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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걸어가는 사람들 KBS2 <1%의 우정>

 

 

 

토요일 밤 11시, 1%의 우정을 봤습니다.

성격, 배경, 가치관, 성향이 너무도 다른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입니다. 누구와 누구를 관계 맺게 할 것인가? 섭외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1번 타자로 안정환과 배정남, 2번 타자로 김희철과 주진우 카드를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안정적이면서도 신선하고, 낯설면서도 익숙합니다. 이 미묘한 느낌이 좋습니다.

 

 

스튜디오는 라디오 부쓰처럼 아날로그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배철수가 중심축을 잡는 모습도 좋습니다. 진행은 깔끔했고, 솔직했고, 예의가 있었습니다. 배철수는 어찌보면 과감하면서도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회 시작은 김희철이었습니다. 예술의 전당,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미술전, 빨간 트레이닝복, 어리버리, 긁적긁적 미술관에서 김희철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곳에서 좀 떨어진 어디선가, 뚫어지게 작품을 보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주진우 기자입니다. 처음 김희철과 주진우의 만남을 예술의 전당으로 잡은 것은 참 멋진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스타일만 똑같지 너무도 다른 두 남자라는 게 그냥 예술의 전당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녹화 일주일 전 인천공항입니다. 새벽 5, 점퍼차림의 한 남자가 입국 게이트로 들어옵니다. 한 손에 스포츠 가방이 또 다른 한손에는 전화기가 놓여 있습니다. 입국게이트에서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동선, 이 남자 너무도 분주합니다. 전화기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 남자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주진우 기자입니다.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입니다.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받는 게 일입니다. 기사 작성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 목소리 듣는 것도 중요한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는 전화비만 3000만원이 나왔습니다.”

 

대기한 차가 공항을 빠져나가고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밝아옵니다. 차에 타자마자 아침 뉴스부터 확인합니다. 또 전화기 벨이 울립니다. “, 저 왔습니다. 회장님. 들어가는 길입니다.” “몇 시에 만나기로 했죠? 누구누구 참석하죠?”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단위로 쪼개 쓰는 빼곡한 일정의 다이어리. 하루 평균 약속이 15, 저녁 약속만 보통 하루에 2개 이상 잡혀 있네요.

 

이 남자 헐~ 정말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 맞습니다. 워커홀릭에 가깝습니다. 지난주는 LA에서 일출을 보고, 어제는 홍콩에서 일출을 보고, 오늘은 서울에서 일출을 보는 남자입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하는 말이란 게 이런 겁니다. “새벽 비행기 타고 오니깐, 오늘 하루가 안깨져서 좋아요.” ~ 얼굴에는 피곤이 짙게 묻어 있고, 해가 뜨고 세상은 이제야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김희철의 아침으로 이어집니다. 김의철의 아침은 주진우의 아침과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일어나자마자 게임TV를 틉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만 나면 게임 TV를 보고, 틈만 나면 게임을 합니다. 냉장고에는 생수만 가득합니다. 거울을 보고 사라지는 머리숱을 걱정합니다.

 

의철이가 머리숱을 걱정하는 시간 주진우는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책상 위로 수북히 쌓인 책, 소송 관련 자료, 그리고 이어지는 전화통환 반장님~, 검사님~, 박사님~, 단장님~, 플랜 B 가동하시죠.”

 

 

~ 어떠신가요? <1%의 우정>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가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어찌보면 약속된 아이템만을 소화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개인의 일상이 매우 촘촘하게 리얼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주진우라는 기자를 섭외한 것은 탁월한 묘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볼 때 밥벌이때문에 분당시청흐름이라는 것과 같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주진우가 화면 안에 나올 때와 퇴장할 때의 시청흐름은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그가 나오면 사람들이 모이고, 그가 퇴장하면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섭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녹화 중 주진우 기자에게 (맘껏) 통화를 허한 것도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1%의 우정> 1회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세 가지 포인트에서 기분이 짠했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주진우 기자의 피곤한 얼굴과 인터뷰 보이스. “제가 원래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해요. 그래서 펜기자가 되었죠.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어느 순간 보니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에요. 못하는 거에요. 나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죠. 가끔 녹화를 마치거나 집에 돌아갈 때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서있나?”

 

두 번째 포인트. 주진우 기자가 김희철에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며 자코메티를 소개하는 장면. 그리고 그 화면에서 마주한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매우 유명한 작품이라는데(경매가가 3000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하~) 전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화면에서 스쳐 지나가는데 너무도 강렬하게 잔상에 남았습니다. 조각으로 새겨진 사람은 울퉁불퉁합니다. 상처투성이입니다. 깡말랐습니다. 볼품없고, 깡마른 한 사람, 살이나 데코나 형상, 규정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남은 최소한의 존재, 이 존재가 걸어가는데, 이게 왜 그렇게 고독한지 모르겠더라구요. 수식을 뺀 인간의 진면모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코메티를 알아보야지~하는 새로운 질문도 생겼습니다.

세 번째 포인트. 1%의 우정이라는 말, 관계라는 말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다른 게 불편해서 마주하지 않는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훨씬 편하다.” “연애도 우정도 귀찮다요즘의 트렌드에서 이 프로그램은 왜라는 반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 다르니깐 완전 재밌잖아.

 

사실 한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낄낄 대는 것을 넘어 세 가지 스톱포인트를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이 아주 아주 재미있고, 장수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집니다. 소위 예능에서 KBS의 차별화가 뭔데, 할 때 이런 것!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성장할 가능성이 1회 안에 많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