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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유령작가 김연수

 

 

 

1. Preview

김연수의 글은 꼭꼭 씹어먹는 맛이 있다. 그 맛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스스로를 문헌보관소로 삼는 글쓰기 방식,

어쩌면 그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

 원본으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유령작가로 호명하는 바로 그 관점,

어쩌면 쉬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여행자의 마음.

바로 거기에 김연수 작가의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이 아름다운가? 인간이 아름다운가? 

이들이 지향하는 세계에 희망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버리고,

오직 길을 걷고,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는 작가.

2. History

1970년생.

본명은 김영수.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3학년인 1993년, 계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강화에 대하여〉외 4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이듬 해인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받았으며, 단편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단편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3. Creativity

 

소설가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이야기를 퍼 올리는 일과 그것에 형체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작업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그의 내면의 이야기에 형상을 입히는 나름의 방법론은 그 스스로를 문헌보관소(Archive)로 삼는 일이다. 그런데 치밀하게 섬세한 추적을 통해 세계를 복원하는 목적은 리얼리즘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 자체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꾿빠이 이상] 말미에 작가는 어떤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꿈속에서 그는 발표되지 않은 소설들로 가득 차있는 헌책방을 찾아간다. 가지고 나올 수는 없지만, 읽고 나올 수는 있는 책들. 그것은 이데아로서의 책이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서둘러 기억 속의 그것들을 받아 적지만 그 원형을 되살릴 수는 없다. 그의 글쓰기는 이와 같다. 소설작업을 통해 이데아로서의 책을 흉내 내지만, 현실 속의 그것은 턱없이 보잘 것 없다. 다만 그 기억과 기록에 적절한 외양을 부여함으로써 제 3의 세계를 창조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유령작가다. 유령작가, 그것은 경계 위에 서 있음, 편재, 존재의 낯설음과 흐릿함과 관련되는 것이다. “나는 끝없이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는 길 위에 서 있을 뿐, 내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또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수많은 것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 보았던 책들, 들었던 음악들, 지나 갔던 길들은 모두 내 등뒤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아무런 되비침도 없는 유령일 뿐이다(7번 국도, 36).”

 

유령작가에게 원본으로서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과 이상, 드러난 세계와 숨은 세계의 겹침과 대립을 통해 경박한 일상성으로부터, 그 자신의 이야기들이 뿌리내린 감상적인 연애담으로부터 벗어난다. 바로 그 경계 위에 그의 역사의식이 담겨있다. “나는 역사라는 이름의 위험천만한 폭약을 단숨에 폭파시키는 뇌관은 열하일기나 실학사상 같은 게 아니라 벽장 속의 지구의나 뜰 앞의 나무 한 그루처럼 사소하고 하잘 것 없고 우연의 소산으로만 보이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만을 두고 본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사이의 행로는 때로 매우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채워진다(유령작가, 18).”

 

거대한 인과관계와 사소한 우연, 사소한 물질성들이 ‘지금 여기’에 덧칠되면서 김수연이 창조한 세계에 빛을 발한다. 그의 묵중한 세계는 이렇게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처해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일상적 현실을 아득한 시선으로 조감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그것은 프랑스 역사가 조르주 뒤비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역사의 본질로 제시된다.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분명 작위적이고 그릇된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뒤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야기됨으로써 사건들과 낱낱의 내용, 하찮은 사실들이 사건 당시에는 갖지 않았던 엄숙하고도 중요한 양상을 어쩔 수 없이 띠게 되기 마련이다.” 그에게 포착된 세계는 어떠한 역사가도 놓쳐버릴 수밖에 없는 어떤 순간들의 구체적인 몸짓이며, 그 시간의 결 위에서 작가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향해 절망적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그에게 이러한 세계의 재현력은 눈부신 상상 자체를 보완하는 무수한 책으로부터, 사실들로부터 나온다. 이 책을 매개로 그는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 그리고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곳에 매료된다. 그리고 그렇게 그에게 포착된 세계, 인간의 구체적인 몸짓은 표면화된 현실, 역사 위에 중요한 문제들, 이데올로기들이 얼마나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것인가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 세계를 멀리서 조감하면 그것은 실로 무수한 주름들로 이루어진 존재의 감옥일 것이며, 우리의 삶이란 거기서 끊임없이 탈주하려는 기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작가는 여행할 권리라 명명한다. “결국 나의 존재라는 것은 유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진실도 내 몸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 내 몸은 텅빈 동굴일 뿐이며 공허한 울림만이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다.(가면, 57)” 사는 것, 죽는 것, 잠자는 것, 이 모두가 꿈일 뿐이라는 ‘햄릿’의 대사가 출몰하는 곳도,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갈려고 하지만, 파도에 밀리는 돛단배처럼 항상 과거로 밀려갈 뿐이다라는 ‘위대한 개츠비’의 구절이 출렁이는 곳도 바로 이러한 세계다.

 

그의 소설은 자아와 세계, 언어와 사물, 현재와 과거,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작동한다. 이들의 관계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중첩적이다. 이 중첩세계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역사적 상상상력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을 반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의 삶을 변형시킨다. 그러면서 서사의 공간은 한없이 넓어지고 중첩된다.

 

우리는 왜 역사를 소환해내는가? 그것은 그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그 무수한 역사들 속에서 굳이 특정한 역사를 소환해내는가라는 물음. 이 물음이 전제되지 않을 때 소설은 지나간 연대 속으로 흩어지거나 작가의 주관적 관념 속에 갇혀버리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줄여서 말할 수 있겠다. 광대한 세계 속에 한 인물이 놓여 있다. 그는 상상과 실제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계는 어느 정도 언어화한다. 때로 고고학적 탐사를 통해 얻어낸 구체적 사료들은 객관적인 현실을 재구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상을 정교화하는 데 쓰일 뿐이다. 그곳에서 역사는 불안전한 주관적 의지들의 투쟁의 장일 뿐이다.

 

그가 여행할 권리라고 명명한 더 먼 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역사적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것은 동시에 지금 여기에 놓여있는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존재론적인 사유의 산물이고, 그 사유 과정에서 삶의 구체성은 사라지고 실천성은 부정된다. 그는 쉬임없는 운동이자 변화이며, 동시에 끊임없이 역사를 불러들이고 재해석하는 자이고, 그 어떤 실천에 의해서도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는 도저한 허무주의 내지는 근원적인 반성의 블랙홀로 우리를 빨이들이는 작가인 것이다.

 

“ 그 사람이 일요일마다 듣고 위안을 삼는 소리는 외계인으로부터 날아오는 희망의 전언이 아니라, 우주를 메우고 있는 우연의 소리들이야.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 뿐이지. 말하자면 가짜란 말이야. 민주화처럼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길처럼 이 세계는 끝없이 변화하고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룬 것은 민주화도 희망도 아니라 오직 과거 뿐이고, 거기에는 희망 따윈 없어. 우리에겐 다른 맥락이 있고 다른 방법이 있어. 우리는 그들이 아니거든. (7번국도, 140)”

 

그의 장편 [밤은 노래한다]는 작가 김연수의 소설이 본질에 있어서 음악을 지향한다는 것, 그런데 그 주체가 밤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음악에 대해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또 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 (네가, 227)”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밤은 우리들 삶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비극적 역사의 순간이거나 죽음의 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이 끝나는 침묵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삶이란 침묵으로부터 생겨나서 또 다른 침묵으로 끝나는 것, 그러자 오로지 노래하는 행위만이 남는 것이 된다. 노래하는 주체도, 그 노래가 지향하는 세계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노래하는 행위 자체만이 남은 형국.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참고 문헌 : 손종업 (2009). 거울 속의 유령작가와 역사소설의 미궁 - 김연수.

 

4. 주요작품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세계사, 1994)

《7번국도》 (문학동네, 1997)

《꾿빠이 이상》 (문학동네, 2001)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2003)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2007)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 지성사, 2008)

《7번국도 REVISITED》(문학동네, 2010)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소설집

《스무살》 (문학동네, 2000)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문학동네, 2002)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 2005)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009)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04)

《읽GO 듣GO 달린다》 (2007)

《여행할 권리》 (창작과 비평,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