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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미디어 놀이터

김병욱과 시트콤

요즘 시트콤에 대해 스터디 중이다.

왜 한국에서 일일시트콤이 잘 안되는지...

돌파구는 무엇인지 ...  

결국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김병욱 PD를 피해갈 수 없다.

시트콤의 역사와 김병욱의 작품 활동을 크로스해보면

한국 시트콤의 변화 = 김병욱 PD의 변화라는 답으로 귀결된다.

 

언젠가 그의 삶과 작품을 꼼꼼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가 여기저기 남긴 기록들을 1차적으로 여기에 남겨본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시트콤에 관심이 있다면, 다음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1. '김병욱'론  (BY 김혜미)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 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듯 없는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전 떠올린 스토리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매커니즘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1998,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똑바로 살아라>2002,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 <거침없이 하이킥>2006 의 감독 김병욱도 수줍음을 잘 탄다.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최소한 품위를 지킬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조기 종영한지 1년 반. 그와 동료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내놓는다. 이 작품을 내놓고 그는 쑥쓰럽게 기자들에게 말했다. "허접한 작품이라 인터뷰하실 일 없을 거에요"  말하자면 김병욱 감독은 다운시프트형 인간이다. 실망시키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차라리 기대를 낮추고 작은 잔에 넘치게 따르기를 원한다.

김병욱 시트콤에는 아녜스 자우이의 매너 코미디, 제인 오스틴의 실내극, 오즈 야스지로의 홈드라마에서 보았던 통찰과 풍자가 있다. 진부한 설정에도 숨을 불어넣는 독자적 감수성이 있다. 그는 사람의 왜소함을 급작스럽게 드러내기를 즐기는데 그 결과는 강자의 권위를 비웃는 데에 멈추지 않고 인생의 보편적 어리석음에 가 닿는다. 또한 김병욱 시트콤은 가족주의의 이면을 밝힌다. 가족이 한국인에게 중대한 것은 단지 정이 깊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의존으로 세대가 얽혀있고 가족 구성원의 인정이 개인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리고 물론, 어처구니없는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있다.

SBS<좋은친구들>1994 에서 김병욱과 함께 일한 장항준 감독(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은 "계급도 계급이지만 정신적, 문화적 소수자들에게 애정이 크다"고 김감독의 취향을 요약한다. 그의 소우주에서 성격은 운명이고 캐릭터는 에피소드다. 김병욱 감독은 어떤 사태를 맞은 인물의 반응 숏을 아무 지시없이 찍은 무표정으로 대체하곤 하는데, 캐릭터를 숙지하는 시청자는 배우의 빈 얼굴로도 감정을 짐작한다. 쑥스러움을 잘 타는 김병욱 감독이 곶감보다 겁내는 것은 감정의 과잉, 아니 감상의 과잉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42화에서 백수 준하가 오랜 실직을 끝낸 출근 첫날, 가족들과 파티를 치르다가 다시 해고 소식을 접한다. 준하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 컴컴해진 실내에서 가족들은 각자 흐느낀다. 김병욱 감독은 눈물을 클로즈업하기는커녕 주조명까지 끄고 식구들을 어둠속에서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코미디를 만들기엔 너무 우울한 사람." 몇해 전 장진 감독은 그렇게 평했다. 여전히 김병욱 감독은 3만명이 운집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 많은 쓰레기와 배설물을 어떻게 치우냐부터 생각하는 남자다. 사람도 세상도 웬만해선 달라지진 않을거라고 여기는 그가 버티는 법은 무엇일까. "소박하게 살고 소박한 것을 만들면서 풀어요. 어둠 속에서 화살을 쏘는 거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가슴팍에 과녁을 그리고 TV를 켠다.

 

 

2. 그의 이야기

 

(1) 2006년 인터뷰 (거침없이 하이킥)

Q 음식점에서 뵙게 되면 매번 따로 있는 방을 선호하시는데, 그 편이 마음이 놓이시나요?

은둔 지향이라서요. 어디 가도 구석진 자리가 마음이 놓여요. 어려서부터 공간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귀퉁이를 찾아서 ㄴ자 모서리에 틀어박혀요. 사방이 트인 공간 가운데에 있으면 눈에 안 보이는 등 뒤가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구석에 몸을 붙이면 등을 찔릴 염려도 없고 전방은 내 시야로 확보가 되잖아요? 어른이 되고도 한참 공중화장실을 이용 못했어요. 밖에서 남이 기다리면 불안해서 소변을 못 봤거든요.

 

Q 사람들의 행태를 골똘히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죠?

A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는 항상 땅을 보고 혼자 교정을 걸어다니던 모습밖에 없데요. 수필을 몰래 끼적거려서 친구한테 보여주고 슬프다고 눈물흘리면 즐거워하며 살았죠.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어쩌다 한권 읽으면 영향을 굉장히 크게 받는 거잖아요. 풍부한 독서를 하면 편집해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헤르만 헤세만 읽으면 그게 세상의 전부니까 거침없이 염세주의에 빠져드는거죠. TV나 영화도 좋아하는 것만 봤어요. 지식은 없고 사변만 있는 인생. 그게 저예요.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학교에 가면 오직 집에 빨리 가고만 싶었어요. 대학 가서도 수업 뒤 친구들과 모여 놀기라도 하면 안정이 안됐어요. 내게 '삶’은 집에 와서 혼자 있는 거니까 그런 자리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기 위해 부득이 거쳐야할 통과 의례라고 여겼어요.  세상에는 제도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사회에서 빤하게 파놓은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가긴 싫은데 또 이걸 이탈하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할것 같다는 두려움에 짓눌렸어요. 어린 시절 어쩌다 늦잠자고 지각등교할때 다른 아이들이 가고 없는 길을 혼자 뛰어가며 보았던 휑한 거리 풍경이 선명한 공포로 남아 있어요.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면 주인공 한스가 제도권의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잖아요. 나중에 그 길을 포기했다는 사실때문에 연애도 실패하고, 자살까지 내몰리는 모습을 열중해서 읽었어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도, 사회가 용인하는 길을 선택 못한 사람들이 치르는 대가를 슬퍼하며 제 방식대로 감상했죠.

 

청소년기에 유난스런 고집이나 집착은 없었나요?

A 그맘때 제가 거식증이 심해서, 집착 같은 것을 할 기력이 없었어요. 아버지 키를 보면 더 커야 했는데, 고2,3학년때 너무 못 먹어서 성장이 멈췄어요. 2교시 마치고 도시락 꺼내먹다가 혼나는 친구들을 보면 저는 "허,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그랬죠. 난 4교시 마쳐도 밥 먹기 싫어 미치겠는데 뭐가 모자라 미리 먹고 걸려서 선생님한테 두들겨맞고 울고불고 복도에 서 있는걸 보면 뭐 저런 애들이 있나 신기했어요. 대학입시에서 1차에 실패했지만 거식증때문에 재수는 생각도 못했죠. 학업을 조금이라도 지속하면 거의 임종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마지막 '발병’은 92년경이었어요. 신혼 시절 아내와 둘이 일본에 놀러갔는데 사흘째인가 갑자기 식욕이 1%도 없는거에요. 이러다 확 죽는거 아닌가 하는 걷잡을수 없는 생각에 빨리 그냥 서울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아내는 막 울고, 성수기라 비행기 표는 없고, 그런데 이틀 뒤 또 감쪽같이 낫더라고요.

 

Q 감독님 시트콤에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범이를 비롯해 친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숙식도 해결하는 인물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런 단짝은 없었습니까?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서로 집은 찾아가지 않는 깍듯한 관계였죠. 대학교에 가서도 동아리 한 번 든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살기는 40여년을 살았어도 거의 경험이 없는, 이 땅에 뿌리를 못 박는 삶을 살았다고 보면 돼요. 늘 늦게 와서 뒷자리에만 앉고 어떤 활동에서든 중하위 그룹에 속해 가능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대학을 다녔어요. 졸업 무렵 MBC에 입사할 때 수석했다고 사은회에서 앞으로 불려나갔는데 오죽했으면 과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 저 사람 누구야? 우리 과 맞아?" 그런데 시트콤이 어떻게 보면 바깥세상의 경험이라기보다는 내적인 정신세계와 관련이 깊어요. 제가 여행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길어야 하루 정도 낯선 도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여행을 좋아해요. 어떤 집을 찾아가면 집 밖에서 그들의 삶을 구경할 뿐 그 집에 들어가 하루 묵을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닌거죠.

 

Q 내가 아닌 사람, 사물에 깊이 들어가는 일이 성가신 건가요? 두려운 건가요?

A  본능적 회피죠. <순풍 산부인과>를 할때 병원 취재를 하다가 제왕절개수술을 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사양했어요. 그렇게까지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정신적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연애를 할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깊이 들어가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는 게 아마도 진정한 삶이겠지만요. 그래서 아내가 고맙죠. 인생에 처음으로 이만큼 가까운 사람이 생긴 거니까요. 결혼을 했는데 너무 혼자 있는 걸 즐기고 바깥 이야기를 잘 안 해서 아내가 처음엔 힘들어했어요. 저는 가족이 일터에 찾아오거나 가족 동반 직장 모임도 무척 불편해하거든요. 그런 '섞임’ 이 싫어요. 말하다보니 증세 다 나오네요. 뷔페에 가면 여러 음식 섞인 접시에서 초고추장이 불고기에 묻은걸 보기가 싫고, 구내식당엘 가면 먹고 난 음식 찌꺼기가 한통에 버려지는 것이 싫어요.

 

 

Q 작품에서 플래시백을 많이 쓰는 편인데, 본인도 자주 회상에 젖는 편이신가요?

A 회고 취향은 제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심할 때는 한참 연애하는 중에도 미래를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추억으로 남으려나" 하고요. 즐겁게 놀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슬프겠구나 생각하고요. 그처럼 삶에 잘 젖어들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도 있고요.

 

 

Q MBC PD로 입사할때 라디오를 지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PD는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TV는 어쩐지 눈에 띌 것 같고 라디오라면 숨어서 PD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문세씨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 팀에 있었죠. SBS가 개국할때 옮겨서 AM 라디오 연출을 한동안 했는데 0.8%, 1.2% 를 오가는 청취율의 프로그램이었어요. 오는 편지가 하도 재미없어서 제가 가짜 주소로 편지를 직접 쓰기도 했는데 온갖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쓰니 행복했죠. 그러다가 TV로 옮긴 이유는 라디오가 TV보다 자기 시간이 없다는 점이 컸어요. 스튜디오아니면 사무실만 오가니까 공무원처럼 자기 자리를 지켜야 했거든요. 드라마나 교양 부서에 가면 장기출장이 많을까봐 예능국을 지망했어요. 입도 짧고 언제 거식중이 재발할지도 모르니 집 근처에 머물러야 하잖아요.

 

 

Q <순풍산부인과> 부터 <거침없이 하이킥> 까지 만든 시트콤 다섯편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고 볼때 각 작품이 차지하는 단계나 발전을 짚어주실수 있을까요?

A <거침없이 하이킥> 이 <똑바로 살아라> <순풍산부인과> 의 포스를 못 따른다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거예요. 전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중에 <난 알아요>가 제일 좋고 뒤에 나온 노래는 좀 어렵거든요. 제 입장에선 <난 알아요> 같은 노래만 해줬으면 싶지만, 서태지로서는 <난 알아요> 가 부끄러울수도 있어요. 저는 <순풍산부인과> 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는 많이 부끄러워요. 두 작품은 전개가 단순해서 처음을 보면 뒤를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똑바로 살아라> 까지는 에피소드 횟수를 바꿔도 무관했는데 <거침없이 하이킥> 에 오면 추리적 요소가 들어가고 감정선이 세밀해져서 순서 바꾸기가 불가능해요. 진일보, 아니 진이보했어요. 연출의 기술적 측면을 보면 <똑바로 살아라> 까지와 달리 <거침없이 하이킥> 첫주 방영분은 원하는 만큼 ENG로 찍었어요. 시청자가 보는 그림은 비슷하지만, ENG를 쓰지 않고 스튜디오 조정실에 제가 올라가 1,2,3번 카메라를 놓고 그냥 찍으면 연기자의 표정이나 앵글 하나하나를 제어하지 못해요. 제 필모그래피를 만든다면 <똑바로 살아라> 부터 포함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Q 언급 안 하셨는데 저는 <귀엽거나 미치거나> 가 상당히 야심적인 기획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지금까지와 다른 짓을 해보자는 의욕이 노골적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장기 서사와 주간 시트콤의 주기를 같이 살려가는 구성이 흥미로웠어요. 이번 회에 던진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서도 각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A 물론 그런 성취가 지금 <거침없이 하이킥> 의 형식을 만든거죠. 예를 들어 민용이 신지가 결혼반지를 팔아버린 줄 알고 자기 반지를 버리는데, 정작 신지는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 때 반지는 한 에피소드의 마무리지만 더 긴 멜로의 복선이기도 해요. 이렇게 두 가지를 취하는 작법을 <귀엽거나 미치거나> 를 통해 배웠어요. <똑바로 살아라> 가 구성에서 진일보했다면 <귀엽거나 미치거나> 는 콘티뉴이티를 살린거죠. 그런데 <거침없이 하이킥> 은 일일시트콤이지만 개성댁 미스터리 등을 도입해 연속성을 강화했어요. 그게 꼭 시청자에게도 더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 거죠.

 

Q <거침없이 하이킥> 초반 마루 밑에 개성댁의 시체가 몇회에 걸쳐 누워 있었습니다. 잘린 귀까지 등장했죠. <블루 벨벳> 도 생각나고, 배경인 흑석동이 '트윈 픽스’ 로 보이더군요.

A 데이비드 린치라니, 이 실력과 제작비로 어림도 없죠. 이번 작품에서 우리의 모토는 무엇보다 '변신’ 이었어요. <위기의 주부들> 벤치마킹도 좋지만, 그보다 우리의 기존 스타일에 대한 지겨움을 털고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시청자가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좀 어색하더라도 초반에 "어딘가 다르다" 라고 보이는 효과가 중요했죠. 개성댁 미스터리는 일상의 표면 밑을 말하는 이야기죠. 우리 사회도 점점 한 개인의 삶의 실체를 알기 힘든 시대가 되고 있잖아요. 유영철 같은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굉장히 특이하고 기괴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선가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원래 기획은 거창했어요. 모든 주변 인물에게 비밀을 주려고 했죠. 이를테면 풍파고 학생 중에 흑인 혼혈학생이 한명 있는데 알고보니 이집트 왕자였다든가.

 

Q 지금까지 전작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의 듀엣을 고르라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똑바로 살아라> 의 노민정-노형욱 조에요. 민정이는 생글거리며 괴상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인물이고 형욱이는 비록 꼴찌지만 아주 평범한 가치관을 가진 아이거든요. 둘이 벌이는 해프닝은 그런 차이의 충돌인데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는 해미가 강하죠. 누구와 붙여도 재미있어요.

 

Q 서민정씨는 <똑바로 살아라> 에서 노민정,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 서민정 선생을 연기하는데 둘 다 엉뚱하지만 타인에게 반응하는 방식은 반대라 재미있습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자랑스런 캐릭터로 노민정을 꼽으셨는데요. 서민정씨 본인은, 연기경험도 훈련도 전무한 자신을 데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님이 창조한 캐릭터라 그럴 거라고 추측하더군요. 혹시 노민정은 감독님이 꿈꾸는 '100% 여자아이’ 캐릭터인가요?

A 우리 인물들이 대개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적 캐릭터인데 노민정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준하는 영규, 이순재는 오지명식으로 유형에 대입할 수 있는데 노민정은 유형이 없죠. 노민정과 <거침없이 하이킥> 의 서민정은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해도 좋아요. 예컨데 <똑바로 살아라> 의 민정은 속엣말- 보이스 오버 대사- 가 거의 없었어요. 반면 <거침없이 하이킥> 의 민정은 계속 혼잣말을 하며 노심초사하고 짜증날 정도로 남을 신경쓰죠. 서민정은 똑같은 표정으로 웃지만 성격은 딴판인 거예요. 실제 서민정과 닮은 건 서민정 선생쪽이에요. "정말요?" 반문하는 버릇도 본인 말투에요.

 

 

Q 모자이크 처리된 화장실 장면은 김병욱 시트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어요. 급기야 <거침없히 하이킥> 에서는 1인칭 내레이션까지 나왔는데요.

A 저희가 다듬는 걸 싫어해요. 사회의 편견도 그대로 까발리는 걸 좋아하고, 언어도 욕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방송용으로 순화하는 것이 싫어서 "지X" 이라는 말도 막 쓰죠. 좋은 소재를 두고 차선을 쓰기 싫은 거죠. 이를테면 <거침없히 하이킥> 에서 시어머니 문희가 평소에 깔끔하고 깐깐한 며느리 똥으로 변기가 막힌 걸 보고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걸 똥이 아닌 무엇으로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맛이 덜 산다고 봐요. 문희가 아들의 방귀냄새가 혼탁해진 것을 염려해 개선에 힘쓰는 '방구보감’ 편은, 정말 강조하려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가위손>의 눈발을 방귀에 날리는 밀가루로 패러디한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더러운 걸로 시청률 올린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Q 조용하고 점잖은 인상이시지만 얼핏 마음속의 분노가 비칠 때가 있어요.

A 분노 많아요. 어떤 것은 아주 쪼잔한 상처라 말씀드리기도 뭣해요. 복수할 때도 있어요.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잘 입는데 그걸 내색은 못하니까 분노가 되는 거죠. 시트콤이라는 대접받지 못하는 장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진 원한 같은 것일 수도 있죠. 연기자들이 시트콤한다고 무시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도 알 것 같아요. 전복하고픈 욕구는 있는데 쉽지 않고 그만큼 영리하지 못하니까. 그분은 같은 말도 평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이너의 위치에서는 매력적인 인물인데 그 화법이 대통령 자리에는 안 어울리는 거죠. 방송계 경력도 쌓였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소수자처럼 느껴요. 전복에 대한 상상이 시트콤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돼요. 다른 눈으로 현실을 보니까. 하지만 정말 메이저가 됐을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B급 영화감독이 큰 예산을 주면 이상한 영화를 만들듯.

 

 

Q  작품을 보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삶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시각이 보입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큰 기대가 없고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결론에 이를 텐데요.

A 세상을 바꾸려는 욕심은 없는데 작은 항변의 욕구는 있어요. PD나 작가나 그것마저 없으면 문제가 있는거죠. 송재정 작가와 함께 준비해온 영화가 있는데 <그때 그사람들> 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통하는 데가 있죠. 황우석 박사 사태에서 단적으로 보듯, 사회적으로 무거운 지위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놀랄만큼 황폐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때가 많잖아요? 사람들이 모두 속고 있는 거죠. 그들은 설마 나처럼 무책임하거나 미숙하지 않겠지 믿는 사람들의 피라미드인거에요. 어떤 사람에게 사회적 책무와 권력을 줄 때는 그만한 성숙한 정신을 기대한 것인데, 우리 사회가 실은 굉장히 위험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죠. 코미디를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냉소주의가 우리 작업의 토대 같아요.

 

(2) 2009년 인터뷰 (지붕뚫고 하이킥)

- 인기 요인

▶요즘을 '쿨'한 시대라고들 하지만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핫'한 것들을 그리워한다. 쿨한 척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거다. 세련된 현대생활을 즐기는 것 같지만 생활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경우 처음에는 '신파'라고 욕도 들었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먹힌 셈이다. 노골적인 눈물 코드는 안 쓰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변하지 않는 어떤 정서가 있는 거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하냐, 세련되게 표현하느냐일 것이다.

- 시트콤과 드라마

▶시트콤이란 방송사의 분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드라마와 시트콤이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시트콤을 1500편 연출한 사람이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똑같은 걸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드라마가 아닌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하고싶은 드라마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캐릭터

▶ 어딘지 부족한 캐릭터에 애정이 있다. 이런 캐릭터가 재미있지 않나. 내 자신이 아웃사이더였고, 그런 사람들에게 확실히 애정이 있다. 나는 모임에 나가더라도 분위기를 주도해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고 가만히 관찰하는 타입이다. 어딘지 부족한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심리가 읽힌다. 사람을 묘사할 때 행간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순재가 절약을 외치는 에피소드를 보면, 직책에 비해서 사람의 그릇은 터무니없이 작은 사회 지도자를 보는 느낌이지 않나.

 

- 사랑

▶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의 캐릭터를 전작과 달리 하면서 노인들의 연애담을 내놓았다. 새롭기 때문이다. 기존 ‘거침없이 하이킥’과 똑같은 모습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아내가 있기보다는 연애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늙은 사람의 연애지만 젊은이들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그리고 싶었다. 다이내믹하고 액티브하게. 이에 반해 젊은이들의 사랑은 느리게 접근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경우, 순재·자옥 커플의 경우 일일드라마가 묘사하는 나이든 사람의 연애와는 다르게 그리고 싶었다.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서 손이나 잡고 하는 정도로 로맨스가 끝이지 않나. 그것과는 다르게 하자 했다. 사건도 많고, 더 역동적으로 그렸다.

 

- '지붕뚫고 하이킥'

▶ 예전 시트콤에 비해 눈물이 많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지붕뚫고 하이킥'은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예전부터 이어진 갈증을 푼 셈이다. 난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시트콤 PD을 하게 된 탓에 그 본성을 꾹꾹 누르고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어왔던 거다.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느라 고생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우리 팀이 가장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 새드 엔딩

▶ 지붕뚫고 하이킥의 경우 특히 작품이 희망을 못 줬다고 비난하는데, 희망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다. 보는 사람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쉬운 희망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느끼고 살아라, 그런 의도였다. 보통 드라마를 보면 힘든 고시에 통과하는 것도 디졸브 몇 번하고 절에 들어가면 성공하지 않나.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이 의지를 갖는 건 너무 너무 힘든 일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프면 역설적으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성장

▶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정음이와 세경이의 성장은 다른 방식이다. 정음이는 활달하고 개척하는 성격이라 외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세경이는 내적인 성장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아이가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로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거다. 세경이가 운이 좋아서 60년을 더 살았든, 5분 뒤에 죽었든 그 성장의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 거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다가 물리적인 삶이 끝나면 그 반복이 끝나는 것뿐이다. 염세적인 이야기지만 시간의 길이는 무의미한 거다.

 

- 사랑

▶ 고독을 보는 순간 사랑이 시작되는 거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사람들은 지훈의 정음을 향한 마음을 사랑이라고 통칭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경에 대한 지훈의 마음은 발전되어 왔다. 나는 끊임없이 중간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못 견뎌 한다. 지훈은 솔직하지 못해서 고독한 인물이다. 마지막에 세경을 붙잡았을 때도 스스로 느꼈지만 사회적인 역할에 충실하려고 감정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세경이 부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이 느껴 온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는 거다. 타인의 깊은 고독을 완벽하게 느끼면서 사랑을 자각하는 거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 빈공간

▶ 사람이 난 자리를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다 떠났을 때 혼자 남은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고 3때 혼자서 중학교 1학년 때 교실에 가서 보름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아침에 해가 떠서 도시락을 먹고 나면 저녁때 반대편으로 해가 들어오는데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이후로도 경주에 내려가면 그 교실에 종종 갔었다. 아무도 없을 때의 그 빈 공간, 그걸 정말 사랑한다.

 

(3) 2011년 인터뷰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 역습의 의미

사람들은 드라마 속 인물이 노력을 통해 성장해서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도 되지만 <하이킥3>의 인물들에게는 약간의 운들이 작용한다. 진희가 초반에 해고당하는 것도 운이 없어서였고, 마지막에 합격한 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서였다. 내상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못해서 부도난 것도 아니고, 노력만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이룰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공하는 이들도 도중에 굴곡을 겪고 곁길로 샜다가 의외의 기회를 얻을 때도 있다. 그런 현실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로또를 통한 재기가 무슨 역습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상에게 결정적인 기회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만약 내상이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면 시청자들은 거기서 뭘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 식으로 위안을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회에 종석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전한 메시지도 그거다. 삶의 예측불가능성. 어떻게 보면 허무적인 이야기인데,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강연을 가도 무조건 ‘꿈을 가져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은 좋다. 꿈을 향해 끝까지 달리라고. 하지만 그건 결과를 책임져 줄 수도 없는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실패했을 때는 과감히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처음 꿈을 가졌을 때 당신의 마음, 그게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역습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꿈을 품는 계기를 만드는 것, 역습을 위한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도록 하고 싶다는 게 이 드라마를 시작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