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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네.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를 봤습니다. 너무 친근해서 눈에 띄지 않는 동네 보물창고(이발소, 슈퍼, 방앗간 등)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를 김영철의 발걸음과 따뜻한 목소리로 이끌어 냅니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행복했어요. 어릴 적 슈퍼 아저씨, 이발소 아저씨, 우동집 아주머니, 방앗간 할머니가 떠올랐고, 동네에서 함께 소독차를 쫓아가던 친구들이 떠오르는 거에요. 일을 끝내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식당 할머니를 카메라가 길게 잡을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어느새 할머니가 된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고, 이모가 보고 싶기도 하고. 참 묘한 기분이었어요. 요즘 KBS에서 이런저런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최근 본 프로그램 중 가장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이런 저를 보고 옆에 젊은 친구들은 아 정말 이 아재~”라고 웃지만..

 

첫 회, 김영철 아재가 찾아간 곳은 그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역 뒤편 중림동,  만리동이었습니다. 중림동의 옛 이름은 약현이었다고 합니다. 약초를 지배하는 밭.이 밭 위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약현성당이 있죠. 약현성당을 뒤로 한 채 골목을 걷다보면 오래된 시멘트 벽돌로 쌓인 담장, 오래된 전형적인 대문, 대문 위 창살도 어느 집을 가도 똑같은 곳을 마주하게 됩니다. 중림동 140번가 호박마을인데요. 이 곳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었다고 하네요. 마을의 작은 골목을 영철 아재를 따라 걷다보면 어릴 적 우리 동네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수원고의 건들건들한 형들, 강아지의 멍멍 소리,“형일아 놀자친구들의 목소리. 이런 게 생각나는 겁니다. 

 

발걸음은 오래된 방앗간, 낡은 이발소 성우이용원, 연막소독차, 3000원짜리 콩나물 비빔밥을 파는 허름한 이조식당, 염천교 수제화 공장, 외국인의 명소가 된 동네 구멍가게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오래된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리시장에서 35년간 방앗간을 했다는 아저씨. 손님들이이 집은 뭐든 맛있다며 추켜세우고, 김영철이 직접 손님들에게 들기름을 담아줍니다. “제가 주인 몰래 1000원 깎아 주는 거예요.”어릴 적 어머니 손잡고 찾았던 방앗간의 모습을 아니 떠올릴 수 없습니다.

 

성우이용원 이남영 이발사. 3대에 걸쳐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발을 제대로 하려면 80분이 걸려. 감자전분을 머리에 뿌리고 가위 결에 따라~~” 슬쩍 봐도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37세까지 이발을 하지 않겠다며 방황하다 다시 돌아온 자리. 이 후 이 자리를 떠난 적 없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서, 세계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명인이 되어있네요.

 

골목에서 만난 오토바이 소독차.“제가 오토바이 면허가 있는데 한 번 타볼 수 있을까요?” 넉살좋게 오토바이를 얻어 탄 김영철. 그의 달리는 시선으로 담긴 동네는 기막히게 예쁘고 낭만적입니다. 세월의 더께가 가만히 쌓인 중림동의 모습이 뭉게구름 소독차와 함께 달리는 겁니다.

 

고소한 냄새를 찾아 들어간 이조식당의 할머니. 콩나물비빔밥 한 그릇에 3000.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뜨신 밥 한 그릇만큼은 꼭 챙겨주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수십 년 밥을 해온 75세 할머니의 음식은 기막히게 맛있습니다. “이익 남긴다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어요.” TV를 멍하니 바라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거예요. 그 시절의 우리 어머니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이상하게 슬퍼집니다. 식당을 나가는 김영철에게 어머니는 누룽지를 챙겨주며 별 볼일 없는 가게에 와줘 고맙다고 말하는데,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자꾸만 식당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도 이미 젖어 있습니다. 그래요, 골목, 어머니, 오래됨은 그런 것 같아요.

 

염천교에서 만난 수제화 장인의 주름살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발의 본을 그대로 떠서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신발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지 수십년. 예전과 같은 기세는 아니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장애가 있는 불편한 분이 많아요.”

누가 이런 수제 신발을 찾을까 생각했는데, 기성화를 신을 수 없는 사람들, 양 발의 크기가 다른 분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은 너무도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손님들이 너무 좋아해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돈벌이를 넘어서는 장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는 너무 소박해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들, 공간들들을 천천히 걸어보고, 그렇게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동네는 내가 지구에 도착한 첫 번째 정거장이었고, 고향이며, 그래서 그리운 공간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세상의 변화가 가장 민감하게 살갗으로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시대와 기억이 있고, 현장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김영철은 서울로 7017에서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를 부릅니다.

늘 마주치던 서울, 그 뒷동산에 "긴 하루 지나고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뛰돌던 친구들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던" 우리 동네들이 있습니다.

정겨운 그 동네에서 누군가는 이발을 하고 누군가는 뜨신 밥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단 한명의 손님을 위해 구두를 만들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게 그곳에 소박하고 촛불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네 한바퀴]는 새삼스럽게 그 단순하고 따뜻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다음주 수요일 오후 730KBS1에서 2회가 방송됩니다.

아~ 따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