내외적인 효과가 분명하지 않고, 그래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MBC는 주말 뉴스 수요자가 8시대 뉴스를 원하고 있고, 그래서 시간대를 옮겼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MBC의 (일부) 주장일 뿐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 다만 경영자의 어떤 눈에서 보면 그것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MBC의 장기적 침체를 풀어내기 위한 방편, MBC 뉴스데스크의 몰락을 막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통째로 이사해서 새롭게 혁신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만년 꼴등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어쨌든 좀 더 높은 시청률 좀 받아보자구 발버둥 치는게, 경쟁 시장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일반적인 자세 아니겠나?



그런데 문제는 그 발버둥이 MBC 메인 뉴스와 MBC를 살릴 수도 있지만, 그것의 위기를 더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재 MBC의 위기는 어떤 면에서 보면 심각하다. 드라마는 미니시리즈, 주말연속극 할 것 없이 이렇다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고, 예능은 3~5년 전에 선보인 무한도전, 황금어장, 세바퀴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콘텐츠가 육성되지 못하고 있다. 교양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스멀스멀 편성표에서 사라졌고, 삼성에 정보가 유출되고, 정치적 독립이 사전 검열에 의해 위축되는 과정 속에 MBC 뉴스 시사 프로그램의 색깔 역시 엷어졌다. 어쩌다 MBC가 이렇게 되었을까? 쌓는 것은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벽에 작은 구멍 하나 뚫렸을 뿐인데 댐은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MB 정권이 MBC를 미워한다 하더라도, MBC 사장이 정치적으로 아웃되고, 정치적으로 인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건 문제를 일으킨 단초는 될지언정 본질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MBC를 좋아하는 내외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차르르 미끄러지게 할만큼의 내적 역량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MBC 조직원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공영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몫이면서, 동시에 MBC를 보고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지금 MBC 경영진은 자신들의 문제를 시청률과 돈의 문제로 성급하게 환원한다. 그래서 나온 안이 뉴스데스크 8시 이동이다. 뉴스데스크 이동은 크게 네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첫째, 2005년 이후 MBC 9시 주말뉴스가 SBS 8시 주말뉴스보다도 낮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 둘째, 8시대 방송되는 주말연속극이 수 년째 KBS 주말연속극에 맥을 못추면서 한 자릿 수 시청률에 그치고 있다는 점, 셋째, 주말연속극 ‘글로리아’와 주말특별기획드라마 ‘욕망의 불꽃’, 드라마 두 편을 연속 편성하면 시청률 뿐만 아니라 광고 판매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 넷째, 종편 채널 등장에 대비하여 경쟁력 중심 체제로 주말 시간대를 재편해야 한다는 생각. 모든 근거에는 돈과 경쟁, 그리고 시청률이 걸려있다. 이번 가을개편에서 MBC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 <W>와 <후 플러스>를 광고판매 부진을 근거로 폐지하고, <여우의 집사>,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등 예능 프로그램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제작비, 시청률, 광고 수익, 타사 대비 경쟁력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신설, 폐지하는 방송 편성 영역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개편 방식이다. 고로 MBC 가을개편에 시청률과 돈이 기본 잣대였다는 것을 꼭 집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세상이 ‘경쟁’인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방송 콘텐츠 시장의 경우, 돈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순간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있다. 방송사 사장과 경영진이 채널과 콘텐츠에 담길 가치와 철학을 배제한 채, 시청률과 돈을 전면에 앞세울 때, 단 한 번도, 그것이 성공을 거둔 경험이 없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패가망신을 한 경우는 허다해도 말이다. 이것은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가늠하는 척도인 오디언스라는 집단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오디언스, 소위 콘텐츠 이용자, TV 시청자들은 돈과 시청률에 노골적인 콘텐츠를 100% 외면한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누구인가? 성균관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꿈과 사랑의 스캔들을 2010년 한국의 현실에서 붐업시키고, 꿈을 키워드로 한 슈퍼스타 K를 함께 만들어가며, 무한도전의 계속되는 도전과 새로운 상상력의 감수성에 일상적으로 박수치며, 그 감정을 공유하고 확장시켜나가는 시청자들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콘텐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매개로 소통하는 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콘텐츠는 자본에 노골적인 장사치의 장삿속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시대와 소통하는 질박하고, 진지하며, 유쾌한 여행자의 마음을 지닌 무엇이다. 눈높이가 하늘을 찌르고,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는 오디언스들에게 알몸으로 성급하게 돈을 벌겠다고 옷 벗고 달려드는 콘텐츠는 동정의 대상일 뿐, 소통의 대상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MBC의 가을 개편을 보면 사실 이 승부는 개편 이전에 이미 끝났다고 봐도 된다. MBC 자신들의 정체성이 어느 구멍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데, MBC는 그 구멍은 제대로 보지 않고, 엉뚱하게 효율성과 돈의 문제로 자신들의 구멍을 메꾸려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다.

 MBC의 위기는 돈만의 문제도, 시청률만의 문제도 아니다. 무너지는 구멍 주변에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은 무한도전의 상상력이 김태호 PD의 상상력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PD수첩의 진실에 대한 집요함이 최승호 PD 개인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MBC를 보면 편안함의 시대, 개별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상호 소통했던 연결망이 위기의 시대,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 질식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소위 CEO와 경영진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어쩌면 지난 몇 년간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던 MBC 조직의 문제가 차갑고 냉정한 현실을 만나면서 그 실체가 여지없이 까발려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바름과 정의와 창의성을 외치던 목소리가, 정작 그 목소리가 절실한 시점에 침묵하고 있는 듯한 느낌? 오직 나만이 느끼는 생각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다양성과 올바름, 그리고 새로움을 외치던 그 많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러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여지라고는 기존의 성공 콘텐츠(슈파스타 K, 우리결혼했어요)를 동어반복적으로 재생산(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여우의 집사)하거나, 특정 인기 앵커(최일구 앵커)의 입담과 연성화된 뉴스 아이템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 그런 움직임으로 형세를 바꾸는 것? 가당치 않는 기대다.

내가 MBC 개편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이 비단 MBC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다. KBS라 다를까? 국회라고 다를까? 정부라고 다를까?

“우리 인생이 항상 그러했듯이 한국 사회, 언론, 방송, MBC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 또 올바름이 항상 세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적 진실’은 분명합니다. 70, 80년대를 몸으로 겪어온 세대로서 말하자면, 숨 쉬는 현실이 매우 불확실할 때에는 원칙을 지키면서 언론인의 기본 자질을 키워나가는 방법 이외에 뾰쪽한 묘수가 없지요. 이 점이 잊지 말아야 할 현실적 진실의 다른 면이고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기초이며 언젠가 필요하게 될 언론과 언론인의 자질입니다.”

MBC 신경민 앵커가 기자 생활 마감을 앞두고 몇 달 전 MBC 보도본부 게시판에 ‘작별인사’ 라는 제목으로 남긴 글의 일부다. 지금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신경민의 작별인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본 자질을 키워나가며 때를 기다리는 것. 현실에 부화뇌동하거나 어설프게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당담함을 잃지 않고 자신을 키워가는 것.

이래저래 요즘 MBC의 움직임을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제 8시대로 옮긴 MBC 뉴스데스크의 첫 아이템은 박지성 리그 1,2호골이었다. 2010년 11월 7일(일)의 헤드라인 뉴스가 맨유와 박지성이란 말이지. 이게 지금 현재 MBC가 나아가는 방향을 말해준다. 얄팍하고 기본에서 많이 비껴있다. 그래서 나쁘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난 그렇게 얄팍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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