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번 주 금요일 KBS에서는 두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하나는 <셀럽 PD>라는 교양프로덕션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었고 또 하나는 <나물캐는 아저씨>라고 몬스터유니온에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시청률은 둘 다 사이좋게 2%대, 시청자수는 사이좋게 40~50만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수가 5,000만명 정도 되니 100명 중 1명 정도가 이 프로그램을 본 겁니다. 사실 제작자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결과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에 누가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해서 봐?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여기저기 플랫폼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될 잠재 시청자를 아무리 높게 잡아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KBS 예능 프로그램은 요상하게도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이 두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건반위의 하이에나, 1%의 우정, 하룻밤만 재워줘. 최근 몇 달 동안 KBS2에서 선보인 신상품들입니다. 무엇하나 뚜렷하게 사람들이 “와~ 괜찮네. 재밌네. 신선하네.”라고 이야기되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요?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겠지요. 야구로 치자면 선발 운용, 타자 선택, 2군 육성, 팀워크 등등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관중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팀이 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가 사실 저널리즘의 복원만큼 중요한 문제인데요. 일단 긴 호흡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배트 짧게 잡고 비록 저조한 성과와 실패한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작은 성공의 씨앗들을 캐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씨앗들이 서로 따로국밥처럼 노는 게 아니라 다르지만 유사한 성향, 감성, 비전을 가지면 금상첨화. 암묵지처럼 모두가 인정하는 지향점이 있다면 그것이 곧 새로운 길이요 방향타가 될 것이고, 그 좌표가 있을 때 긴 호흡으로 뚜벅뚜벅 함께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두 프로그램을 복기해보면, 우선 <셀럽 PD>.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마이크로닷이었습니다. 이미 유명한 친구죠. 유명해서 좋은 게 아니라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선하고 강한 에너지가 참 좋습니다. 가식 없는 솔직한 태도, 좋아하는 형 손홍민을 보러가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신나고 고집부리는 모습, 과하지 않은 적당한 친근감, 어벙하고 귀여운 웃음, PD가 되어 손홍민을 찾으러 가는 과정은 재미가 없었지만, 그 재미없는 순간 순간을 보게 만든 것은 마이크로닷이 내뿜는 기분 좋은 에너지였습니다. 이 에너지와 캐릭터를 귀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이크로닷이 셀럽PD에서 보인 에너지는 KBS 예능과 교양이 가져가면 좋을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친구, 옆집 동생, 귀여운 아들, 자랑하고픈 동네 동생, 생기 넘치면서도 따뜻한 에너지를 귀히 여겨야 하는 겁니다. 이 친구의 성장에 KBS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기여를 하는 것, 어쩌면 셀럽 PD에서 건져내야 하는 작은 성공 씨앗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으로 <나물캐는 아저씨>. 사실 이 프로그램은 삼시세끼도 떠오르고, 인간의 조건도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상투적으로 베끼기 논란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TV라는 게 아방가르드적 아티스트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성공한 트렌드에 변화의 토핑 하나 괜찮게 버무려도 그걸로 다른 맛을 준다면 충분합니다. 파일럿은 그래서 90% 기존 프로그램의 모방에 대한 비난보다 새롭게 얹혀진 10%의 토핑이 성공의 가능성이 있냐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에서 건질 것은 “나물”이라는 마이크로한 관점과 영상입니다. 편집은 느립니다. 시골과 들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파릇파릇한 쑥부쟁이, 우리가 무심코 스쳐지나간 텃밭과 들판의 살아 숨쉬는 생명들, 이들에 대한 설명은 낯설고 신선합니다. 시끄럽지 않고 우리가 무심코 스쳐지나간 일상과 공간의 재발견, 그리고 함께 나물을 캐고 밥을 해먹는 밥상공동체의 즐거움을 영상화시키는데 탁월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나물 캐는 아저씨에서 건져야 할 것은 이것을 조금은 느리고 디테일하게 캐치할 수 있는 연출자 박석형PD의 발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출연진들이 과도하게 진부했어요. 일상의 디테일한 미학을 건져내고 그 안에서 힐링을 유발하기에는 너무 아재들이고. 이 아저씨들이 나물을 매개로 수다를 떠는 방식은 시끄럽고 산만하기만 하며, 힐링과 녹색 감성의 유발은 아저씨들만의 캐미로는 불가능해보이기도 했어요.
다시 처음의 질문. 지금 KBS도 MBC도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나 뉴스도, 예능도 아직 마땅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단기적인 성과는 과거보다 안 좋아진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급하면 지는 겁니다. 과감하게 진행해가면서, 그 결과에 대해 면밀한 복기와 성찰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거 봐라~ 안 된다니깐! 뭐야? 똑같잖아?, 우리 이렇게 열심히하는데 자꾸 뭐라고 그럴래?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긴 호흡에서 지금 현장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작은 성공의 씨앗들이 무엇인지, 무얼 건지고, 무엇을 조금씩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비난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가기에는 너무도 시청자 반응이 없으며, 응원한다며 침묵하는 것은 금이 아니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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