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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찬

예상치 않았던 여정, 로잔으로 가는 길


아침이 밝았다. 새벽 6시 눈을 떠 테라스에 앉아 홀로 책을 본다.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체르마트의 아침,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원한 공기, 청명한 하늘, 지저귀는 새소리, 이를 풍경으로 나는 금년에 출판하게 될 원고의 초안을 읽는다. 넓은 베란다, 시원한 테라스, 그리고 아침의 마테호른. 조용하고 굉장히 멋지다. 어제 새벽 한 무리의 청년 여행객들이 새벽 늦게까지 이 조용한 공간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고함을 지르며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자아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새벽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일당의 무리들이 잠의 세계로 퇴장하자 새벽 6시 체르마트에 남아 있는 것은 침묵과 고요,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바람 소리, 새 소리뿐이다. 이 고요함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눈을 뜨자 창문을 열고 알프스 산맥의 한 자락을 바라본다. 운 좋게도 우리가 묵은 레지던스의 침실 창문에서는 알프스 산맥의 한 켠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어제 저녁의 피로가 조금 가신 얼굴이지만 발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다. 과연 남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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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레지던스에 남겨두고 나는 모닝커피와 베이커리를 사러 나간다. 체르마트에서 모닝 아메리카노를 먹는 일은 서울만큼 쉽지 않다. 숙소에서 20분 정도는 열심히 걸어가야 겨우 가게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Good Morning"에서부터 시작하여 커피 두 잔과 크로아샹을 양 손에 들고, 스위스의 비싼 모닝 커피가 행여 식을까봐 나는 전속력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테라스에 모닝 커피와 빵과 치즈를 펼쳐놓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혀끝이 찌르르르하다. 어제 저녁에 마신 콜라가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콜라였다면 오늘 아침 마신 모닝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찌리릿한 커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떠날 시간. 레지던스에서 체르마트 기차역까지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가는 길은 마테호른을 잊지 않겠다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기도 했다. 어제 오후 마테호른 주변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길을 잃었다. 다시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알프스의 한 자락을 터벅터벅 계속 걷기만 하였다. 멀리서 볼 때는 경외와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던 그곳이 막상 옆에 오는 순간 격렬한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곳을 가기 위해 격렬하게 올라갔던 것 만큼 그곳으로 멀어지기 위해 상당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감탄과 공포와 두려움과 경외감과 기쁨과 절망을 한 켠의 기억으로 저장해둔 채 또 다른 공간으로 나아간다. 그 공간 역시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이며 그 공간이 어떤 특징을 지니든 낯선 공간, 낯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또다시 예기치 않은 방황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935, 비스프행 열차가 체르마트를 떠난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낀 채 소설 책을 꺼낸다. 나는 창문 너머로 멀어져가는 체르마트와 마테호른을 멍하니 바라본다. “안녕 마테호른.” 한 할머니가 쿱 비닐 백에 잔뜩 음식을 챙겨 탄다. 내게 이곳은 낯선 시간과 장소이지만 누군가에게 이곳은 매일 매일의 삶이 펼쳐지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가 양말을 벗어 자신의 엄지발톱을 보여준다. 거칠고 가파른 마테호른의 풍경을 발톱에 색인시킨 듯 그녀의 발톱은 점점 더 까만색으로 거칠게 변하고 있었다. 마테호른 정상 위로 그녀의 검은 발톱이 높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스프에서 로잔행으로 기차를 갈아타자 전혀 다른 풍경과 인종과 언어가 펼쳐진다. 안내방송이 독일어에서 프랑스어로 나오기 시작했다. 산은 멀어져 가고 넓은 호수가 창문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프리카계 흑인들과 젊은이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변화되는 풍경과 인물을 배경으로 배낭에서 와인을 꺼내 홀짝 거렸다. 로잔역에 도착하자 체르마트와는 정 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인파, 시끌벅적함, 분주함, 담배연기, 뜨거움, 여름. 뭐랄까, 두 시간만에 이렇게 다른 공간으로 올 수도 있는 것인지 조금은 곤란한 설레임을 마주하게 된다.


로잔역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묵게 될 <아고라 스위스 나이트>를 찾아간다. 어제 밤 그녀가 잠든 사이 나는 오늘 일정을 짜기 위해 폭풍 검색으로 호텔 컴바인‘sbb'사이트를 오가며 숙박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선택한 최종 결론지가 여기였다. 그녀의 발가락 상태로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장시간 걷는 것은 무리, 헤매는 것은 어제 오후 체르마트에서의 방황으로도 충분. 그렇다면 일단 역에서 가깝고 가는 길이 평탄해야 했고, 기분 전환을 위해 호텔은 모던하고 깔끔할 것. 그것이 검색조건이었다.

호텔은 역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우와~하는 감탄사는 나지 않지만 모던하고 깔끔한 호텔로 하루 얼음찜질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체크인을 한 후 그녀는 배가 고프다며 커피포트에 일회용 햇반과 카레를 꾸겨 넣어 데우기 시작한다. 로잔의 한 작은 호텔에서 커피포트에 햇반과 카레를 데워 먹으니 어떠냐구? 별 문제는 없었고 맛은 있었다. 서울을 떠난지 얼마나 됐다구.., 우리는 마침내 한국적이고 서울적인 음식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체르마트 다음으로 로잔을 선택한 것은 즉흥적이었다. 원래는 몽트뢰와 뷔베 포도마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브릿지 역할의 휴식이 필요했다. 검색을 하다 몽트뢰에서 30분 거리인 로잔이 휴식처럼 스쳐가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그냥 고민 없이 선택해버렸다. 그리고 정말 우리는 로잔에서 고민 없이 휴식만 했다. 로잔이 소소하게 여행하기에 좋은 것은 로잔에서 숙박을 하면 12일 동안 로잔의 버스와 지하철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프리데이 패스를 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패스로 기차도 타고,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면서 여기저기를 다녔다.



체르마트에서와는 달리 날이 너무 더운데다 그녀가 절뚝 거리며 한 발 한 발 움직이는 상황이라 우리는 가급적 걷지 않는 방식으로 로잔을 스케치하듯 지나갔다. 로잔은 도시 전체가 독특한 언덕의 형태를 띤다. 로잔 호수의 선착장인 우쉬지구는 해발 100미터도 안되지만, 도심 중앙 생프랑소와 교회, 마르쉐 계단, 대성당은 해발 500미터 정도가 된다. 우리는 우선 도시 전체를 부감에서 볼 수 있는 구시가지의 로잔 대성당을 보러 간다. 로잔 대성당은 그 자체로 큰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로잔 구도심의 골목 골목은 그 자체로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 매력을 발자취로 따라가기에는 너무 볕이 따가웠고, 오늘 마저 걷고 걷기에는 에너지가 방전 상태였다.



구심지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우쉬지구로 간다. 레만호수에 접해 있는 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주위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여자는 20대 후반, 남자는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인다. 이들은 지도교수와 박사과정 제자 같은 느낌이다.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무언가를 물으면 선글라스를 낀 지도교수는 세심하게 답해준다. 역사와 철학, 예술과 음악에 대한 감성이 레만 호수를 넘나든다. 그런데 문득 이 이야기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알고 보면 모두가 우주의 티끌일 뿐인 존재들이 스위스의 작은 도시 호숫가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여자를 유혹하고, 철학을 논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다음 여행지를 정하고, 그리고 100년 후에는 모두 세상의 먼지로 돌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 하나의 명확한 사실만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내게 지금 중요한 문제는 저녁의 먹을거리, 내일 잘 곳, 그녀의 발톱 그리고 한국에 돌아간 후 발간하게 될 책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완성되는 것뿐이다.


오후 6, 밖은 여전히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점심의 햇반에 이어 그날 저녁의 만찬을 한국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구심지 한 켠에 자리한 로잔 한국 식당 아리랑 레스토랑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춘들이 단체 회식을 하는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인은 한복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젊은 시절 유학을 와 스위스인과 결혼한 후 이곳에 정착. 두 아이를 낳고 통역, 가이드 역할을 하다 한인식당 아리랑을 개업한 것은 10년 전인 2005.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응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대,” 그녀는 스위스로 유학을 올 때 20년 후 자신이 여기에서 이렇게 살 줄 알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로잔에서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루시드폴은 현재 제주도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글을 쓰고 농사를 배우고 있다. “그랬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욕망과 기억이 있고, 오늘의 모습은 늘 어제의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빚어진다. 믿기 어렵게도 말이다. 로잔의 한 구석에서 만난 믿기 어려운 한인 식당과 주인 아주머니와 5만원짜리 라볶기와 라면을 마주하면서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일과 예기치 않은 사건들 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