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왔다. 제천은 올해만 두 번째다. 이곳에 오면 홍상수 감독이 생각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제천과 제주를 무대로 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때문일 것이고, 홍상수 감독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묘한 이중성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제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 이틀 동안 심사는 뒷전이고 술판이다. 이 술판에 구경남이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기도 한 여인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극장 앞에서 우연히 만난 오래전 친구 부상용(공형진)의 아내 유신(정유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제천 어느 극장 앞에서 만난 부상용이 자기 집에 가서 술을 먹자고 제안을 하고, 이 친구가 자기 집에서 술에 떡실신되고, 아내 유신이 떡실신된 남편이 숨을 안 쉰다며, 죽었다고 울부짖고, 구경남이 ‘제가 유신씨를 책임질게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시츄에이션, 그 “사랑해요”라는 말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고 자연스러운 것은 그게 어찌보면 희극화된 인간의 리얼 일상이자 욕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천에서 파렴치한으로 쫒겨 난 다음, 제주도로 특강을 가게 된 구경남. 학생들과의 뒤풀이 자리에 존경하는 선배 화백 양천수(문창길)를 만나 다음날 그의 집에 동행하는데... 알고보니 양천수가 재혼한 아내는 구경남의 첫사랑 후배 고순(고현정)! 고순은 남편 몰래 구경남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남기고, 당연하게도 구경남은 고순에게 전화를 하고, 만나고, 거두절미 섹스를 하는데... 이 은밀한 만남에서 구경남은 고순을 품에 안으면서 이제야 자기의 진정한 짝을 찾았으니 영원히 함께하자고 영원히 사랑하자고 환희에 들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에 대한 고순의 대답, 쿨하다. “오늘 딱 하루만 행복하면 되는거지”
홍상수 영화에서 늘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구경남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재미있다. 사랑이라는 수사(말)와 진짜 사랑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그래서 구경남이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쓸 때만큼 인간이 위선적이고 가증스럽고 찌질해보이는 때가 없다. 그런데 그런 구경남이 얄밉지 않고 약간의 동정심과 함께 측은지심과 함께, 키득키득 사랑스러운 것은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고, 너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에 담긴 90% 실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사랑하고 싶어요”
“영원히 사랑해요”
이 상황에 담긴 절박성, 이 상황의 절박성이 빚어낸 사랑의 허구성.
사랑에 대한 절실함과 무의미함,
사랑에 대한 다급함과 허무함,
사랑에 대한 충만함과 허기.
인간은 온건하지 못하고, 세상은 늘 불안하고 외로우며,
그래서 인간이 찾는 사랑도 욕망과 의지,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 흔들림 속에서 때론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를 모조리 상실하기도 하는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실하게 “사랑”이라는 말에 매달린다.
그리고 때론 나의 사랑은, 지금의 사랑은 홍상수가 제조한 캐릭터와 달리
애정, 믿음, 헌신, 순수와 맞물려 있다고,
허겁지겁 뱉어버리는, 외로워서 이야기듣고 싶은 “사랑한다”는
말의 허구성을 넘어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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