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홍천 동면교회를 다녀왔습니다. 박순웅 목사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목사님입니다. 평소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읽고 쓰는데 할애하려 애쓰지만(그렇다고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럴수록 고민이 커지기도 합니다. 점점 더 나는 글과 삶 사이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는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들 때 박순웅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 거무스레하게 탄 얼굴에 “하하하” 호탕하고 쾌할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삶을 마주하다보면 교회 안과 밖, 글 안과 밖, 생각 안과 밖이 어떻게 자유롭게 만나고 일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당당하고 호탕한지를 그냥 단박에 느끼게 됩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공생과 상생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게 그냥 문장으로만 존재할 때는 아무런 감응이 없습니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가 어디있을까요? 그러나 홍천 동면교회에서 박순웅 목사님의 음성으로 이 이야기를 들을 때의 감동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니깐, 그것은 글이 아니라 삶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그곳에 방문한 것은 봄맞이 “감자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울 청파교회에서 총 13명의 교인들이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목사님은 이미 “농사 중”이셨습니다. “농사에는 때가 있어요. 그때를 놓치면 안 되요.”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할 계절의 리듬이라는 걸 생각해봅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오면 결실을 거둡니다. 아침이 오면 땅으로 나아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농부의 발걸음도 함께 움직입니다.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요? 자연스러운 리듬이 도시인들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정말 힘이 들기도 합니다. 이틀이 지났는데, 그날의 흔적은 여전히 제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몸을 굽히지도 못합니다. 양말을 신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10배는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리듬에 도시에 길들여진 몸은 진통 중입니다.
도착하자마자 목사님께서 바닥에 씨감자를 잔뜩 펼쳐놓습니다. “자 지금부터 설명해드릴게요. 이게 씨감자라는 건데요, 여기 보면 감자에 싹이 나고 눈이 나 있죠. 이 부분을 중심으로 적당히 칼로 오려내는 거예요. 한 감자당 3,4등분 정도 하면 되요. 아셨죠? 그럼 시작!” 이 시간만 하더라도 어리버리하기는 해도 그렇게 힘들다는 건 못 느꼈습니다. 이게 눈일까? 싹일까? 의심되는 부분에서 칼은 자동 멈추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눈이라 생각하고 자르자!’하고 넘어가도 크게 무리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 “자 지금부터 남자 분들은 비닐멀칭을 하러 갈 겁니다.” 비닐멀칭이 뭐지? 제가 뭘 알겠습니까? 차를 타고 시골을 다니다보면 땅에 비닐이 씌워져 있는 걸 종종 보게 되는데, 아마 그걸 하려고 가는 것이겠지, 지레 짐작할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앞에 펼쳐진 1,000평의 감자밭 예정지. “자 지금부터 비닐멍칭을 할 텐데, 보면 알겠지만 이미 이랑을 만들어놓았어요. 이랑에다가 비닐 멀칭을 할 텐데 앞에서 한 사람이 비닐을 펴면, 옆에서 두세 사람이 고랑에서 흙을 삽으로 퍼 비닐을 고정시키는 거예요. 여기가 바람이 세요. 바람이 날리지 않도록 흙을 두둑하고 촘촘하게 비닐 위에 올려주세요” 전 1,000평이 그렇게 넓은 공간인 줄 몰랐습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삽질. 정말 허리가 두 동강 나는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군에서도 삽질을 거의 하지 않았던 정말 귀하게 큰 도시인인데, 목사님은 너무도 쉽게 툭툭 하는 걸 저는 왜 이리 힘든 걸까요? 노동하지 않은 몸의 불구성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빨리 가려고 서두르면 몸도 피곤하고, 비닐도 쉽게 바람에 뒤짚어져요.” 삽질을 하는 내내, 도시인인 우리는 “빨리빨리”가 몸에 배었나봅니다. 속도가 빨라지고, 빨라진만큼 부실 공사가 곳곳에서 속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느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비닐멍칭이 촘촘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가 아파져요. 형제님들은 허리가 나가고, 여기는 비닐이 엎어집니다.” “빨리빨리”와 “1000평 비닐멀칭 완료” 성과 목표에 눈이 먼 도시인에게는 그 말이 영 쉽게 몸에 붙지 않더라구요. 곳곳에서 “아이구 허리야!”라는 곡소리가 났고, 비닐 곳곳이 슝슝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카레는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카레 두 그릇과 떡 한 판과 과일까지 정말 맛스러운 점심시간이었어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하나 둘 남자들이 감자밭으로 떠나는 시간, 저는 삽을 들고 가다 목사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비닐멍칭이 된 곳에 감자심기 시범을 보이시는 겁니다.
“자~ 두 사람이 손이 잘 맞으면 속도가 납니다. 한 사람은 감자심기 도구로 비닐멍칭에 구멍을 뚫으세요. 가급적 깊게 박으시고, 그러면 옆에 사람이 도구 안으로 감자를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도구를 든 사람이 손잡이를 안쪽으로 당기세요. 그러면 밑에 닫힌 문이 열리고 감자가 흙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도구를 살짝 빼는 겁니다. 비닐이 너무 많이 찢어지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감자가 보이지 않도록 흙으로 덮어주고, 그게 다 되면 30cm 움직여 다시 구멍을 뚫는 겁니다. 자 아셨죠? 시작!”
저는 목사님과 한 조가 되어 열심히 감자심기 도구에 감자를 떨어뜨렸습니다. 목사님께서 감자를 심으면서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요즘에 신나요~ 젊은 후배들 11가구가 이 마을에 들어왔어요. 미술가도 있고, 연극인도 있고, 음악인도 있죠. 공동체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이런 저런 시범사업을 신청해서 지자체에서 후원도 받기 시작했죠.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 건 교회를 위해서라도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후배들 아이들이 동네에 들어오니 활기가 생겼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어요. 재미있어요. 공동체. 물론 힘도 많이 들지만, 청파교인들도 한 번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오후 4시. 감자심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남자분들은 여전히 비닐멍칭 작업에 한창입니다. 목사님도 감자심기 도구를 저에게 전해주고 그 곳으로 가신지 오래. 그러고 보니 저는 오후 내내 여성분들 사이에 끼어 감자를 심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었군요. 이건 꼼수를 부린 게, 끙~ 맞습니다. ^^
그렇게 토요일 ‘감자심기 체험’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즐거운 노동이었고, 즐거운 체험이었습니다. 온 몸이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천근만근이 되었지만, 이건 자연의 리듬을 무시했던 지난 시간이, 노동의 삶을 멀리했던 도시의 삶이 만들어 낸 결과이겠지요. 힘들지만 땅을 밟고 농사를 짓는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일단 땀을 흘린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만큼 솔직한 게 없습니다. 잡념도 사라집니다. 무념무상, 굳이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태극권을 하지 않더라도 삽으로 흙을 파는 그 순간, 감자를 심어가는 그 순간 머릿 속은 백지처럼 투명해지고 오롯이 나의 움직임과 그 시간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만큼 좋은 활동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서 수확된 농산물의 기운은 생협을 통해 도시에 전해집니다. 서로살림 농도생협 이사장이기도 한 박순웅 목사님은 오랫동안 유기농·친환경농법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도시 간 직거래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홍천 동면교회는 소중한 생산지 중 한 곳이고, 서울 청파교회는 이 생협에 있어 중요한 도시 유통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청파교회 같은 곳이 몇 군데만 더 있어도 시골의 소농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농촌과 도시의 교류가 넓고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제 안에서도 도시의 리듬과 더불어 농촌의 리듬이 더불어 함께 키워지기를 바랍니다. 가까이 서 뵌 박순웅 목사님의 눈은 깊었습니다. 그 깊은 눈과 시원한 웃음 소리, 무엇보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잘 생긴 건 잘 생긴것대로, 못 생긴 건 못 생긴 것대로 모두 생명의 의미가 있다는 목사님의 철학은 배우고 몸으로 익히고 싶은 부분입니다. 주변에 이런 어른이 함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일 목사님은 교회에서 어떤 설교를 할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동면교회에 주일에 방문하시면 꼭 예배를 보시고,주보 하나를 가지고 오세요. 목사님이 직접 손으로 쓴 주보에는 생명과 영성과 공동체의 기운이 그대로 묻어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저와 청파교회 환경부는 7월초에 심은 감자를 ‘캐기’위해 다시 동면교회를 방문합니다. 그때까지 어설프게 자리 한 감자들이 부디 큰 일 없이 잘 자라기를 기도하며...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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