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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미디어 놀이터

우리라는 말을 경계함

© Michael Kenna, Kurosawa’s Trees, Study 2, Memanbetsu, Hokkaido, Japan, 2009

아침 7시 즈음에 저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닙니다. 음악이 들립니다. 커피향이 공간을 채웁니다. 커피내리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 그리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 어제 어느 회의석상에서 잠깐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변화는 불편합니다. 관행을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왜 당신은 아직도 그렇게밖에 생각 못하는 거야? 이런 질문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마주하는 겁니다. 그래 어차피 불편하니깐, 모두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자. 여기서 모두는 내가 '우리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때론 우리 밖 타자에 대한 부당한 지시, 요구,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안에서 편해지려는 마음, 그게 어떤 경우는 타자에 대한 차별, 압력,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게 아무리 소소한 일일지라도 정말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주 한 저녁 자리에서 좋아하는 선배이자 시인이기도 한 동료가 자신이 최근에 쓴 시라며 우리라는 시를 낭독해주었습니다. 아직 발표 전 시라 전문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라는 말은 힘이 세고 갖고 싶은 말이지만 동시에 우리무리가 되면서 모리배, 폭력배, 괴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함부로 우리를 만들지 말 것, 섣불리 우리 속에 갇히지 말 것.”


어제 회의 시간 내내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에 끼려고 하는 내 욕망과 우리 속에 갇힌 내 마음의 문제인 것이지요. 우리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아니 나로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라 일상에서 올바름을 놓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놓지 않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무심하지도 않으면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으면서.


사진은 영국의 흑백 사진가 마이클 케나의 작품입니다.  지난 주말에 서촌에 자리한 공근혜 갤러리에서 

오랫동안 본 작품입니다. 오늘 아침 서늘하게 홀로 서 있는 나무를 생각합니다. 겨울의 새벽을 떠올립니다. 바람을 느낍니다. 고요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겨울의 바람 위에 서 있는 나무 한그루.의 정기를 나의 것으로 삼아봅니다.  긴 호흡으로  오늘도 뚜벅뚜벅 가는 겁니다. 과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으면서... 무리를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 안에 갇힌 육신을 경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