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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미디어 놀이터

KBS 후보 정책 발표회 시청 후기 : 시민자문단의 승리


시민자문단이 KBS의 사장을 뽑는 날. 반나절 내내 나는 그 현장을 울 회사 홈페이지에서 구경했다. 공론조사가 진행되는 방식을 약간이나마 구경했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고, 나름의 합의된 질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양승동 PD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왔다. 10년 전 회사로부터 받은 파면 징계 통보고서를 스크린에 띄우며 발표를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뭔가 찡했다. 몰랐던 것도 아니고, 일종의 전략이기도 했겠지만, 뭐라고 할까,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KBS가 나갈 방향을 선언한 듯 싶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정치적인 이유로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반대로 평범한 일상인들을 투사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 시대의 상처받은 시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다짐. 이런 것들이 진심으로 읽힌 시간이었다. 이상요 교수는 수신료 2500원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 사장도 산골 할아버지도 2,500원을 낸다며 평등의 가치를 강조했고, 차마고도로 예를 들며 차별성의 가치를, 누군가의 땀냄새, 비린내, 출근자의 체취, 컵라면 냄새가 베어있는 수신료를 낭비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조하는데 쓰겠다고 강조했다. 양승동 PD와 이상요 교수의 삶과 성격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승동 선배가 가을과 겨울의 기운이 강하다면, 이상요 선배는 봄과 여름의 기운이 강했다. 발산하는 힘은 이상요 선배가 강했지만, 성찰하는 힘은 양승동 선배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날의 승자는 누굴까? 개인적으로 시작과 끝은 양승동 선배에게 끌렸고, 구체적인 정책 발표에 있어서는 이상요 선배의 이야기에 끌렸다. 그러나 정작 이 날,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양승동 선배도, 이상요 선배도 아니고, 시민참여단이었다. 시민참여단의 질문은 날카롭고 예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체성이 부족한 정책발표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달라고 했고, 구체적으로 제시된 정책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정책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달라고 했으며, 공공와이파이망과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재원마련방향과 중장기 로드맵을 제안하라고 했다.


이 핑퐁 게임(놀이)에서 내가 느낄 때 후보자 모두 헛스윙이 많았다. 누군가는 머뭇거리며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누군가는 질문과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바로 이 부분에서 KBS의 문제가 여실히 표면 위로 나타난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을 주인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현실, 무언가를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지(알지) 못하는 현실. 이에 비해 시민들은 너무도 날카롭고, 예리하게 KBS를 바라보고, 질문하고, 그래서 지금껏 한숨짓고 등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지난 토요일의 승리는 시민자문단이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KBS 사장 선임 등 주요 정책 결정에 있어 이러한 제도가 하나의 중요한 시스템으로 이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이면 이사회 최종 면접을 걸쳐 내가 일하는 터전의 새로운 사장이 결정된다. 사장이 바뀐다고 내가 일하는 터전과 내 삶의 빛깔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념할 바는, 나는 좀 더 자유롭고, 윤리적이며, 가장 낮은 공간의 이야기를 잘 듣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다. 다른 어디가 아니라 지금 출근할 바로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