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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2011년 5월 11일 수요일 약간의 여유를 위한 조건

온종일 비가 내리던 날, 나는 습하고 어둔 구석진 방에서 책의 잔뿌리 하나도 놓치지 않을 마음으로 책을 읽고, 이파리 끝에서 채 발음되지 않고 떨어지는 생각을 남김없이 받아낼 기세로 부암동 골목길을 걸었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고, 길을 걸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공부방의 깜박거리는 전등을 이제는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조금은 귀찮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데드라인때문에 책을 부등켜 있을 수밖에 없는 내가 안쓰럽고..

막상 구석진 방에서 나와 부암동길에 들어서자..
어느 커피숍이 괜찮을까, (가격은 비싸지 않을까?) 
부암동에 집을 지으면 어떨까, 정말 집을 지어볼까? 그렇다면 (평당 가격은 얼마일까?) 
불법주차한 차는 잘 있을까. 기름값은 왜 이렇게 비쌀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이파리 끝에 걸린 풋풋한 생각을 채 건져낼 겨를도 없이
우왕좌왕 방황하고 있는 나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꽤 괜찮은 휴일이었다. 뭔가를 읽고, 쓰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깜박깜박 잠이 들고...

여유라는 것은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약간의 공간과 약간의 시간, 그리고 그 공간과 시간에서 나와 전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사람과 이야기.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자면, 뭔가 상쾌하거나, 우수에 잠기게 만드는 어떤 배경과 날씨? 그 정도면 여유가 요구하는 뭔가는 다 갖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시간 5월 11일 오후 5시.
갑자기 내가 이 글을 남기는 것은..
뭔가 사무실이라는 빡빡한 공간에서도 여유를 쥐어짜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지금 난 ctrl + shift와 수많은 문서를 띄어놓고
블로그질을 하는 중이다. ㅎㅎ

저 멀리서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씨발~ x 같네.. 오늘 술이나 푸자!"
지금 상황은 여유를 부리기엔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