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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나는 미디어다

24시간 오르가즘을 느끼는 삶... [나는 미디어다]

지난주 귀농한 출판사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느릿느릿 그러나 꾸준하게 책이 팔리나보다. 얼마나 팔리느냐, 중요하다. TV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이 중요하듯, 책 역시 판매량이 중요하다는 거다. 물론 시청률과 판매량이 모든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KBS2)가 40%의 시청률이 나오고, 인생은 아름다워(SBS)가 20%의 시청률이 나온다고 해서, 탁구가 인생보다 두 배 더 좋은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40%의 시청률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시청자와 독자는 담보해야 한다. 그래야 책이든, TV든, 트위터든 미디어라 부를 수 있다.

어제 박사과정 동기들과 술을 먹다 미디어가 뭐냐는 이상한 토론이 잠깐 붙었다. 누군가 미디어는 매개의 수단이 아니라 창작의 도구란 말을 했다. 그말이 그말 같고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미디어가 창작의 도구로서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창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창작물을 매개로 누구와 어떻게 얼마나 소통할 수 있으냐다. 적어도 미디어이기 위해서는 창작자는 독자와 시청자와 관객을 필요로 한다.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무엇에 빠지는 것, 그건 미디어가 아니라고독한 천재이거나 나르시스트이거나, 무늬만 창작자인 게으름뱅이다..

내 책의 제목은 [나는 미디어다]. 미디어라고 이름 붙인 만큼 그게 걸맞는 판매량을 담보하는 것, 이것 중요하다. 작년 이 책을 쓸때쯤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책을 보고 자신의 꿈에 대해 한번쯤 돌아볼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많이 읽고 많이 이야기되고 토론되면 좋겠다. 이게 창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고 느끼게 되는 날것의 감정일 것이다. 목표는 일단 10,000권. 일만! 뭔가 상징적이다. 아무리 책 시장이 얼어 붙었다하더라도 만 명의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면 미디어라 말하기는 참 거시기하다.

이와 더불어 요즘 새로운 작업을 구상 중이다. 아직 명료하진 않다. 소설이 될지, 르포가 될지, 다큐멘터리가 될지, 단막극이 될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꾸역꾸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모으고, 책들을 보는 중이다. 사람의 인생에는 한 시기를 완성했음을 표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런 이행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진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사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과거와 현재를 볼 수밖에 없다. 내 삶에 있어서는 30대 후반, 그러니깐 앞으로 3~4년 에 그런 순간이 한 번 올 것 같은 예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흘러가는 꼬락서니가 그렇다는거다. 조금은 예민하고, 조금은 면민하게 내 삶을 돌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든다.

“난 요즘 24시간 오르가즘을 느껴!” 누군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막힌 말이다. 그런 예민함과 감수성이 필요한 시기다. 느끼지 않으려는 자에게 오르가즘이란 절대 오지 않는 법! 세상을 불감증으로 사는 것, 이것 참 무섭고 안타까운거다.

새로운 꿈을 말하는 이 시간, SBS와 KBS는 오랜만에 정기 공채 중이다. 이번 KBS 정기공채에 10000명이 몰렸다고 한다. 평균 150대 1. 사상 최대 수치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청년 실업률이 8.5%로 두달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냉정하다. 미디어 업계는 더 냉정하다. 당연하다. 자본주의의 꽃이 광고이고, 미디어는 광고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니깐... 해서 자본주의가 냉정해지는 만큼 기존 미디어 업계에 진입하는 문 역시 점점 더 좁아진다. 이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 죽은 마르크스가 번뜩 눈을 떠 말한다. 꿈깨! 같은 맥락에서 작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KBS에서 아웃된 친구들, 누가 봐도 부당해고가 당연한 건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차 소송 결과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판결이 어찌 나올지 역시 오리무중이다. 회사와의 협상도 참 어렵다. 여기서 세상에 생존권을 외치는 것? 자비를 구하는 것? 씨알도 안 먹힌다.

이런 현실에서 꿈..은 어떤 것일까? 채운이 쓴 재현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여기에 이와 관련한 깊은 사유가 있다. 해서 인용해본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예측불허하고 종종 비루하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완전한 이상을 설정함으로써 현실로부터 달아나거나 현실을 망상으로 뒤덮는다. 저 너머 어딘가에 뭔가가 있을 거야! 완전하고 무균질하고 불편하는 세계가!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현실포부터 달아나라는 것,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없다.
꿈을 방해하는 건 운명이 아니라 꿈을 현실의 지평 너머에 있는 완성태로 설정하는 우리의 태도다. 매 순간 내 앞에 구성되는 구체적인 사건의 장을 떠나서 대체 무슨 꿈을 어떻게 꾼단 말인가.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건 밑도 끝고 없는 덕담이나 희망이 아니라 매 순간 태어나고 변하고 죽을 거라는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 진실을 잊지 않는 자만이 꿈을 향해서가 아니라 꿈을 펼치면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미디어다]에서 내가 하고픈 꿈에 대한 이야기가 이런 것이었다. 어찌됐든 지구는 덥고, 삶은 눅눅한 2010년이다. 이 눅눅하고 더운 세상에서 24시간 오르가즘을 느끼며 살아가는 나와 우리들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