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혁신 프로젝트 <끝까지 깐다>를 봤습니다. 한마디로 KBS가 자신들이 만든 뉴스, 시사, 다큐멘터리, 예능 프로그램과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 일하는 방식 등을 집요하게 까는 프로그램입니다.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반성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인데요, 시청자들이 바라보는 KBS의 모습을 날 것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KBS 구성원이라면 누구에게든 추천하고픈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시청자 패널 6인입니다. 이들은 두 번에 걸쳐 같은 테이블에 앉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KBS하면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인상비평.
KBS하면 뭐가 떠오르세요라는 질문에 고인 물, 재건축 앞둔 아파트 상가, 멸종해가는 동물 등등의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웃기지 않다는 걸 넘어서 콘텐츠가 게으르다. ” “기억나는 프로그램이 없다. 이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미래 시청자란 없다.” “관료적이고 결재라인이 긴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색무취한 프로그램이 나올 리 없다.” “정확히 세월호 이후 KBS를 완전히 떠났다. 내 주변의 학부모들이 모두 JTBC로 넘어갔다. 부로가 떠나면 아이들도 떠나기 마련이다.” “세월호 보도, 해수부 자료를 조사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해경방송 같았다. 계산된 침묵, 무색무취, 숨겨진 편향성” “미투 운동과 같은 이슈가 있을 때, 소외되거나 상처입은 시청자들이 KBS를 찾지 않는다.” “수신료의 가치? 정말 믿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런 프로그램을 과연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걸고 내놓을 수 있을 것일까? 인권 감수성이 너무 떨어진다.”
두 번째 만남은 인상비평에서 좀 더 들어가는 방식을 제작진이 차용했는데요, 패널 6인에게 주요한 프로그램 모니터를 부탁하고, 주요한 KBS의 이슈와 문제점을 요약 정리한 자료집 일독을 요청한 겁니다. 우선 뉴스,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국정역사교과서 논란’, ‘인천상륙작전 홍보 기사’, ‘최순실 국정농단 이슈’, ‘세월호 이슈’ 등 지난 몇 년간 논란이 되었던 KBS 뉴스를 보여주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요, 아픈 말들이 많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전문용어로 공방신기다. 한쪽의 과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폭력시위와 농민중태,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등등 모든 걸 공방으로 몰아간다. 집회는 폭력적이었고 그래서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는 프레임, 교통체증도 농민 사망도 모두 시위대의 잘못이라는 프레임이 행간에 읽힌다.”
“국정역사교과서, 받아쓰기 열심히 한다. 교육부, 청와대 정부 입장을 단순 전달한다. 분석이 실정된 뉴스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자신이 없다. 인터뷰를 활용해 당위성만 말할 뿐, 왜 국정화가 필요한지, 무엇이 논란의 쟁점이 되는지, 콘텐츠에 대한 설명이 없다. 외압때문이란 건 핑계다. 정부의 확성기 노릇만 한다. KBS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슈, 전국이 태블릿 PC 이슈로 들끓었을 때 KBS 뉴스는 전투식량 같았다. 북한, 북핵위기, 미사일 발사 뉴스가 도배된다. 영양가도 없고 맛도 없고. 조선중앙 TV 같다. 북한이 선전한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다.”
“세월호 당일, 그날 KBS 뉴스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대통령 이야기에 유가족은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표현했지? KBS가 심기 경호를 한 거다. KBS는 공범자였다.”
뉴스 이외에도 예능, 다큐멘터리에 걸쳐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는데요.
“예능은 정말 베끼기만 하는 것 같아요. 베껴도 뭔가 새로우면 신선하게 다가오는데 KBS에는 그런 게 없어요. 또 베꼈네, 부정적인 반응이 우선이죠.”
“재미는 둘째 치고 KBS는 좋은 관점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질 못해요.”
“예능국은 과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인가. 과연 그것이 구현가능한 구조인가,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그런 의구심이 들어요.”
“추적 60분은 아이템만을 보면 보고 싶은 경우도 있는데 추적 60분이니깐 보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몰입이 되고 흡입력이 있어요. 새로운 증언 목격 사실들이 있죠. 사회적 논의를 이끌고 파장을 만들어내죠. 그런데 추적60분은 그냥 사건의 정보를 제공하는. 잘 정리한 뉴스 보고서 같은 느낌이에요. 그 이상의 특징과 장점이 없고 이슈가 되지 못하는...”
“재미가 없는 것과 품격이 있는 것은 다르죠.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생각할 때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 아이템을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텐데, 지금까지 나태했다고 봐요. 수신료의 가치 정말 고민해야 한다 고 생각해요. 구성원들이.”
<끝까지 깐다>는 새로운 시작을 열망하는 KBS가 고민해야 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반성 프로그램을 꼭 만들어야 해? 그런 우려와 의문도 있었지만 프로그램을 본 후, 이걸 만든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KBS 구성원들이 이 프로그램을 매개로 넓고 깊게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방송 중간에 누군가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시민에게 KBS는 중요하지 않아요. KBS는 그냥 수단일 뿐이죠.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 역할과 수단으로 작동하고 기능하는 게 KBS에게 남은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KBS가 중요해야 돼’ 하면 또 헛발질 할 거예요. 작은 것부터 하나 둘씩 복원해가는 게 희망의 끈이죠.”
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 둘 보람과 의미의 경험을 넓혀가는 것. 그러기 위해 예민하게 관찰하고 따뜻하게 애정하고 냉철하게 비판하는 것,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일상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일은 4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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