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패턴슨>, 당신의 생기가 시작되는 도시, 노트, 언어



입춘이라 하는데 날은 여전히 어제의 날씨 연속입니다. 영하 10. 이제 이 숫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몸도 예전과 달리 어제의 온도에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아주 춥다라는 느낌은 없습니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 


오늘 오후에 문득 떠오른 영화입니다. 이번 겨울에 봤던 영화 중에 좀 인상적인 영화였다고 할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마눌님은 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짐 자무쉬라는 감독, 미국 중소 도시의 중년 남성, 그러니간 패터슨의 싸나이네. 어떻게 이렇게 여성 캐릭터에 무심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작은 중소 도시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게 짐 자무쉬의 관점이고, 그리하여 한 남자와 함께 사는 여자는 자주 주변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저한테는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깐 <패터슨>을 따라가는 이야기와 카메라에 상당히 집중했다고 할까요?


왜 집중을 했을까, 생각을 하면 그가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것이 평범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는 부분이 있고, 틈틈이 쓰는 시, 그것이 담긴 노트 속에는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어떤 부분을 부러 세우는, 그러니깐 우리의 일상과 조금 다른 사건들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은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을 보내며 살아갑니다. 아침 610, 눈을 뜨면 탁자에 놓인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고, 식탁에 앉아 간단히 시리얼로 배를 채우고, 출근을 하고, 주차된 버스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간간이 들려오는 손님들의 대화에 귀기울이고, 영감이 떠오르면 노트에 시를 씁니다. 퇴근을 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고, 산책길에 들르는 맥주집에선 주인과 소소한 얘기를 나눕니다. 영화는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전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마주하는 패터슨이라는 남자의 표정이었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 속을 오가는 그의 표정에는 지루하거나 무료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버스 창 밖의 풍경은 매번 변하고, 들고나는 사람들의 표정, 이야기들은 그가 운전하는 일상에 다양한 색깔을 새겨놓는 존재들입니다. 저녁에 매일 들리는 맥주집은 동네 친구들의 사랑, 가족, , 추억, 영혼이 교감하는 장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그리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장이기도 합니다. 허리케인 카터라는 자의 억울한 누명, 패터슨 최초의 아나키스트, 지난 주 바에서 만난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허세, 패턴슨 시와 관련된 인물들의 일화, 친구와 우정 사이에 방황하는 커플, 사랑 때문에 죽겠다는 젊은 남자의 우울함, 그 우울함을 꽤 즐기는 듯한 여자의 몸짓, 세탁방 레퍼의 목소리, 퇴근 길 만난 어린 소녀와의 대화, 그리고 시를 따라 이곳에 왔다는 어느 일본인의 짧은 감탄사 아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짚어내고 그것을 과장하지 않게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패터슨의 표정이 늘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펼쳐지지만,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어 삶의 경로를 흔드는 게 인생의 또 다른 진실인데요, 이 영화에서도 막바지에 패터슨에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아내 로라가 일주일 내내 준비한 쿠키가 성공적으로 팔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랜만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데요, 집에 들어오니 맙소사! 애완견 마빈이 시노트를 갈가리 찢어놓은 겁니다. 그의 얼굴에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난 네가 밉다고 혼잣말로 마빈을 타박하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노트의 상실은 자신의 세계가 사라진 것과 같은 기분일 겁니다. 일요일 오후, 마음이 뒤숭숭해진 패터슨은 홀로 거리를 산책합니다. 그리고 공원 벤치에서 패터슨 지역 출신의 시인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으러 왔다는 어느 일본인을 만납니다. 그는 패터슨에게 새로운 노트를 선물하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텅 빈 페이지와 함께 패터슨을 다시 월요일을 맞이할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똑같은 일상을 시작할 겁니다. 새로 받은 노트에 새로운 시를 쓰면서... 사실 과거의 노트는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느냐의 문제이니깐요. 그가 쓸 이야기는 찢겨진 노트의 시와 전혀 다른 결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의 흐름 위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고, 그로 인해 그의 표정은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라는 겁니다. 언어의 역할이 이런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 오후입니다. 그래서 저도 걷고 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