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대에 만난 언론인 중 내 심장을 가장 뛰게 만든 사람. 최문순.
2007년 MBC PD 공채 시험 최종 면접장.
1차, 2차, 3차 시험을 얼떨결에 통과해 최종면접장에서 최문순 사장과 운명적으로 조우했던 첫 번째 날. 남겨진 2명 중에서 1명을 가려내는 면접장에서 난 그를 처음 만났다.
면접장에서 느낀 그는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면접이 끝나고, 당연히 합격이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덜컥 떨어진 것을 알게 된 다음 날.
그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발신인 : 최문순
제목 :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인사위원들 모두 훌륭한 인재라고 마음을 모았지만 KBS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모자란 것이 아니라 넘쳤던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연이 닿았으니 언젠가 함께 일할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있는 인재는 언젠가는 그 능력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자주 편지 주시고 지나는 길 있으면 사무실에 들러 주셔도 좋습니다. "오형일" 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난 너무 열받아서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MBC에 못가서 화가 났던 것이 아니라, 전형과정이 이어졌던 두 달 동안 내 한계 지점에 있는 어떤 것까지 끌어내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 최선이 소통되지 못했다는 결과가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이 편지 한 통으로 난 어떤 새로운 목표가 생겼던 듯 싶다. 그가 쓴 메일은 그에겐 별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겐 큰 자극이었다. 20년 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 그가 메일이라는 짧은 형식으로 보여준 답은 진정성이었다
2.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다시 그를 본 것은 KBS 앞 순대국집에서였다. 정연주 사장이 정권에 의해 쫓겨난 후 KBS 본관 앞에서 촛불 시위가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MBC 사장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 거의 매일 KBS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는 명함이 바뀌었다면서,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건내주었다. 그 명함에는 달랑 최문순 이름 석자와 전화번호, 메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사장이라는 직함,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이름 석자, 그 이름 석자로 진심으로 타자와 만나고자 하는 마음,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이제까지 받아본 수천 개의 명함 중 가장 멋진 명함, 바로 문순 C의 명함이었다.
3.
KBS에서 해고되어 한참 노조 활동을 하던 시절. 그는 보이지 않는 큰 버팀목이었다. 절대 주눅들지 말라. 싸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 독하게 소리쳐야 한다. 국회의원인 날 이용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도와준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거리에서 자주 그와 마주쳤다. 그는 국회의원이었지만, 거리투사였고, 노숙자였다. 촛불 집회 때마다 시민들과 함께 밤을 세우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장례기간에는 대한문 시민분향소에서 상주하다시피 하였다. 그는 항상 말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겸손과 진실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3.
그런 그가 강원도 도지사가 되었다.
한국의 20~30대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에,
죽지마라 제발~ 죽을 용기가 있으면 돌들고 거리로 나와라 아니면 따라 나오기라도 해라 제발~
이라고 외치던 그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던 그가.
독종이라고 이름을 날릴 정도로 자신의 일에 철저한 그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한 그가,
불의에 대한 분노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공존하는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해 노력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정성을 다한다.
그런 그가 강원도에 그려나갈 새로운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런 문순 C를 인생의 대선배이자, 나의 정신적 멘토로 둔 것은 내 자신에게 큰 축복이다.
4.
“정치는 사랑이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슬로건 하나를 얻었습니다. 정치는 사랑이다. 제가 평생 고민해온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확대할 것인가?’를 좀 편안하게 표현한 것이죠. 다행히 제가 살면서 겪은 여러 일든이 외상 수 스트레스 장애, 현장 기자, 노동조합 간부, 해고자, 사장, 편견 없이 사랑을 실천할 자양분으로 작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문순 C. 화이팅!
'미디어 스쿨 > 내 맘대로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5월 11일 수요일 약간의 여유를 위한 조건 (0) | 2011.05.11 |
---|---|
2011년 5월 9일 인스턴트 일상과 작은 꿈 (0) | 2011.05.09 |
3월 2일. 올레길을 걷던 나의 모습.. 그대로.. 가는거다. (0) | 2011.03.02 |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0) | 2011.01.25 |
12월 7일 때를 아는 것. (0) | 2010.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