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스쿨/미디어 놀이터

피맛골 대림식당의 소멸

출처 : 다큐멘터리 3일



피맛골에 있던 생선구이집 ‘대림식당’이 23일 장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식당은 재개발이 한창인 종로1가 피맛골에서 유일하게 남아 장사를 해온 집이다. 대림식당을 마지막으로 정.말. 피맛골은 역사가 됐다. 작년에 [다큐멘터리 3일]에서 피맛골 72시간을 다룬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솔직한 감정.
이런 썩을 놈의 세상! 

2005년 광화문 근처로 이사온 직후 광화문 주변은 언제나 공사 중이다. 기억을 강제로 제거하는 공사.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을 이야기하면서, 인상적인 문장 하나를 남긴다.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기억을 거세시키는 땜질 삽질, 단지 씁쓸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선 분노를 느낀다.

피맛골, 그곳은 600년 가까이 술꾼과 서민들의 거리였다. 미니시리즈 [추노]의 배경인 저작거리, 그게 바로 피맛골이다. 이 좁은 골목은 누군가에게는 아픈 서민들의 일상을 달래주던 공간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상상력의 모태이기도 했다.

위로와 상상의 원천인 피맛골은 2003년 서울시가 이 일대 재개발을 허가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술집과 고등어구이집은 밀려났고 흩어졌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피맛골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주상복합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옮겨갔다.

르메이에르로 들어서는 길, 피맛골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서있다. 씨발. 모독도 이런 모독이 없다. 도시는 간판 하나로 피맛골을 재현할 수 있다 말하지만, 어떤 공간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피맛골 간판 밑에 들어선 식당들은 더이상 피맛골의 추억과 기억과 맛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당연하다. 공간이 변하면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다. 

피맛골의 마지막 식당, 대림식당이 문을 닫는 2월 23일, 그곳 주인 김영락(72)씨는 식당 곳곳에 ‘피맛골의 곡’이라는 만가를 남겼다고 한다.
“옛 정취 숱한 사연, 애환들을 앞세우고 님은 갔습니다. 님 떠난 자리엔 도깨비 세상이 되었네…. 먼 훗날, 이방인처럼 돌아온들 무슨 정으로 맞을 건가. 600년 정분났던 옛 님이 아닌 것을”

피맛골의 죽음에 대한 애도시다. 돈방망이가 모든 것을 재단하는 ‘도깨비 세상’에서 옛 골목은 무너졌다. 무너져도 너무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그 무너짐이 슬픈 2월 어느 오후다.  

<참고자료>
김경욱 (2010년 2월 23일) 막 내린 ‘피맛골 600년’ ‘도깨비 세상’ 애도글 남기고 마지막 ‘대림식당’도 문닫아, 한겨레신문.

 

 

 


'미디어 스쿨 > 미디어 놀이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BC 사장 사태를 보고  (0) 2010.03.04
TV의 동반자 인터넷  (0) 2010.02.26
피맛골 시인통신  (1) 2010.02.24
3DTV가 꿈꾸는 내일  (0) 2010.02.23
나오미족  (0) 2009.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