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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장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의 슬픈 감정이 100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돌아가신 후 지난 며칠 간 느낀 슬픔의 감정은 채 10도 안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자살하신 게 아니니깐... 연로하셨으니깐...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일상이 되어버렸으니깐... 내가 지금 내 문제로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깐...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나를 씁쓸하게 하는 것은 세 번째 이유. 어떤 감정이든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건 더 이상 감정이 아니다. 예전에는 느꼈던 감정을, 오늘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오늘에 경고장 하나 날려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며칠, 나도 깜짝놀랄만큼 무덤덤하다. 문득 그 며칠의 무덤덤한 감정에 경고장을 날려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내겐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나도 전라도 태생이니깐...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
작년에 썼던 개인사, 분량 A4 50장.. 이렇게 장문으로 뭘 써본 것은 석사 졸업 후 처음.
그 글을 쓰면서, 내 삶에 김대중 대통령과 전라도라는 두 단어가 미친 영향을 깨달으면서 깜짝 놀랐다.
나의 장점과 나의 단점, 나의 빛과 나의 그림자, 그 80%는 온전히 이 두 단어와 연관된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내게 가까운데...
그 가까움이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질까?
요즘은...


일기장이 공개됐다.
이야기의 힘은 삶에서 나오는 게 맞다., 80년의 치열한 삶이 쓴 글, 가슴을 푹푹 치는 이 묵직함. 글을 잘 쓴다는 것,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것,, 생각해보면 어렵고 간단하다. 치열하면서도 가볍게,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멋지면서도 소박하게 살면 된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삶에서 그냥 나오기 마련이다.
그의 일기... 그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 아주 슬프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잊지 앟기 위해 흔적을 남긴다. 그의 바람, 소망, 꿈,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큰 숙제다.
그리고 소망 하나. 50년 후의 나와 명하의 사진이 이랬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기>
2009년 1월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4월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 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