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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every piece of me" 팬텀 스레드의 사랑이야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를 봤습니다.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스터> 등의 궤적을 그린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인간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가장 연약한 형태로 가장 아프게 드러내는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 역시 아프고 섬뜩합니다. 사랑에 대한 이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 낯설고 새로웠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괴팍한 천재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작업을 할 때는 너무도 예민하고,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딸그락 소리도 용납하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어느 날 아침, 작은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던 중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여자 알마에게 눈길이 갑니다. 어디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는 느낌의 그녀, 그러나 괴팍한 천재 디자이너에게는 달랐습니다. 자신에게 보내는 웨이트리스의 눈길에 마음이 사로잡혀버린 겁니다.


“For a hungry boy, my name is alma.”

첫 만남에 알마가 레이놀즈에게 준 쪽지,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고, 알마는 천재 디자이너의 뮤즈가 됩니다. 사랑의 시작, 그건 어느 연인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평범했던 일상이 특별하고 새로운 사건으로 가득 찹니다. 웃음소리도 가득, 설레는 목소리도 가득. 사랑이 기울어져 가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함은 사라지고 무심한 일상과 결점투성이인 두 인간의 불협화음이 자주 부딪힙니다. 이 국면에서 알마는 포기란 게 없습니다. 괴팍한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무시, 조롱, 비난, 짜증에 집을 뛰쳐나올 법도 한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레이놀즈의 명령, 강요, 권위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목소리 앞에서 난 내 방식의 삶이 좋다며 가볍게 넘기더니, 판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위험한 게임을 시작합니다. “내가 이 사랑을 길들이리라.”


이른바 독버섯 레서피. 독버섯이 토핑된 요리를 먹은 레이놀즈는 당황스럽게 약해지고, 약해진 레이놀즈를 간호하면서 알마는 게임의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이 게임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정작 독버섯을 먹고 약해진 레이놀즈 역시 이 게임을 즐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사랑해, 알마독버섯으로 다시 사랑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이때부터 알마와 레이놀즈의 관계는 반복된 서사의 연속입니다. 사랑이 일상, 권태, 차이에 질 때 독버섯이 토핑되고, 간호놀이가 시작되고, 그 놀이가 끝나면 다시 사랑의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갑니다영화 후반부, 알마가 레이놀즈에게 독버섯을 먹인 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독이 든 줄 알면서도 레이놀즈가 음식을 먹은 후, 알마가 속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략 이런 대사였습니다.


난 당신이 바닥에 쓰러졌으면 좋겠어요. 무방비하게, 연약하게, 오직 나의 도움을 원하도록... 그리곤 다시 강해졌으면 해요. 죽진 않을 거예요. 당신은 휴식이 필요해요.”

그러자 레이놀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쓰러지기 전에 키스해줘.”

이즈음 되면 영화 첫 시작 알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레이놀즈는 제 꿈을 이뤄줬어요. 그래서 전 레이놀즈가 가장 원하는 것을 이뤄줬어요.”

(“그게 뭐죠?”)

“Every piece of me.”

 

Every piece of me.

사실 사랑에 대한 이렇게 원초적인 감정을 예리하게 드러낸 영화를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아프다는 느낌이 든 것은 어쩌면 감독이 가진 삶에 대한 예리함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결핍투성이인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넘어 현실의 관계에 있어 갈등, 싸움, 질투, 기억, 상처, 습관, 무료함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 삶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언젠가 다시 한 번 보고픈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넘어 관계에 대해 이것 저것을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더불어 음악도 멋집니다. 찾아보니 조니 그린우드의 재즈음악 중심이었네요. 기억해두고 싶은 이름.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다음 이동전 평론가의 기사를 참고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