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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2월 12일 금요일 두 개의 세계

운명은 항상 나보다 많은 것을 아는 것 같다. 딱 6개월만에 KBS로 복귀했다. 복귀 후 또다른 일상이 시작되었다. 마치 시간이 내가 해고된 2009년 7월 18일에서 복직한 2010년 2월 4일로 훌쩍 뛰어버린 느낌이다. 복직 첫 날, 팀장님이 자신의 자리에 6개월동안 고히 간직해 놓았다는 내 컴퓨터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은 후, 컴퓨터를 켰더니 놀랍게도 모든 것이 똑같았다. 6개월전과 말이다. 단지 6개월의 여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탕화면에 임시라는 폴더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안에 팀장님이 6개월 동안 손수 작업해 놓은 자료들이 쌓여있는 것 뿐이었다.
그랬다. 자리도 똑같고, 컴퓨터도 똑같고, 사람들도 거의 변화 없고, 그렇게 다시 KBS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여기저기서 회의에 참여하라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안에 들어가 이런 저런 말들을 듣고, 말했다.
다이어리에는 순식간에 수북하게 일정들이 쌓여갔다. 좋은 게 있다면 이제 동전을 달그락거리며 다방커피 자판기에서 망설일 일이 없어졌고, 프린터를 원하는만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노트북을 들고 끙끙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그러나 그만큼 나빠진 게 있다면, 정해진 출근 시간과, 인간을 쪼잔하고 작게 만드는 조직 논리와, TV와 정치와 남자가 득실대는 환경에 둘러쌓이게 되었다는 것. 
한참을 일하다, 문득 갑작스럽게 끊긴 지난 6개월을 꺼내보면, 거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여전히 KBS 신관 커피숍 흡연실에서 복직을 외치며 회의를 하고, 협상을 하고, 투쟁을 한다. 어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공간들이 까마득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하루끼의 <1Q84>에서처럼 나는, 우리는 어쩌면 어떤 계기로 두 세계를, 아니 그 이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실제이고, 어떤 것이 가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모든 세계의 영역에는 고유의 역사와 사람과 꿈이 있다. 그 꿈들에 충실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내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시 2010년으로 넘어왔다고, 2Q10년의 삶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 두 개의 세계는 내 안에서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가상, 실재재? 과거, 현재? 이런 구분 의미없다. 모두가 현재이며, 그래서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일부터 설연휴다. 새로운 한 해, 2010년에 있는 사람들, 2Q10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복 많이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부끄럽지 않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자. 그게 잘 사는 법이다.